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 사회가 부셔버린 영혼

테스 (Tess, 1979)

영화 “테스”는 토마스 하디의 원작소설보다 배경이 된 빅토리아 시대를 더 보수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간단히 말해 남자들에 의해 망가진 한 여자의 비참한 삶에 관한 것이다. 가장 먼저 테스를 불행에 밀어넣은 이는 다름아닌 테스의 아버지였다. 우연히 자신의 혈통이 귀족 집안인걸 알게된 테스의 아버지는 근처에 사는 같은 성을 가진 부자 귀족집안으로 어린 테스를 보내서 도움을 얻으려 한다. 아버지의 이기심은 테스의 삶을 비극으로 이끄는 시작이었다.

테스의 삶을 결정적으로 망쳐놓은 사람은 바로 그 귀족 집안의 아들 알렉스다. 그는 테스를 유혹해서 숲속에서 겁탈하고 임신시킨다. 테스는 그 집을 떠나서 애를 낳지만 아이는 일찍 죽는다. 테스는 마을사람들에게 나쁜 여자로 낙인찍혀 그곳에 정착할 수 없어서 다른 마을로 떠돌게 된다. 테스는 이미 사회적으로 죽은거나 마찬가지였다.

세번째 남자는 역설적으로 테스가 유일하게 사랑한 남자였던 앤젤이다. 천사라는 이름처럼 착한 성품을 지녔지만 그도 결정적인 순간에 테스를 버리고 브라질로 떠난다. 테스와 사랑에 빠진 앤젤은 결혼식날 그의 과거를 고백하고 테스에게 용서를 구한다. 순진한 테스는 자신도 용서받을거란 믿음으로 앤젤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지만 앤젤은 테스의 과거를 용서하지 않는다. 앤젤은 자신의 과거는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아내의 과거는 용서받지 못할 짓으로 보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적 가치관에 갇힌 앤젤도 테스를 구원할 수 없다.

테스를 버린 건 남자만이 아니었다. 종교도 테스를 힘들게 했다. 죽은 아이를 기독교적 의식으로 장례를 치뤄줄 수도 없었던 테스는 목사에게 다시는 교회에 오지 않겠다고 저주한다. 종교에서 구원을 얻으려던 테스는 이미 종교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었다.

이 영화를 처음봤을 때 나는 테스가 운명에 희생된 불쌍한 영혼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테스는 이러한 운명에 그냥 체념하기만 하지 않고 용기있게 결단을 내린다. 사랑을 찾아서 다시 돌아온 엔젤과 떠나기 위해 자신을 괴롭힌 알렉스를 살해하고 도망친다. 짧은 시간이지만 테스는 자신을 위해서 산다.

원작의 배경은 영국이지만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촬영한 이 영화에서 아름다운 자연도 또하나의 주인공이다. 거대한 운명처럼 자연은 인간을 압도한다. 비참한 노동자의 삶을 살아야했던 테스는 아름다운 자연 속을 떠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테스는 이교도의 무덤인 스톤헨지에 누워서 잠을 자는데, 그 풍경또한 아주 눈부시다. 자연은 그토록 아름답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나약하고 힘겹다.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나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의 섭리에 비하면 인간이 만든 관습, 계급, 편견은 티끌이라 할 수 있다. 테스는 자연보다 인간사회의 제약에 좌절하게 되는 비극적 인물이다. 그리고 테스의 운명은 빅토리아시대의 하층계급인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보여준다. 이들은 귀족에게 착취를 당하고 사회적 관습에 자신의 삶이 무너져도 어디에 하소연할 수조차 없다. 자신이 원치 않던 겁탈과 임신으로 망가진 삶을 바로잡아 줄 정의가 존재하지 않았다. 귀족의 횡포에도 저항할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테스처럼 쓰러져갔다.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농민 노동자들의 삶은 테스와 다르지 않았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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