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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경기보며 트윗하기

김연아 경기를 한다는 소식을 트위터로 알았다. 곧바로 텔레비전을 켜서 채널을 NBC에 맞췄다. 무한도전으로 접한 봅슬레이 경기와 알파인 스키 등이 교차방송되고 있었다. 저녁 먹고 나서 보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낮 경기였다. 생방송으로 해주는 줄 알았더니 녹화경기였다. 피겨 스케이트는 생중계를 해주려나? 그냥 텔레비전으로 다른 경기를 지켜보면서 김연아 경기를 기다렸다. 트윗에서 조금 있으면 김연아가 나온다고 해서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봤지만 다른 경기만 보여줬다. 이것도 녹화방송하려는 모양이군. 미국인이 유력한 우승후보가 아니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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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미디어법에 집착하는 이유

예전에 비해 영향력이 많이 약해지긴 했어도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는 뉴스는 텔레비전이다. 신문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졌고, 그 빈틈은 인터넷 뉴스가 채우고 있다. 종이신문 매체도 변해버린 환경에 맞춰서 인터넷 중심체제로 바꾸고 있다. 텔레비전 뉴스는 이렇게 변해버린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텔레비전 뉴스에 대한 의존도는 중장년으로 갈수록 높아진다. 이 연령대는 한나라당 지지층과 겹쳐진다. 연령이 지긋한 분들은 신문이나 인터넷은 보지 않더라도 텔레비전 뉴스는 꼭 본다. 그래서 한나라당에게 방송은 포기할 수 없는 매력적인 매체다.

뉴스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조중동은 이미 재벌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수의 시각으로 뉴스를 전달하고 있다. 조중동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신문시장의 70퍼센트 정도는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진보적 신문이라는 한겨레, 경향이 신문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초라하다. 신문시장은 보수가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내고 있는 게 방송뉴스다.

한나라당이 가장 먼저 추진하려는 법안이 바로 미디어법이다.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을 통과시켜 공영방송을 재벌방송 혹은 조중동방송으로 만드는 초석을 깔려고 한다. 한나라당이 집권초기부터 추진하려는 신자유주의 법안이 기다리고 있다. 미디어법을 통과시켜 현재 부정적인 국민의 여론을 방송뉴스로 바꿔 보려는 전략이다. 미디어법 통과가 중요한 이유는 국민적 저항이 심한 다른 신자유주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재벌방송이 시작되면 재벌의 이해를 보호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해야할 이유가 사라진다. 어렇게 되면 한나라당이 앞으로 추진하려는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 금산분리법, 의료법 등 신자유주의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방해세력이 현격히 줄어들게 된다. 국회 내부의 야당만 상대하면 되고 신문, 방송의 든든한 지원으로 법안 통과도 쉬워진다.

한나라당의 장기집권 프로젝트의 최우선 과제로 미디어법을 삼은 것은 당연하 이치다. 방송법만 통과시키면 이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까. 비판여론이 가장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인터넷은 사이버모욕죄와 실명제로 검찰이 자의적으로 네티즌을 구속할 수 있다. 집회나 시위에 대한 관련 법안도 이미 마련되어 있다. 한나라당은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된 절차에 따라서 반대의견이 표현될 수 있는 통로를 최대한 차단하려고 한다.

미디어법은 방송의 신뢰와 권위를 빌려서 한나라당이 반대여론을 제압하려는 강력한 무기다. 경제살리기와 전혀 무관한 재벌방송 만들기에 혈안이 된 한나라당의 정치게임은 국민적 저항을 맞이할 것이다.

민영방송의 천국인 미국에서 1966년 공영방송 PBS가 탄생했다. 그 영향력은 초라하지만 PBS는 꾸준히 공익에 봉사하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만들었다. 상업방송만으로 충분했다면 왜 공영방송이 탄생했을까. 미국의 공영방송이 탄생한 배경은 따로 글을 써서 다룰 예정이다. 상업방송의 천국인 미국인들도 부러워 하는 한국의 공영방송이다. 정치논리로 공영방송을 파괴하려는 한나라당은 제발 경제살리기에 대한 정책를 내놓아야 할 때다.

대한민국의 신문, 방송, 인터넷 모두가 한 목소리로 정부찬양을 한다면, 전여옥 표현대로 ‘이건 나라도 아니다’. 한나라당은 이런 세상을 원하는가?

미디어악법과 언론총파업

한마디로 MB 정권의 사주를 받아 한나라당이 조중동에게 방송을 통째로 넘기려는 수작이다. 오랜만에 조중동 홈페이지를 둘러봤더니 아주 난리가 났다. 방송이 자기들 수중으로 넘어오게 생겼으니 표정관리도 못 하고 대놓고 한나라당에 강도 높은 추진을 요구하고 언론총파업을 비난하고 나섰다.

MB 정권과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법과 질서를 강조하더니 자신들이 먼저 어겨가며 날치기로 미디어법안을 상정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절차와 원리를 뿌리째 흔들고 마음대로 하겠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좋아하는 ‘무한도전’을 당분간 볼 수 없을거라는 분노였다. 국민의 방송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언론총파업은 당연히 적극 지지한다. 경제난으로 힘든 상황에서 방송을 제작하는 이들을 위로는 못할 망정 이렇게 망치려고만 하는 한나라당에 너무나 화가 난다.

한나라당은 경제난 극복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정권 재창출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들은 조중동 등 우파신문을 자신들의 편으로 가진 것도 모자라 KBS와 YTN과 몇몇 지역방송은 낙하산으로 접수했고 미디어악법을 통과시켜 MBC마저 전부 자기편으로 포섭하려 한다. 이렇게 언론영역도 장악하고 인터넷도 재갈을 물리고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서 공포정치를 펴게 되면 MB정권은 5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용산학살 같은 일이 여기저기서 터져도 쉽게 덮을 수 있는 체제가 되어버린다.

언론총파업에 대한 국민적 지지로 날치기 미디어악법을 막아내야 한다. 여기서 무너지면 대운하가 뚫리듯 다른 악법이 밀려올 것이 뻔하다.

지금의 언론총파업과 성격이 조금 다른긴 하지만 작년에 미국에서 할리웃 작가총파업이 있었다. 미디어 대기업이 작가에게 당연히 지급해야할 저작권료를 수십년간 제대로 주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놀라웠던 건 자본주의의 선두에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이 파업에 대한 지지가 뜨거웠다. 보수언론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떨어진 시청률과 작가노조를 계속 공격했다. 하지만 헐리웃 배우, 잡지사, 시민단체, 시민들의 지지 속에서 작가노조는 원하는 성과를 어느정도 얻어낼 수 있었다. 일반 시민들의 따뜻한 연대가 없었다면 작가노조는 그 싸움에서 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언론총파업으로 정상적 방송이 어렵게 되었지만 이런 약간의 불편함을 참아내야 공정한 방송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친한나라당 언론은 차질이 생긴 방송의 불편함을 집중 강조할 것이다. 이들은 총파업의 원인에 대한 보도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언론노조에 대한 왜곡과 비난을 서슴치 않을 것이다. 뭐 새롭지도 않고 우리는 이미 그걸 겪어봤다. 정상적 방송을 볼 수 없는 잠시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그 원인을 야기한 한나라당에 분노를 분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정한 방송의 미래는 없다.

현정부가 내놓은 법안 가운데 살리는 법은 없고 죄다 죽이는 법이다. 미디어법으로 방송을 죽이고, 사이버모욕법으로 인터넷을 죽이고, 의료법으로 공공의료서비스를 죽이고, 국정원법으로 인권을 죽이고, 4대강정비로 자연을 죽이려고 한다. 대중문화계도 MB 정권에 들어와서 더 어려워졌다.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금도 대폭 삭감하고, 한국대중음악상에 대한 지원금도 끊어버렸고, 다른 문화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최대한 줄여버렸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국가지원을 통해서 문화적 자생력을 키울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데 그 반대로 가고 있다. 부당한 죽음에 맞서 싸운 게 인간의 순리다. 언론총파업도 그런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방송을 죽이려는 세력에 맞서 방송을 살리기 위해서 노조가 거리로 나왔다. 이들에게 방송의 운명이 달려있다.



미국 공화당의 확성기가 된 폭스뉴스: Outfoxed (2004)

미국의 조중동이라고 할 수 있는 케이블 뉴스채널 폭스뉴스는 미국 보수의 목소리를 대표한다. 중도적 성향의 CNN과 달리 폭스뉴스는 노골적으로 우파의 논평과 뉴스를 섞어서 방송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몇번 폭스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주장은 참아준다고 해도 근거없는 비방으로 일관된 뉴스는 짜증이 나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 심각성이 이미 도를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버트 그린왈드(Robert Greenwald)가 감독한 안티폭스(Outfoxed)는 루퍼트 머독의 폭스뉴스가 저널리즘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권력에 대한 감시기능은 사라지고 공화당의 이익에 철저히 봉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차분히 보여준다. 이 작품은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처럼 냉소적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확실한 증거와 조심스런 인터뷰를 바탕으로 폭스뉴스의 문제점을 고발한다.

비민주적 뉴스생산

기자들이 뉴스거리를 찾아내고 편집진의 선택을 통해서 이뤄지는 상향식 뉴스과정이 일반적 저널리즘이다. 하지만 폭스뉴스 채널은 이러한 방식을 따르지 않고 사주나 경영진이 뉴스를 결정하고 기자가 뉴스를 찾아내는 하향식 뉴스결정을 따른다. 이런 비민주적 뉴스결정은 매일 아침 메모형식으로 기자에게 보도지침으로 내려온다. 그날 다뤄야 할 주제뿐 아니라 단어의 선택이나 동영상 촬영방법까지 상세히 명시되어 있다. 전두환 정권시절의 보도지침 같은 언론통제가 정부가 아닌 사주로 부터 나온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다.

폭스식 비민주적 뉴스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뉴스가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현실을 왜곡하는 순간 권력이 된다.  전직 폭스뉴스 기자의 고백은 현실 왜곡의 한 단면을 명백히 보여준다. 존 드 프레(Jon Du Pre) 기자는 레이건 대통령 생일날 레이건 도서관 보도를 배정받았다. 축제의 분위기를 보도하라는 상부의 명령이었지만 도서관에는 소수의 초등학생의 견학이 전부였다. 존 드 프레 기자는 억지로 촬영을 강행해서 필요한 보도를 했지만 충분히 축제의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직을 당하게 되었다.

경영진의 머리속의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폭스뉴스의 기자는 선전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비민주적 뉴스생산의 체계이기 때문에 잘못을 바로 잡을 방법도 구조적으로 막혀있다. 경영진은 효율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케이블로 전파할 수 있다. 폭스뉴스는 파시즘 정권의 언론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솔직하지 않은 폭스뉴스

역설적이게도 폭스뉴스의 캐치프레이즈는 공정하고 균형잡힌(Fair and Balanced) 시각이다. 그러한 가치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목소리를 같은 비중과 태도로 다뤄야 한다. 하지만 폭스뉴스는 사회현안에 관해 보수 인사들 위주로 인터뷰한다. 80%의 보수인사와 20%의 진보인사를 모아놓고 공정한 토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반면 중도를 지향하는 CNN방송은 똑같은 수의 진보와 보수 논평자를 모아놓고 토론한다. 어느쪽이 더 공정한 방송에 가까울까?

폭스뉴스의 앵커가 상습적으로 쓰는 말 가운데 “누군가 말하길”(Some say)이 있다. 이 말은 정보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소한 쓰는 저널리즘의 표현이다. 하지만 폭스뉴스 앵커는 정보원 보호와 상관없이 앵커나 경영진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이 말을 남용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폭스뉴스는 제 3자의 의견을 전달하는 척 하면서 앵커의 의견을 은근슬쩍 전달한다.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이라고 말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앵커는 폭스뉴스의 아이콘이 되었다.

공정한 방송을 한다면서 폭스뉴스는 게스트를 불러놓고 말도 못하게 혼을 낸다. 폭스뉴스의 대표 앵커 빌 오라일리(Bill O’Reilly)는 인터뷰를 하다가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무조건 입닥치라고 소리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편파적인 방송을 하면서 자신은 공정한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심각히 우려되는 현실은 폭스뉴스 채널의 시청률이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청자는 폭스뉴스의 선정적인 선동에 반응하고 있다. 폭스채널의 오라일리의 지난 9월 평균 시청자는 4백만명이다. 이는 동시간대 최고의 뉴스 시청률이다. 매일 4백만이 넘는 미국의 시청자가 허구에 가까운 쇼를 보게 된다. 폭스채널은 사주의 개인적 주장을 사실과 적당히 섞어 기사를 만들어 낸다. 기사 중간마다 “공정하고 균형있는” 뉴스라는 주문을 걸면서 폭스뉴스는 저널리즘을 망가뜨리고 있다.

폭스뉴스의 인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요즘 시청자들은 확실히 사실만 건조하게 전달하는 뉴스보다 비록 선동적이라도 논평이 담긴 뉴스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논리 대결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실이나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비방이나 협박은 저널리즘이라고 볼 수 없다. 폭스뉴스가 미래의 저널리즘이 된다면 뉴스에서 합리적 토론은 사라지고 시장판의 개싸움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 오랫만에 폭스뉴스를 다시 봤다. 민주당 대선후보 오바마가 테러리스트나 위험 인물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근거도 없는 사실을 바탕으로 오바마는 위험한 인물로 재구성하고 있었다. 폭스뉴스 속 오바마는 이슬람교를 믿는 테러리스트이자 공산주의 혁명가로 그려지고 있다. 사실 확인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억지 주장과 사실 왜곡으로 채워지는 폭스뉴스는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 같다.

이 다큐멘터리의 웹사이트로 가면 영화에 대한 정보, 녹취록과 더불어 폭스뉴스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행동하는 방법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앤소니 보르뎅 한국에 가다

한국 음식에 관한 비디오가 나온 김에 하나 더 다룬다. 여행채널(Travel Channel)에서 앤소니 보르뎅(Anthony Bourdain)이라는 스타 요리사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관광하며 음식도 체험하는 “No Reservations”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벌써 세번째 시즌을 찍을 정도로 인기가 많고 재미있다. 앤소니 보르뎅은 상냥하고 신사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 흥미진진하다. 스웨덴에 가서 아바(ABBA)가 싫다고 말하고 한국에 와서 노래방은 고통스러운 곳이라 소리친다. 그는 한마디로 말해 까칠한 요리사/작가다.

앤소니 보르뎅은 프랑스 음식 요리사로 “레할레”라는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수많은 요리책, 여행책, 여행 비디오, 요리 비디오를 만들고 있다. 그의 책이나 DVD가 전세계에 번역되어 팔리고 있을 만큼 유명한 요리사다. 그의 프로그램을 즐겨봤는데 한국은 언제 한번 다뤄주나 궁금했다. 알고보니 그가 이끄는 팀원 중에 한명이 한국인이었다. “나리”라는 거침없는 여자다.

나리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오십대의 앤소니 보르뎅을 포장마차부터 서울의 밤거리로 여기저기 끌고다닌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앤소니 보르뎅은 나리가 이끄는 대로 노래방, 찜질방까지 전부 따라다녔다. 뉴져지편에서 앤소니 보르뎅은 나리와 함께 한국 식당의 순두부 찌개를 이미 체험했었다.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앤소니 보르뎅은 끌려다니는 인상이 강했다. 자기가 마음에 안드는 요리사나 가수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는 그였지만 한국편에서 그는 꽤나 고분고분해보였다.

앤소니 보르뎅은 산낙지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정도로 대범하다. 다른 에피소드를 보면 기이한 음식도 잘 먹는다. 가끔 영화를 좋아하는 미국 친구들과 박찬욱의 “올드보이”로 토론을 할 때 항상 나오는 말은 정말 한국에서는 산낙지를 그렇게 먹느냐는 거다. 고기도 특정 부위만 먹는 미국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닭발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를 것이다.

미국인 프랑스 요리사의 눈에 비친 한국 음식이 이 에피소드에 모두 담겨있다. 여러가지 한국 음식이 나왔지만 장작불에 초벌구이한 삼겹살을 다시 숯불에 구워먹는 장면이 최고였다. 쌈장을 맛있게 찍어먹는 앤소니 보르뎅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헐리웃 스타의 절정과 절망을 다 경험한 쥬디 갈란드: Life with Judy Garland (2001)

이 작품은 여배우 쥬디 갈란드 (Judy Garland)의 전기를 다룬 텔레비전 영화로 2001년 ABC에서 방송되었다. 쥬디 갈란드의 딸인 로나 러프트(Lorna Luft)가 쓴 전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가족의 시각으로 본 쥬디 갈란드의 삶이 잘 드러나 있다.

비교적 전기적 사실에 충실한 서술이고, 딸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이 풍부하게 표현되었다. 로나 러프트는 쥬디 갈란드가 세번째 결혼으로 얻은 딸이다. 쥬디 갈란드의 남편이자 로나 러프트의 아버지인 시드니 러프트에 대한 묘사가 정확한지 알 수 없지만 그정도는 이해 할 만 하다.

한국에서 쥬디 갈란드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꼬마 도로시 정도로 기억되겠지만, 미국 대중문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여배우이다. MGM의 전성기 시절 히트한 뮤지컬 영화들에서 쥬디 갈란드는 대표 스타였다. 미국인들에게 쥬디 갈란드는 그레이스 켈리처럼 얼굴은 예쁘지 않지만 노래는 아주 끝내주는 여배우로 기억된다.

스크린의 화려한 경력에 비해 그녀의 사생활은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다. 스튜디오 시스템의 혹사를 당하며 자신의 몸은 망가진다. MGM은 일년에 몇 편씩 영화를 만들다 지친 쥬디 갈란드를 다시 카메라 앞에 세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무슨 약인지 영화에서 자세히 설명되지 않았지만 쥬디는 각성 효과가 있는 약을 먹어야만 했다. 이 시기에 걸린 약물 중독은 그녀를 평생 괴롭히다 결국에는 죽게 했다.

쥬디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처럼 강단있는 여성은 못 되었다. 베티 데이비스가 스튜디오 시스템과 싸워서 여배우의 권리를 찾은 반면, 쥬디 갈란드는 약에 의존하거나 자해하는 방법을 택했다. 쥬디는 스크린 안에서는 강하고 다부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누구보다 사랑받고 보호받고 싶은 연약한 내면을 지녔다.

어린 시절의 쥬디 갈란드역을 맡은 태미 블랜챠드는 외모도 아주 흡사했고 표정연기도 뛰어났다. 영화 속의 쥬디처럼 약간 과장된 표정이 살아있어 정말 그 인물로 보였다. 성인 시절역을 한 쥬디 데이비스는 외모는 그다지 닮지 않았지만 복잡한 내면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 하우스로 유명해진 휴 로리가 빈센트 미넬리로 연기하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약간 밋밋해보인다.

오즈의 마법사의 촬영한 장면도 원형을 복원하려고 상당히 공을 들였다. 카네기 홀 공연도 전기영화답게 사실에 충실하고 있다. 쥬디를 미화하려고 극을 왜곡시키지 않았으며, 그녀의 외로운 영혼을 담담하게 잘 잡아준 카메라의 시선에 박수를 보낸다.

헐리우스 시스템의 희생된 쥬디 갈란드의 삶은 지금과 너무 다르다. 배우가 제작에도 관여하고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게 지금의 헐리우드다. 대중의 스타였던 쥬디 갈란드의 사적 영역을 보고나니 영화 속의 그녀의 밝은 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