1960년대 권위에 도전한 풍자극

거의 10년 만에 본 연극이다. “What the Butler Saw”는 영국의 극작가 조 오튼(Joe Orton)이 쓴 광기, 권위, 정신과 의사를 다룬 사회 풍자 코미디로 1969년에 초연되었다.

연출가가 친구라서 이 연극을 보게 되었는데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미국에서 처음 본 연극이기도 하고, 이런 성적 비유나 농담이 들어간 연극은 미묘한 의미까지 파악하기 힘들다. 밴 스틸러가 주연한 미트 페어렌츠 2 (Meet the Fockers, 2004)를 영화관에서 보는데 미국친구들은 뒤집어지게 웃는데 나만 이해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있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이 연극을 보는 동안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전반부에 성적 농담이나 풍자가 잔뜩 나온 부분은 이해하지 못하다가 후반부에 나온 슬랩스틱 코미디에 반응하였다. 게다가 영국식 억양으로 빠르게 대사를 말하는 거라 감정적으로 잘 전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극장안 분위기로 감지하기에 다른 미국인 관객들은 재미있게 즐기는 것 같았다.내게는 서사적 구조에 충실한 비극에 비해 코미디가 문화적 거리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 작품은 커뮤니티 연극이다. 연출자나 배우들은 전업 연출자나 배우가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연극에 대한 못 다한 꿈을 이런 커뮤니티 연극으로 해소하고 있었다. 연출자인 조지 플라츠는 현재 뮤지컬 대본을 쓰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데뷔를 꿈꾸고 있다. 일반인이 하는 연극치곤 수준도 높았고 다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대 장치를 설치할 때 나도 페인트칠하는 걸 도왔다. 이런 걸 커뮤니티 연극의 정신이라 할 수 있겠다.

조 오튼은 이 작품을 통해서 정신과 의사의 권위에 도전한다.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하여 비서 면접자와 성관계를 맺으려 한다. 다른 정신과 의사는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몰아서 주사를 놓는다. 심지어 다른 정신과 의사를 정신병자로 진단내리기까지 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하는 정신과 의사의 권위는 땅 속으로 파고든다. 미셸 푸코가 쓴 “광기의 역사”에서 주장하던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은 사회마다 다르다는 결론과 비슷하다.

사회 관습에 도전한 오스카 와일드처럼 조 오튼도 사회 관습이 부당함을 주장한다. 이 작품이 영국에서 처음 초연되었을 때, 상당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화가난 관객들은 배우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고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는 그다지 충격적인 내용은 아니었지만 우리 옆에 앉아있던 한 부부는 불쾌한 표정으로 중간에 나가버렸다.

이 작품에는 동성애에 대한 암시적 표현들이 등장한다. 자신도 동성애자였던 조 오튼은 동성애에 대해 비정상적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조 오튼이 이 작품을 쓰던 시기의 영국은 동성애자를 “병자”로 대하였다. 이 연극에서 조 오튼은 성적 정체성을 뒤바꾸는 방식으로 사회 관습을 공격하였다.

이 연극은 정치적 인물에 대한 권위도 서슴없이 공격한다. 영국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윈스턴 처칠의 성기가 거세된 것이다. 윈스턴 처칠이 죽은지 얼마되지 않아서 공연된 이 작품에 대한 영국인의 분노는 이해할만 하다. 조 오튼은 윈스턴 처칠이라는 상징적 권위를 블랙 코미디로 비꼬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정치인과 더불어 경찰의 권위도 이 연극에서 무시되고 있다. 경찰복을 벗은 경찰은 호피 무늬 여자옷을 입는다. 술과 약에 취해 제 몸도 못가누는 경찰은 조롱의 대상에 불과하다.

1960년대 영국은 사회적 권위에 대한 도전이 일어나고 개인적 자유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던 시기였다. 1967년까지만 해도 영국에서 동성애는 형사법으로 처벌할 수 있었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영국은 국가가 개인의 성적 자유까지 통제하던 사회에서 사적 영역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넘어갔다.

조 오튼이 활동하던 시기 정신과 의사들의 권위는 대단했다. 정신과 의사는 강제로 환자를 정신 병동에 가두고 전기충격요법까지 쓸 수 있었다. 60년대 이후 법적 규제가 마련되면서 정신과 의사가 함부로 환자를 가둘 수 없게 되었다.

1960년대는 처칠 같은 사회적 권위에 대한 거부가 전세계적으로 일어났던 시대였다. 미국은 권위에 저항하고 개인적 세계에 빠져들던 히피와 사이키델릭 음악이 유행하였다. “What the Butler Saw”는 그런 60년대 반귄위에 대한 정신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었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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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ergizerJinmi 2008년 4월 7일, 7:2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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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동협 2008년 4월 8일, 12:18 pm

    EnergixerJinmi — 초대해주셔서 감사한데 제가 해외에 거주중이라서 못 갈거 같습니다. 마음만 고맙게 받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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