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오해

미래를 설계하지 않고 대충 살다보니, 막상 닥치고 후회하는 일들이 허다하다. 그 가운데 제일 기억나는 세 가지 오해가 있다. 그 세가지 오해가 내 인생에 치명적인 결과를 남긴 건 아니지만, 미리 계획을 세우고, 대비를 했었더라면 덜 고생했을거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펼쳐진 인생이니 대충 잘 추수려서 나가는 수 밖에 없다. 어차피 그 오해를 하지 않았더라도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거다.

첫번째 오해는 “국문과에 가면 전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줄 알았다. 창작 훈련을 받기는 커녕, 4년 내내, 언어학, 비평, 문학이론, 고전만 잔뜩 배웠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창작이 목적이었다면 문예창작학과를 갔어야 했다. 그런 오해를 한 게 나만이 아니어서, 우리끼리 모여서 창작소모임을 통해서 욕구를 적당히 추스려야 했다. 아쉽게도 내가 졸업한 후에야 시인 교수님도 오시고, 소설창작 강의도 개설되었다고 한다. 이론의 눈을 가지게 되니, 창작의 욕구가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경험했다.

학부를 졸업할 무렵, 신문방송학에 관심가지면서 학문의 길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두번째 오해는 “공부하면 원하는 책을 무진장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책읽는 걸 좋아하고 즐겼지만, 독서를 직업으로 먹고 살기는 힘드니까 차선으로 책을 많이 보는 학자를 하면 책도 보고, 공부도 할 수 있을거라고 철석 같이 믿었다. 근데 책을 읽을 시간이 너무 없다. 많이 읽기는 하지만, 재미없고 딱딱한 이론서와 논문만 읽고 있다. 젠장, 소설이나 시집은 못본지가 벌써 몇 년째다. 박사과정으로 접어 들면서 한 분야의 관련이론들에만 익숙해질 뿐, 폭넓은 독서를 하지 못한다. 간혹 이론가 중에 문학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반가워서 탐독하면서 대리만족을 하기도 한다.

세번째 나의 오해는 “유학을 나오면 공부만 하면 되는”줄 알았다.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해야 하다보니 학교에서 이런저런 일을 해야만 한다. 교수들 논문쓰는 자료를 찾아다주거나, 강의보조도 해야하고, 각종 잡다한 업무가 너무 많아서, 어쩔때는 내 공부는 뒷전이 되고 만다. 이것도 미국문화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위로하고 살지만, 일에 치여서 헉헉댄다. 게다가 외국인으로 느끼는 이질감, 문화적 장벽, 인종차별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내가 한참 생각을 잘못했구나라고 느낄 때가 많다. 외국에서 여행이 아닌 생활인이 되기 위해서는 몇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나고 자라난 곳에서 사는 거랑, 생판 듣도보도 못한 곳에서 처음부터 다 배워야 하는 곳에서의 삶의 차이는 상상하기 어렵다. 똥개도 자기집에서는 50%먹고 들어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유학나올때 단단히 준비하지 못하고 막연한 낭만적인 기대를 갖고 나온 건 큰 오해다.

매번 저지르고 후회하는 인생이다. 앞으로 어떤 무지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인생이다. 다만 앞으로 그런 실수를 줄여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20대초반의 불안은 어떤 길을 가야할지 모를 막막함이라면, 앞으로의 불안은 가고 있는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당혹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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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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