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는 왜 인간을 도와야 할까?

왓치맨 (Watchmen, 2009)

만약 초영웅의 활약으로 미국이 배트남 전쟁에 이겼다면 하는 가설이 바탕이 된 이 영화는 권력과 윤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2시간 45분 동안 뼈가 부셔지고 피가 솟구치는 잔혹한 영상을 보고 있자니 ‘왓치맨’의 초영웅은 기존의 초영웅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선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어두운 영웅 배트맨의 세계는 적어도 명확한 선악이 존재했다. 왓치맨은 전통적 초영웅 만화가 그린 선악의 구별을 없애고 그 속에 복잡하고 밀도있는 혼돈의 세계를 창조한다.

반사회적 인물, 나치, 자본가, 허무주의적 정부요원 등으로 표현된 초영웅은 전혀 초영웅답지 않다. 이들은 폭력성과 월권행위에 대한 반발로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초영웅을 금지하는 법까지 제정되어 은퇴할 수 밖에 없었다. ‘다크 나이트’에서 본 적 있는 초영웅이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처럼 책임감 없는 과도한 권력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왓치맨’은 초영웅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하는 장르 파괴적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 초영웅을 통해서 남루한 현실을 벗어나 대리만족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지나치게 잔인하며 때로는 악을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살인을 즐기는 이들의 잔인함은 관객들을 눈 돌리게 한다. 이 영화는 초영웅을 다룬 공상과학영화이면서 동시에 아주 현실적인 영화다. 초영웅으로 대표되는 인간은 결국 불완전한 존재이며 도덕적 판단보다 감정적, 즉흥적 판단이 세상 일을 결정한다. 혼란스런 현실에 대한 사실적 묘사로 초영웅이나 인간은 원래 선한 존재가 아님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은퇴한 초영웅 코미디언(제프리 딘 모건)이 자신의 집에서 살해 당한다. 동료 초영웅 로샤크(재키 얼 헤일리)가 홀로 이 사건을 풀기 위해 수사를 시작한다. 또다른 거대한 서사구조로 세계 3차 대전이 될 소련과 핵전쟁이 다가오고 있다. 이 영화가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85년은 냉전이 끝나지 않았고 갈등이 점점 고조되던 해였다. 이 원작만화가 출간되었던 1986년에서 1987년까지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이 작품에서 보수적 우파의 가치가 그대로 표현되었다. 이 시기는 영국의 대처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한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전도하며 전세계를 돌아다녔고, 강대국을 중심으로 세계 패권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고 있었다.

당시의 초영웅은 핵무기였다. 초강력 무기를 가진다면 세계 패권은 눈 앞에 있었고 미국은 그 경쟁에서 선두에 있었다. 절대 권력을 가진다는 것에 대한 성찰도 없이 일단 가지려고 달려드는 게 당시의 분위기였다. 초영웅들의 처지도 비슷했다. 선과 악에 대한 명확한 가치관도 서있지 않은 이들이 초영웅이 되어서 나쁜 짓도 많이 저질렀다. 나치와 비슷한 코미디언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베트남 여인을 총으로 쏴죽인다. 강대국 미국이 베트남이나 남미에 저질렀던 악행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힘이 곧 선이라는 논리는 초영웅, 강대국의 존재 자체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인 현실을 알게 해준다.

권력과 책임감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초인에 대한 실존적 고민도 이 영화에 들어있다. 다른 초인들의 능력보다 월등히 뛰어난 닥터 맨해튼(빌리 크루덥)은 초인과 사회의 관계에 관해 성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데, 왜 초영웅은 힘없는 인간을 도와야 할까? 이런 고민에 빠진 닥터 맨해튼은 화성에 가서 부처처럼 명상에 빠진다.

‘왓치맨’의 초영웅 개개인에 얽힌 내면적 갈등과 전체 서사 바깥에 존재하는 세부적 이야기까지 한편의 독립된 영화를 묶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브라질’의 테리 길리엄 감독,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도 중도에 포기한 영화다. ‘300’의 잭 스나이더 감독은 영리하게도 원작의 기본적 뼈대만 남기고 주변 이야기를 다 쳐내고 시각적 형상화에 주력하는 방법으로 영화화에 성공한다. 만화의 한 장면처럼 압축적으로 그려낸 카메라의 촬영은 놀랍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원작의 철학적 깊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왓치맨’의 퇴물 영웅의 도덕적, 사회적 몰락을 첫장면에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코미디언이 고층빌딩에 있는 자신의 집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카메라는 잘 포착한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유추할 수 있다. 과거의 화려한 영광이 담겨있는 사진이나 기억에 대비되는 현재 초영웅의 삶은 비루하다. 자본가로 변신해서 성공한 오지맨디아스(매튜 구드)나 정부연구에 협조한 닥터 맨해튼을 제외한 나머지 초영웅은 영웅이라기보다 평균 이하의 일상에 찌들어 있다. 연애에 빠진 나이트 아울(페트릭 윌슨)과 실크 스펙트라 투(말린 애커맨)를 통해서 인간세계로 내려온 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일반 초영웅 영화와 달리 왓치맨에서 죽는 초영웅도 있다. 초영웅은 더이상 불멸이 아니다. 인간과 초영웅 사이에 존재하던 커다란 벽이 무너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와 연기를 보여준 로샤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얼굴가면과 달리 가장 일관된 초영웅이다. 전통적 영웅에 가까운 삶을 사는 로샤크는 뚜렷한 선악관념을 가지고 있고, 한치의 흔들림 없이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한다. 영화 속에서 서사적 목소리로도 출연하는 로샤크는 전통적 초영웅의 관점에서 다른 초영웅을 바라보며 그대로 담담하게 일기장에 적는다. 로샤크의 눈에 비친 초영웅들은 공정한 판단력으로 행동하지 않고 순간의 감정에 압도된다. 초영웅의 살인사건에 숨은 비밀을 밝히려는 그의 일기는 결국 초라한 초영웅의 윤리의식에 대한 고발이 된다. 위대한 초영웅 따위는 없다.

영화 후반으로 전개되어도 이야기가 도무지 하나로 모아지지 않아서 무척 당황스럽다. 초영웅 각자의 선택조차 모호하게 처리된다. 초인에 대한 철학적 성찰도 명확한 결론을 전달하는 대신에 연속된 삶 속에 파묻는다. 자기 희생으로 세상을 구하는 그런 결말은 없고, 세상은 이미 암흑 속이다. 암울한 미래 속에서 초영웅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그나마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가장 명확한 메시지다.

수많은 초영웅 영화를 봤지만 이번만큼 원작만화를 읽고 싶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왓치맨은 2005년 타임지가 선정한 최고 소설 100편에도 선정될 만큼 만화팬들에게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원작만화에 담겨있는 철학적 고민과 향수에 젖은 초영웅의 세상 속으로 빠져서 풍덩 잠겨볼까.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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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상플러스 2009년 3월 16일, 12:28 am

    왜냐 하면 인간이 초영웅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냈으니까요.. 바로 그거져

    • 류동협 2009년 3월 16일, 12:29 pm

      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초영웅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인간은 귀찮은 존재이기도 하죠.

  • 00 2009년 3월 16일, 3:29 am

    죄송하지만, 사실 초영웅이 어쩌고 할 것도 없는데 약간 좀 거창한듯 합니다.
    작품 안에서 맨해튼 제외하곤 처음부터 끝까지 일말이라도 초영웅인 녀석이 있어야 그것에서 초영웅을 논하는 감상에 공감을 하더라도 할텐데 말입죠. (..)

    • 류동협 2009년 3월 16일, 12:31 pm

      감정이입할 수 있는 초영웅은 이 작품에는 없죠. 그래서 전통적 초영웅이 없다고 해서 일반팬의 불만도 있는 편이죠. 하지만, 저는 다양한 초영웅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새로웠습니다.

  • 홍성일 2009년 3월 16일, 10:05 am

    잘 지내죠? 벌써 두번이나 저 영화를 보았고 원작도 보고 있습니다. 절반정도 보았는데 꽤나 영화로 잘 옮겨왔다는 생각을 하네요. 새로 블로그를 열었습니다. 막 시작하고 처음으로 소식을 알립니다. 건강하고 곧 보도록 해요.

    • 류동협 2009년 3월 16일, 12:32 pm

      그렇지 않아도 이 영화를 보면서 널 생각했어. 너도 좋아할 줄 알았어. 블로그 열었다니 구경가야겠네. 블로그의 세계로 온 걸 환영해 ^^

  • 홍성일 2009년 3월 16일, 10:08 am

    잘 지내죠? 벌써 두 번이나 영화를 보았고 저 또한 원작을 보는 중입니다. 꽤나 잘 영상화했단 생각이에요. 그리고 새로 블로그를 열었습니다. 자주 소통할 수 있겠어요. 조만간 오프에서 볼 수 있겠지요. 건강하세요~

    • 류동협 2009년 3월 16일, 12:33 pm

      똑같은 내용인줄 알고 지울라고 보니까 조금 내용이 다르네. 오프에서도, 온라인에서도 더 자주 보자~

  • 00 2009년 3월 17일, 3:45 am

    영화에도 원작에도 초영웅은 없었단 말이었습니다.
    안티히어로, 히어로 관계 없이 ‘초’영웅은 있지 않은듯…아니, 있지 않았습니다.
    없었죠.

    그리고 없는 것으로부터 있는것을 이야기 하시며 원작에서도 영화에서도 본론적이지 않으며 없었을지도 모르는 것에서 큰 감상을 이끌어 내시니 어쩐지 그것이 부자연스럽고 과장된 듯 하여 쉬이 공감하기 어렵단 의미였습니다.

    남의 집에 와서 시건방진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 류동협 2009년 3월 17일, 9:49 am

      무슨 말씀인지 알고 있습니다. 초영웅의 개념을 폭넓게 보고 쓴 글입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배트맨도 초영웅이 아니죠. 대단하고 거창한 감상은 아닙니다. 초영웅에 대한 부분보다, 초영웅, 영웅, 인간 사이의 구별이 사라진 다양한 해석이 즐거웠다는 뜻으로 쓴 글입니다. 다양한 해석 중의 하나로 가볍게 읽어주세요.

      전 원작은 아직 보지 못해서 구해서 보려고 합니다. 원작도 한번 분석해보고 싶게 만드네요. 제 블로그 글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L 2012년 12월 25일, 4:47 am

      영화에서도 본론적이지않으며 없었을지도 모르는것ㅡ이 뭘 말씀하시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코미디언의 미군 패권의 폐해 대변과(나치는 다소 거리가있지않나 합니다) 미스터 맨해튼의 핵 상징은 원작에서부터 당연히 의도된것입니다. 왜 이름이 맨해튼이겠고 왜 베트남전에가서 민간인 약자를 살해했겠어요.
      이 영화는 안티 초영웅물이 아닌 초영웅에 빗대어 표현한 반미 블랙코미디 입니다. 초영웅물이라는 만화 혹은 소설이나 영화 장르 자체가 애국과 팍스아메리카나를 선전, 확립하는데 이용되어진것을 한번더 비튼거죠.
      스스로 잘 모르는 얘기는 일단 알아보고 난 후에 촌평하는것이 발전적이고 폐가되지않겠죠.

      저야말로 남의집에서 설쳐 죄송합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특히 방대한 원작을 압축적 이미지로 풀어내는데에 놀라운 재주를 가진 감독인것 같습니다. 그점을 콕집어 말씀해주셔서 반가웠어요.

  • julee 2009년 3월 17일, 7:02 am

    별로 보고 싶은 영화가 아니었는데 덕분에 봐야겠어요. 익숙한 장르가 아니었지만 다크나이트의 초대가 새로웠듯 이번에도 기대되내요. 다녀갑니다. 보고나서 올께요. 다들 안녕!!
    여기에 쓸 건 아니지만 언제 장기하와 얼굴들 앨범도 살펴보시길 숙제드려요. 전 나윤선, 들어보죠. 땡큐!!

    • 류동협 2009년 3월 17일, 9:53 am

      이 영화는 다크나이트보다 더 어둡고 잔인하기 때문에 준비는 단단히 하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관심있게 보고 있었습니다.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류동협 2009년 3월 17일, 11:55 am

    영화와 별도로 원작만화에 대한 평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합니다. 마치 양파처럼 껍질을 깔수록 새로운 층이 계속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중요한 의미를 하나만 들자면, 닥터 맨해튼처럼 기존의 어떤 초영웅보다 강력한 능력자부터 도덕적으로 타락한 코미디언까지 망라한 초영웅에도 다양한 급이 존재함을 보여준 겁니다.

    좀더 자세한 글은 원작만화에 대한 글에서 다시 전할게요. 🙂

  • 젤가디스 2009년 3월 18일, 1:33 pm

    정말 재밌게 본 영화라 이글을 클릭했네요. 저는 전혀 지루함없이 끝까지 봤습니다. 특히 처음 오프닝때 “이런영화가 있다니..” 라는 생각에 쉴새없이 몰입했죠. 잭 스나이더 감독, 이제 대니 보일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더불어 제가 이름만 보고 영화를 볼 감독의 대열에 오른거 같습니다.

    • 류동협 2009년 3월 18일, 4:28 pm

      잭 스나이더는 시각적 형상화에는 탁월한 감독인 거 같습니다. 전작 ‘300’보다 이 작품이 서사구조와 시각화에서 더 균형있게 표현해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감독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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