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국방문기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길어져서 한 달 정도 한국에 다녀왔는데, 역시 한국은 그대로다. 예전에 내가 부대끼며 살았던 모습 그대로 나이만 먹어갈 뿐이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모습은 달랐다. 결국은 내가 조금씩 변해버린 거다. 예전에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인 부분들이 “이상하게” 다가왔다. 유식한 말로 하자면, “낯설게하기”라는 러시아 형식주의의 이론 비슷하게 되었다. 관습적이고 고리타분한 생각을 깨고, 새로운 문학을 위해서는, 옷을 입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미국에 있으면서도 늘 한국을 신경 쓰고 살았다. 한국 소식이라면 인터넷 뉴스도 읽고,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습득하며,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감성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고 자부했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나,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부분까지는 채워주지 못하나 보다. 떨어져 있던 시간이나 공간만큼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미국에서도 늘 외국인으로 삶을 살아서, 낯설음이라는 감정은 항상 함께했다. 미국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부분이 내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게 많았다. 그런 감정을 잘 단련시키면, 새로운 관점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라고 느꼈다.

아무튼 2년 간의 외국생활을 나를 어디에도 소속시키지 못하는 국외자가 되게 했다. 지금까지는 수동적인 방관자였다면,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글도 쓰고, 표현하는 참여자가 되어 봐야겠다.

신문방송학 전공자이다 보니, 젤 먼저 눈에 띈 게 미디어였다. 그 가운데 광고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한국 광고와 미국 광고를 비교해보자면, 한도 끝도 없는 차이가 있겠다. 그냥 내 느낌을 말하자면, 한국 광고는 철저히 연예인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이 각종 상품을 휩쓸고 있다. 내가 방문할 당시에는 에릭, 문근영 등이 인기있는 광고 모델이었다.

미국 텔레비전으로 광고를 보면서 이상했던 건 연예인이 나오는 광고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전문 광고모델이 등장할 뿐, 연예인을 볼 수 있는 광고는 화장품 광고 정도였다. 한국 광고에서 인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건 사실이다. 비싼 상품이 아닌 음료나 과자 광고에도 그러했다. 텔레비전에서 연예인은 프로그램과 광고 그리고 뉴스에서도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한국에서 리얼리티쇼가 그다지 인기가 없는 이유도 연예인이 나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 그래서 일반인이 나오는 리얼리티쇼보다 그와 비슷한 구성에 연예인을 출연시키는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쉽다.

권위있는 전문가나, 인기있는 연예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사회의 시스템보다는 특정인의 개인적 능력이 더 중요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카리스마가 있는 정치적 지도자를 기대하는 심리도 비슷하다. 무슨 위기만 생기면, 그 상황을 해결할 초인이 갑자기 나타나길 바라는 언론보도는 그런 심리를 반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결한다면, 결국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들만 길러내는 문화를 유지하게 된다. 인물에 대한 의존은 인맥이 좌우하는 한국사회의 초상이다.

또하나 특이할 만한 건 아파트 광고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아파트 광고의 개런티는 다른 상품광고를 압도한다. 광고는 그 시대의 생활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생활양식이 출현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아파트에 대한 열광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만큼 잘 팔릴다는 얘기다. 땅이 좁다보니 아파트를 건설은 우리 삶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이상처럼 보인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아파트는 이해할만 하지만, 사람도 별로 살지 않는 시골에서도 아파트가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근대화 시절에 아파트는 새로운 삶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정부도 각종 캠페인을 주관하면서, 아파트는 낡은 초가집, 구식 건물의 대립된 삶이 되어왔다. 최근에 들어서 아파트에 대한 선호사상이 더욱 강화되었다. 내가 살던 대전은 불과 몇년 사이에 온통 아파트 숲으로 변해 있었다. 내가 즐겨찾던 유등천변은 아파트로 포위되어 있었음을 말할 것도 없다. 강변 아파트는 최적의 입지조건으로 가장 비싸게 팔린다.

상품으로 아파트는 브랜드가 되어 있다. 특정한 삶의 질이 보장된 아파트 광고에 나는 집단주의를 느꼈다. 고급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그걸 소비하는 즐거움을 맘껏 누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집단주의가 강력한 힘을 발하는 한국 사회에서 주거도 집단화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광고를 통해서 특정 아파트를 팔아보겠다는 건설업체가 그런 의도로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걸 사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

한국 사회는 자본을 통한 계급화가 진행중이다. 계급화가 눈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강남, 분당 등의 부자들의 공화국, 그리고 타워 펠리스 등의 특정 아파트를 중심으로 구획화하고 있다. 어디에 사는지가 차별이 되는 사회가 굳건해짐은 좀 씁쓸해진다.

In Category: 라이프스타일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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