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속 빈민가 소년의 운명

슬럼독 밀리어네어 (Slumdog Millionaire, 2008)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빈민가 소년의 성공기와 비참한 현실을 교묘하게 교차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속도감 있게 영화를 풀어간다. 소년의 삶 이외에도 근대화와 전근대주의, 공포와 즐거움, 총천연색의 판타지와 엄혹한 현실, 서구와 동양 등이 절묘하게 충돌하면서도 무질서의 혼란에 빠지지 않는 신기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아쉬운 점은 제국주의나 카스트 제도 같은 근원적 갈등을 깊이 탐구하지 않고 표면적 갈등만 훑어가는 가벼운 시선이다. 시각적 속도감에 탐닉하는 대니 보일 감독이 지닌 한계이자 장점이다. 만약 켄 로치가 이 영화를 감독했다면 제국주의의 부끄러운 심연을 건드리는 아주 정치적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상업적으로 흥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니 보일이 “쉘로우 그레이브”, “트레인스포팅” 등의 영화를 통해 보여주었던 숨 가쁘게 달려가는 주인공이 “슬럼독 밀리어네어”에도 똑같이 등장하며 결말까지 지치지 않고 달려간다. 그의 경쾌한 스타일이 영국 스태프와 할리우드 제작진과 자본을 만나서 서구적 시각으로 바라본 인도를 서구 관객에게 소비하기 좋게 제작하였기 때문에 이 영화는 흥행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 전 세계인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기본이 되는 사건은 퀴즈쇼다.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빈민가 출신 소년이 2천만 루피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에 출연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퀴즈쇼는 1998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그 인기를 바탕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자말 말리끄(데브 파텔)가 출연하는 인도판 퀴즈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하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영국의 퀴즈쇼도 미국 영화 상류사회 (High Society)에 쓰인 콜 포터가 작곡한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에서 그 제목을 빌려왔다. 원작 영화에서 상류층 결혼식을 취재하러온 두 기자 마이크 코너(프랭크 시나트라)와 리즈 임브리(셀레스트 홈즈)가 백만장자를 비꼬는 노래를 부른다. 비꼬는 투로 부르지만 두 사람의 속마음은 모두 백만장자가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다.

전 세계 수십 개 나라에 비슷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뭘까? 아마도 현실 속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들이 넘쳐나기 때문일 것이다. 퀴즈를 풀어나간다는 측면에서 노력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만 이마저도 운에 의해 좌우될 확률이 높다. 자말은 그 흐름에 동참한 세계인의 한 명일뿐 특별한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가난한 인도, 더욱 가난한 빈민가에 초점을 맞추어서 급작스런 출세와 대비 효과를 드러냈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이 배경이 되었다면 이 정도로 극적 효과를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전 세계가 자본주의적 세계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인도의 빈민가 소년은 그 상업적 ‘출세신화’를 상징할 좋은 모델임은 분명하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기준은 경제적 가치다. 잘사는 나라가 되고 싶은 욕망이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록 세계적 경쟁대열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인도는 ‘모범적’ 국가다. 제국주의의 폐해 속에서 가난으로 점철된 과거를 지니고 있는 인도이지만 지금은 영어권 선진국을 대상으로 하는 콜센터의 중심지며, IT산업의 선두국이 되었다. 눈부신 변화와 발전은 이 영화가 중심이 된 뭄바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빈민가를 부수고 지은 고층빌딩은 고도의 성장을 경험한 한국과 비슷한 모습이다. 압축적 성장이 과연 좋기만 한걸까? 영화적 결말은 해피엔딩과 발리우드 춤으로 마무리하고 있지만 현실은 씁쓸하다.

미디어는 누구나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고 부추기고 있지만 그 위치는 이미 정해져있거나 한정되어 있다. 경제적 계급이 공고하게 굳어진 사회에서 경제적 자본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계급의 사다리를 오르는 유일하고 정당한 방법인 교육도 경제적 자본에 따라서 그 기회가 똑같지 않다. 자말은 교육조차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겨우 구한 일자리가 콜센터에서 차시중이다. 백만장자 퀴즈쇼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그렇게 될 거라고 믿기보다 그런 환상 속으로 빠지는 일에 더 몰입한다. 백만장자를 향해서 달려가는 세계를 포착한 미디어는 환상을 팔아서 장사하고 있다.

빈민가 소년의 성장기

이 영화는 찰스 디킨스 소설의 인도판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산업혁명기에 아이들과 노동자를 착취하고 경제성장에 매달렸던 영국의 과거이기도 하다. 인도판 올리버 트위스트인 자말은 1992~3년 반무슬림 폭동으로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신세가 되어 거리로 내몰린 자말과 그의 형 살림은 앵벌이 조직에 들어가게 된다. 바닥인생에서 빠르게 현실을 배운 형제는 돈을 모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조직을 탈출한 후에도 사정이 달라지지 않아서 도둑과 사기를 일삼으며 성장한다.

빈민가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자말을 자극한 건 라띠까(프리다 핀토)에 대한 사랑이다. 자말은 불우한 어린시절을 함께 보내며 연정을 품었던 라띠까가 자신을 볼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백만장자가 되는 퀴즈쇼에 나갈 결심을 한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퀴즈쇼에 나온 질문은 모두 그가 거리에서 얻은 지식와 일치한다. 교수, 의사, 변호사도 통과하지 못한 관문을 빈민가 소년이 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퀴즈쇼 진행자 프렘 쿠마(아닐 카푸르)는 자말을 경찰에 넘긴다. 심문이 시작되고 퀴즈 질문에 해당하는 자말의 과거가 낱낱이 드러난다.

무슬림이었던 자신의 가족이 힌두교에 박해를 받았던 경험은 자말의 어린시절을 지배한다. 경찰도 외면한 이들의 삶은 쓰레기만도 못한 것이었다. 그 외에 카스트 제도나 제국의 착취 같은 근본적 갈등은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는다. 소년의 입장에서 구조적 문제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원인 모를 불행을 벗어나는 길을 찾으려는 자말 형제에게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살림은 깡패 조직에 들어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자말은 콜센터 차심부름꾼이 되었다. 각각 불법과 합법의 영역으로 나눠져 있지만, 선진국 자본이 침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건축업과 아웃소싱업은 모두 종속적이다. 빈민국 인도의 비약적 성장기도 세계적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국과 식민지의 충돌

인도 뭄바이 빈민가를 다룬 인도영화지만 인도에서는 그다지 환영받고 있지 못하다. 영화의 포스터가 찢겨져 나가고, 한 인도감독은 “인도는 소말리아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이 영화는 경제적으로 성장한 인도 중산층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다. 자말이 미국 관광객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신발을 훔치거나 동정을 구걸하는 장면이 있다. 미국 관광객은 미국인의 인정이 무엇인지 보여주자며 지갑을 열어서 자말에게 돈을 준다. 서구의 동정어린 시선이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인도의 중산층에게 모욕감을 주었을 것이다.

핵무기도 개발한 군사적 강대국 인도가 아닌가. 두 자리수의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인도를 가난한 빈국으로만 그리고 있는 영화가 편할리 없다. 그리고 이 영화는 영국의 제작진이 만들었고 영국인 주연배우를 쓴 전형적인 영국이 바라본 인도의 모습이다. 한국으로 치면, 일본 감독이 한국의 서울 빈민가 소년의 삶을 그린 영화를 만든 것과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식민지 지배국 영국의 입장에서 인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전통적 부자가 졸부를 바라보는 심정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자말의 성공기는 거리에서 터득한 삶이 바탕이 되었다. 맨손으로 시작해도 누구나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부자들이 경쟁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하는 소리다. 주도권을 선점하고 있는 제국이 만들어 놓은 세계적 질서로 후발국을 끌어들이면서 공정한 게임이니까 안심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성공의 기쁨으로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자말과 라띠까가 마냥 행복해 보이지 않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식민지의 과거를 뒤로 한 채 경제적 독립국으로 성장하는 나라 중의 인도는 단연 으뜸이다. 세계적 경제위기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제국의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경제적 강대국이 되어가고 있지만 이런 성공기에 집중하다보면 아동학대나 노동자 착취의 현실은 감춰진다. 세계적 경제질서 속에 약자의 인권은 더욱 작아진다. 자말이 빈민층을 위한 교육이나 다른 구제사업을 벌이는 풍경까지 이 영화는 다루지 않는다. 어차피 성공은 개인에 한정되어야지 집단의 문제가 되면 위험해진다. 자말의 성공과 대비되는 살림의 몰락은 내부적 갈등을 적절하게 봉합하고 있다. 한 명의 성공으로 수 억명의 불만을 잠재우는 건 남는 장사가 아닌가.

식민지와 제국의 구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는 오지 않았다. 그 차이가 경제적으로 나눠지는 사회로 변모했을 뿐이다. 그래서 위협적인 경쟁상대가 된 과거 식민지 국가를 바라보는 제국의 시선이 불편했다. 경쟁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 못할 바에야 발리우드의 신나는 판타지가 오히려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대니 보일의 속도감 있는 편집만큼 빠르게 성장한 인도 뭄바이 신화는 꿈과 희망이 되어 세계화 속으로 빠르고 아찔하게 질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참고자료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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