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뱀파이어

뱀파이어 영화가 확실히 달라졌다. 사람의 피를 빠는 뱀파이어를 때려잡는 퇴마사의 시선를 벗어나서 뱀파이어 시각에서 바라본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블레이드”는 뱀파이어를 잡는 뱀파이어가 주인공이고, “언더월드”는 아예 뱀파이어가 주연이다. “트와일라잇 (Twilight, 2008)”과 “렛미인 (Let the Right One In, 2008)”은 사랑에 빠진 10대 뱀파이어가 주인공인 세상이다. 주인공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 영화를 해석하면 그냥 10대 성장기와 사랑이야기가 주제인 낭만적인 부드러운 영화다.

“트와일라잇”과 “렛미인”은 인간과 금지된 사랑에 빠진 뱀파이어에 관한 이야기다. 잡아 먹어야 할 인간을 사랑하게 된 포식자 뱀파이어의 역설적 운명이 두 영화의 갈등이다. 각각 미국과 스웨덴이라는 나라에서 만든 영화지만 국경을 초월한 뱀파이어 영화는 전지구적 화제가 되고 있다.

왜 이토록 뱀파이어 영화가 인기를 누릴까. 나의 가설은 이렇다. 뱀파이어는 현대 사회의 핵심 속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신화이다. 살기위해 인간이 다른 인간을 물어뜯어야 하는 경쟁사회를 잘 표현한 게 뱀파이어 영화가 아닐까. 뱀파이어도 경쟁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전에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신자유주의 경쟁논리가 절대적 진리로 인식되는 현대사회에서 경쟁에 강한 뱀파이어는 주류가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뱀파이어 영화의 인기의 배경에는 이러한 경쟁의 살벌한 풍경 속에서 현대사회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뱀파이어 영화가 지극히 현실이든, 풍자이든 상관없이 그 자체가 익숙한 경험이다.

미국의 “트와일라잇”은 좀더 밝은 분위기 속에서 첫사랑의 낭만이 진하게 배여있다.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햇볕이 뜨거운 아리조나에서 연중 비가 자주 내리는 북서부 워싱턴주 인구 3천명의 작은 마을로 이혼한 아버지를 따라서 이사온다. 불행한 가정사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하는 벨라는 외로운 소녀다. 예쁜 외모 덕분에 새로운 학교에서도 친구들에 둘러싸여 잘 적응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속내를 터놓을 친구는 사귀지 못한다.

스웨덴의 “렛미인”은 우울하고 추운 날씨만큼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첫사랑의 풍경을 담담히 그려낸다. 오스카(카레 헤데브란트)는 학교에서 집단괴롭힘을 당하는 외로운 소년이다. 그의 부모는 별거중이고 냉정한 어머니와 살고 있어서 의지할 구석도 없다. 자신을 괴롭히는 놈에게 가상의 복수를 꿈꾸며 엉뚱한 나무에 분풀이 하는 게 전부다. 벨라나 오스카 모두 외로운 이들이다. 비슷한 속성의 뱀파이어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오스카에게 말은 건 이엘리(리나 레안데르손)는 소년의 외로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 외로움을 이해하면서도 친구가 되고픈 건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도 마찬가지다. 본능적으로 어둠을 읽고 다가서는 뱀파이어들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위험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치 사냥감에 사랑을 느낀 사냥꾼처럼 이들은 묘한 긴장감 속에 사랑을 키워간다.

오스카와 벨라는 사랑하는 상대의 정체를 알게 된 후에도 그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외로움의 강도가 너무 컸고 인간에게서 그런 따뜻한 감정을 한번도 느낀 적 없었기 때문에 오스카와 벨라는 냉혈한 뱀파이어의 따뜻한 관심에 얼었던 마음을 녹이게 된다. 게다가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구해주는 이도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이기 때문이다.

“트와일라잇”은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고 외로움이 충분히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 반면, “렛미인”은 외로움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라는 주제의식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어서 좀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십대의 사랑과 섹시한 뱀파이어를 강조한 “트와일라잇”은 미국 영화 특유의 낙관적 결말로 십대 여성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렛미인”은 현재 미국영화로 다시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추운 날씨 자체도 하나의 강한 테마로 표현하려면 파고가 배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인간의 피를 빨아야 하는 뱀파이어의 외로움이 다른 인간의 외로움을 만나서 사랑이 될 수 있을까.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뱀파이어는 평생을 같은 나이로 정지된 삶을 산다. 비록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불멸이 아닌 인간은 나이가 들 수 밖에 없다. 오스카나 벨라 모두 늙어서 죽게되면 이엘리나 에드워드는 다시 외롭게 남겨진다. ‘렛미인’에서 그런 결말이 암시적으로 등장한다.

먹이와 사랑에 빠진 포식자라는 역설은 이 두 영화를 관통하는 공통된 주제의식이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은 계급이나 인종을 넘어선 사랑만큼 매력적인 갈등이다. 두 영화는 단순히 종을 넘어선 사랑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12살의 오스카, 17살의 벨라 모두 십대다. 왜 성인이 아닌 십대인가? 십대 성장기는 인간에게 가장 외롭고 견디기 힘든 시기다. 부모의 사랑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사랑할 상대를 쉽게 만나지도 못한다. 십대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명목으로 가두기만 하고 구속당하는 시기다. 그 외로움 속에서 느끼는 맹목적 사랑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 영원히 십대로 살아야 하는 에드워드와 이엘라는 외로움의 결정체다. 특히, “트와일라잇”의 인기는 미국 십대들의 공감 속에서 탄생한 이유있는 열광이다.

다른 인간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위로를 뱀파이어에게 찾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아주 씁쓸하다. 뱀파이어에게 물어뜯기더라도 그 편이 더 행복하게 느낄 수 밖에 없는 벨라와 오스카의 외로움이 해일처럼 크게 다가온다. 비인간적 사회가 사람을 뱀파이어로 내몰고 있다. 이건 마치 매트릭스 바깥으로 나온 레오가 외로워서 다시 매트릭스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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