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게르기에프의 음악정치를 비판하는 서구언론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에프는 지난 8월 남오세티아의 수도에서 평화 콘서트를 열었다. 이 콘서트는 서방언론과 러시아 언론에서 각각 논쟁이 되었다. 그루지아가 남오세티아를 침공했고 연이어 러시아가 남오세티아로 군대를 보내서 그루지아와 전쟁을 치뤘다.

서방세계와 러시아의 대리전 성격을 띄는 이 전쟁에 대한 평가가 다른 만큼 게르기에프의 정치적 선택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게르기에프는 러시아 지도자 블라디미르 푸틴과 아주 절친한 사이이며, 이 평화 콘서트를 시작하기 전에 러시아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주곡으로 선택한 것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였다. 이 곡은 2차 세계대전으로 고통받는 러시아 군인을 달래주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주제를 담고 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LSO)의 상임 지휘자인 게르기에프는 이미 서유럽이나 미국에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특히 러시아 작곡가에 대한 곡해석 능력은 탁월해서 음악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를 둘러싼 논쟁 가운데 중심이 되는 것은 음악과 정치에 대한 입장이다. 특히 그의 명백한 정치적 참여가 음악의 순수한 정신을 흐린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과연 음악과 정치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온당한가?

유태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화해를 위해 콘서트를 열였고, 사이먼 레틀이나 레나드 번스타인은 무너진 베를린 장벽에서 평화의 연주회를 가졌다. 이 외에도 음악과 정치가 함께하는 사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음악은 사회와 떨어져서 순수하게 존재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음악은 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그 안에서 서로 영향을 받으면서 창작되었다.

게르기에프에 대한 비판의 근거로 “순수 음악론”으로 전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게르기에프는 오세티아 출신 러시아인으로 이 콘서트를 기획했다. 자신의 조국이 전쟁으로 파괴되는데 팔자좋게 음악만 매진하라니. 친러시아를 선택한 게르기에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서방 언론의 평론가들은 한결같이 그를 비난했다. 이 비평가들은 푸틴의 러시아를 비판하는 직접적인 방식이 아닌 정치와 음악을 분리하지 않았다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게르기에프를 꾸짖었다. 음악과 정치를 분리하지 않은 것으로 음악가를 판단한다면, 나치 뿐아니라 연합군의 정치적 선동에 봉사한 음악가 모두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음악가가 단순히 정치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비난하기보다 “어떤” 정치를 했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나는 게르기에프의 정치적 선택에 관해서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이다. 음악과 정치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밖에 없다. 정치가 어떻게 음악으로 형상화되는지 관찰하며 그의 음악을 들을 것이다. 순수예술은 예술가의 머리 속에 있을 때나 존재한다. 예술가가 공적 활동을 하는 순간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순간 정치와 예술의 경계는 사라져 버린다.

모든 음악이 정치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게르기에프의 경우처럼 정치과 음악이 서로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 정치적 선택도 그의 음악을 평가하는 기준 가운데 한가지가 되어야 한다. 푸틴 체제에서 자행되는 군사적 폭력이나 인권 말살에 대하여 게르기에프가 어떤 의견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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