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저널리즘의 지속가능성 진단

가상현실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1950년대 이후에 등장한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려진 멋지거나 혹은 끔찍한 미래의 모습이다. 현재 가상현실을 주도하고 있는 분야는 단연 게임 산업이다. 그러나 가상현실 기술은 게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교육, 의료, 박물관, 건축,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채택되어 응용되고 있다. 저널리즘 산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가상현실 저널리즘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상현실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가상현실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아직 초보적인 단계지만 가상현실 저널리즘이 직면한 현실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보고서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나이트재단에서 발간한 “미래를 바라보기? 저널리즘 속의 가상현실 (Viewing the Future? Virtual Reality in Journalism)”이라는 보고서를 통해서 그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뉴욕타임스는 가상현실 기사를 즐길 수 있는 카드보드 가상현실 뷰어 100만 개 이상을 구독자에게 무료로 배포했고 앱도 함께 발표했다. LA타임스도 화성 표면의 가상현실로 독자를 데려갔고, ABC뉴스도 북한 군대의 퍼레이드와 시리아 난민의 참상을 가상현실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미 가상현실의 기술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가까운 현실이 되고 있다. 2015년 후반부터 저널리즘은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한 스토리텔링 실험에 나서고 있고 2016년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가상현실 저널리즘이 다양한 실험을 거듭해서 성장할 것이라고 대체로 낙관하는 입장이 주류를 이루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많은 문제가 남아있다.

가상현실 저널리즘의 중요한 순간

나이트재단은 USA투데이와 협력해서 가상현실 기술, 헤드셋의 접근성, 가상현실 기사의 질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는지를 주로 분석했다. 또 뉴스 소비자들이 과연 가상현실 체험을 받아들일 것인지, 가상현실 광고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등의 문제도 이 보고서를 통해서 논의했다.

지금까지 가상현실 저널리즘이 시도한 실험을 통해서 얻은 경험은 과연 무엇일까? 독자와 기사의 대상 사이를 좁힐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상현실 기술이 저널리즘에 가져온 혁신 중 하나였다. 일반 독자들은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그들이 직접 가 볼 수 없는 전쟁터나 오지를 체험할 수 있었고, 이는 기사의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반면에 360도 각도와 상하를 다 볼 수 있는 구형 카메라를 통한 촬영은 기자의 관점을 사라지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는데 이러한 변화와 관련해 보도되는 이야기의 진정성이 구현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더 큰 문제는 가상현실의 신선함이 사라진 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가상현실 콘텐츠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지만 아직 뉴스 산업에서 광고나 스폰서 형태가 표준화될 정도로 성숙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서 360도 카메라 촬영을 바탕으로 한 서비스가 본격화되고 있어서 그 가능성은 큰 편이다. 가상현실 기술은 중소 규모 언론사가 시작하기에 투자 비용이 너무 큰 위험이 따른다는 단점도 있다.

가상현실 저널리즘은 2012년 1월 선댄스 필름페스티벌에서 전직 뉴스위크 기자 노니 드 라 페냐가 ‘로스앤젤레스의 기아’라는 작품을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헤드폰과 고글을 테이프로 대충 붙여서 만든 허접한 장비를 착용할 뿐이었지만 관객들은 순간 로스앤젤레스 푸드뱅크의 현장으로 가게 된다. 당뇨병 쇼크로 쓰러지는 사람을 바로 옆에서 보게 될 수 있으며, 도시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현실에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는 관객도 속출했다. 드 라 페냐는 계속해서 가정폭력, 낙태 등 주제를 다룬 30여 편의 가상현실 경험을 다뤘다. 그의 인턴으로 가상현실 헤드셋을 만든 사람이 지금의 가상현실 기기 오큘러스를 창업자 럭키 팔머였다. 그는 2012년 8월에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서 25만 불을 목표로 오큘러스 리프트 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250만 불을 모았고 1년 반 뒤에 페이스북에 인수됐다.

가상현실 저널리즘 산업의 놀라운 성장

현재는 구글, 삼성, HTC, 소니 등의 회사가 가상현실 헤드셋을 만들고 있다. 2020년까지 3,400만 개의 헤드셋이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 업체 디지케피탈은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관련 시장의 매출이 1,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았다. 전통적인 뉴스업계도 가상현실과 360도 비디오의 실험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2014년 9월에 드모인레지스터는 미국 아이오와주 가족농업의 현장을 보여주는 영상을 제작했다. 2015년 6월 BBC는 프랑스 북부에 마련된 시리아 난민 캠프를 360도 비디오로 보여줬으며, 2015년 9월 PBS의 ‘프론트라인’은 에볼라 바이러스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한 실험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 저널리즘 아직도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가 많다. 소비자 시장도 충분히 크지 않은 문제도 있고, 헤드셋을 대중화하기 위한 기술적 난제도 풀어야 한다. 높은 제작 비용 때문에 빠르게 수익이 나지 않으면 가상현실 보도는 재정적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뉴욕타임스의 난민 가상현실 비디오가 공개됐을 때 NPR 뉴스 편집장 마이클 오레스크스는 기술혁신과 저널리즘 실천 사이에 균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기술이 과거의 좋은 기술의 기준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혁신이 이뤄지도록 주의 깊은 배려가 필요하다. 몰입형 스토리텔링 기업 라이엇(RYOT)의 몰리 스웬슨은 우리가 가상현실을 통해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공동체로 진입할 수 있고, 이로써 우리 자신을 둘러싼 경계를 허물게 됐다고 말한다.

나이트재단이 데이터 분석 회사 퀴드에 의뢰해서 분석한 투자와 추세 정보는 가상현실 관련 시장에서 저널리즘이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전체 가상현실 산업 중에서 오큘러스 같은 하드웨어 회사가 가장 많은 투자와 관심을 받았다. 퀴드의 분류에 따르면, 크게 교육/게임(20%), 하드웨어(25.5%), 현실세계 애플리케이션(54.5%) 등 세 가지로 정리된다. 여기에서 가상현실 저널리즘은 마지막인 현실세계 애플리케이션 항목에 속한다. 상호작용 콘텐츠나 3차원 입체 기술을 현실세계에 적용한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현실세계 애플리케이션은 다른 분야에 비해서 비교적 최근에 투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트너 연구회사의 추세 분석은 머리에 착용하는 가상현실 기기가 2018년까지 2,500만 개 이상 팔리면서 대중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견했다. 리코드의 보고서는 2020년까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가상현실 시장이 700억 달러의 가치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른 보고서들도 비슷한 예측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가상현실 우주 분야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348건의 계약이 체결되었고 2015년에만 119건 투자가 집중됐다. 시장조사 기업 HIS의 피어스 하딩-롤스는 가상현실이 거품이 될 것이냐, 아니면 대세가 될 것이냐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지만 대세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았다. 그는 가상현실 기술이 1990년대에 처음 도입됐을 때에 비해 발전된 기술, 더 많은 투자, 새로운 영상, 낮아진 헤드셋 가격 덕분에 성장할 동력이 마련됐고, 2016년을 모바일 가상현실 플랫폼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원년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초기 가상현실 시장은 구글, 페이스북, 삼성 등 거대한 기술회사가 주도하면서 다양한 중소규모 회사들까지 팽창하게 될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관점

가상현실은 두뇌를 해킹해서 사용자가 현실이 아닌 것을 믿게 해주는 기술인데, 그런 환각이 가능해지려면 사용자가 참여한 이야기가 그럴듯한 현실이어야 한다. 믿을만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뉴스 업계가 스토리텔링을 효과적으로 하지 못한다면 그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론사는 새로운 형태의 몰입적 이야기를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12개의 언론사가 60여 편 가상현실 기사를 만들어 독자가 체험할 수 있게 했다. 가상현실 이야기의 기사를 쓰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낮아지고 절차도 간소해지면서 다양한 언론사가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기자가 가상현실 카메라로 촬영하면, 소프트웨어로 각각의 촬영분을 종합해서 묶어주고, 그걸 유튜브360 같은 사이트에 올리면 사용자들이 헤드셋과 앱을 통해서 가상현실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오큘러스 리프트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삼성 기어, 구글 카드보드를 비롯한 모바일 기기까지 늘어나서 시장이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현실세계 애플리케이션 분야의 가상현실 이야기도 매달 늘어나고 있다. 의료 산업은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치료목적 가상현실 이야기를 만들어 쓰고 있다. 간호사가 화상 환자를 눈으로 뒤덮인 북극으로 데려가서 치료하는 가상현실도 효과를 보고 있다. 미식축구 코치는 가상훈련 상황을 이용해서 선수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뉴욕타임스 매거진 편집장 제이크 실버스타인은 난민 캠프의 가상현실 영상을 보고 기사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고 감회를 털어놓았다. 가상현실 저널리즘이 독자에게 느끼게 할 체험은 문자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가상현실 저널리즘에 관한 조사를 통해 그 잠재력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가상현실 기사는 전통적 기사보다 독자의 몰입도가 훨씬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 몰입 효과를 얻으려고 시간과 템포를 조절하는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재의 단계이다. 기술적으로 진전이 많이 이뤄지긴 했지만 다양한 각도의 영상을 모으고 종합하는데 드는 비용이나 시간이 많이 드는 것 역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일반 대중들에게 가상현실 기기는 아직도 생소하고 어렵기만 하다. 때문에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쇼핑몰이나 다양한 공간에서 시연이 이뤄지고 있다. 360도 카메라로 현장을 다루는 경우 원하지 않는 프라이버시가 노출되는 윤리적 문제도 미리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도 낯선 가상현실

하나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익숙한 기자한테 다양한 각도와 관점으로 이야기가 발전될 수 있는 가상현실 이야기 문법은 여전히 낯선 영역이다. 이야기 구조만 제공하고 기자의 관점을 최대한 제한하는 방법은 새로운 학습 영역이다. 가상현실 하드웨어는 발전하고 있지만,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가상현실 뉴스는 기존의 전통적인 뉴스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 균형점을 찾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가상현실 뉴스의 수익원 확보가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현재 소수의 언론사만이 광고를 유치하고 있으며 가상현실 저널리즘의 수익 모델조차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가상현실 저널리즘이 도입되고 발전하는 과정을 자세히 다뤘지만, 초기 단계의 분석이라는 한계가 있다. 가상현실 저널리즘이 게임 산업을 기반으로 발전한 기술을 도입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는 일은 무리가 따를 수 있다. 게임의 문법과 기사의 문법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널리즘적 관점에서 가상현실을 재해석해야 한다. 가상현실 저널리즘의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에 대한 논쟁도 분분하다. 기술적 한계나 윤리적 문제도 가상현실 저널리즘이 성장하기 위해서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하루가 다르게 360도 영상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가상현실 저널리즘은 이미 현재진행형의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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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 류정화
  • 월간 신문과방송 2016년 6월호에 기고한 ‘해외 미디어 보고서 들춰보기’ 연재글입니다.
In Category: 미디어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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