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미국 쇼핑몰

처음으로 미국 쇼핑몰에 들어섰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환하게 비치는 조명 아래 반짝이는 대리석을 밟으며 화려하게 전시된 상품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다. 자동차 경적 같은 거리의 소음 대신에 분위기 있는 배경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쇼핑할 수 있는 별천지 같았다. 다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거대한 놀이동산에 비교할 만큼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가 가지런히 모여있는 하나의 세상처럼 느껴졌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쇼핑몰은 언제나 쾌적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사람들을 초대한다. 쇼핑몰 안에 있는 거리는 언제나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고, 도시의 악취 대신에 고소한 팝콘 향이 풍기고 있다. 예쁘게 전시된 쇼윈도의 물건은 마치 미술관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역시 소비주의의 천국, 가장 미국다운 공간이 바로 쇼핑몰이 아닐까.

그 후 미국 여기저기를 다녀봤지만 쇼핑몰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거의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신기했다. 쇼핑몰을 중심으로 외곽의 주차장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쇼핑몰 내부는 주로 1층이나 2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 가운데에 놓여있고, 그 양쪽으로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가끔 그 길의 끝으로 백화점이 연결되어 있을 경우도 있다. 이 쇼핑몰은 도심이 아니라 교외지구 근처 고속도로변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몰락하는 쇼핑몰

딱히 무엇을 살 게 없더라도 쇼핑몰에서 노는 것은 미국인의 일상적 모습이다. 산불이 붙듯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간 쇼핑몰은 미국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공간이다. 그런데 이 쇼핑몰이 최근에 불황을 겪으면서 서서히 쇠락하고 있다는 풍문이 들린다.

1956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에서 만들어진 쇼핑몰은 1,500개가 넘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미국의 10대와 여성에게 권태로운 현실의 탈출구와 욕망의 공간으로 부각되면서 쇼핑몰은 번성하게 되었다. 전성기였던 90년대에는 1년에 140개가 건설될 만큼 호황기를 누렸다. 하지만 2008년 미국 경제위기를 맞기 직전인 2007년에는 단 하나의 쇼핑몰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 문을 닫은 쇼핑몰은 400개가 넘는다.

아마존(amazon.com) 같은 온라인 쇼핑몰과 할인 매장으로 몰려가는 변화된 소비자들의 소비 습관의 변화 때문에 쇼핑몰이 최근에 위기를 맞고 있다. 가게가 문을 닫고 황폐해진 “유령 쇼핑몰”(Ghost Malls)들이 생겨나면서, 심지어 그걸 모아서 보여주는 사이트 (deadmalls.com)도 출현하였다. 쇼핑몰의 화려했던 시절이 가고 있다.

최초의 쇼핑몰

물건을 사고파는 쇼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그 형태가 조금씩 바뀌어 온 것이다. 쇼핑몰 이전에는 로마의 포럼, 그리스의 아고라, 중세의 상업도시가 있었고, 19세기의 백화점이 쇼핑몰의 전신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쇼핑몰은 이러한 전통 속에서 피어난 산물이다. “쇼핑몰의 아버지”라는 빅터 그룬 (Victor Gruen)은 190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태인 건축가인데, 1938년 오스트리아가 나치에 합병되던 해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5번가 건물의 디자인을 연이어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명성을 쌓아가던 중에 1956년 미국 최초의 폐쇄형 쇼핑몰인 미네소타주 이다이나 (Edina)에 있는 사우스데일 센터 (Southdale Center)를 디자인하였다.

빅터 그룬이 원래 계획했던 디자인은 단순히 쇼핑몰만이 아니라 아파트, 병원, 사무실, 학교, 도서관, 공원, 육아시설 등을 포함한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는 공동체였다. 그러나 그의 원대한 이상은 이뤄지지 못하고 주차장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상자형 쇼핑몰만 남았다. 빅터 그룬이 디자인한 쇼핑몰은 한 지붕 아래 거리와 가게가 모여있고, 에어컨과 히터로 기온까지 조절할 수 있는 새롭게 창조한 공간이었다. 그는 쇼핑몰 중앙에 햇빛이 들어오는 창, 연못, 새장, 나무를 배치해서 사람들이 내부 공간의 답답함을 느끼지 않고 쉴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쇼핑몰 내부에 통제가 가능한 외부 세계를 결합한 새로운 건축물이자 문화를 창조했다. 사우스데일 센터는 대성공이었고, 미국의 다른 쇼핑몰도 빅터 그룬의 디자인을 모델로 삼아서 만들어졌다. 그는 단순히 건물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쇼핑몰의 원형을 설계한 셈이다.

쇼핑몰의 성장배경

쇼핑몰이 성장하게 된 계기는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찾아온 경제적 풍요와 교외 지구 건설붐은 쇼핑몰이 번성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슬럼화되고 있는 도심을 벗어나 미국의 백인 중산층이 교외로 빠져나가면서 고속도로 근처에 쇼핑몰이 마구 생겨난 것이다. 정치학자 로버트 우드(Robert Wood)에 따르면, 전체 소매업에서 교외 지구가 차지하던 비율이 1939년에 4%였던 것이, 1948년에 31%로, 그리고 1961년에는 60%로 비약할만한 성장세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도심에 자리 잡고 있던 쇼핑 공간이 교외의 쇼핑몰로 옮겨오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도심의 부족한 주차난도 해소되고, 보안요원이 안전도 보장해주고,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쾌적한 쇼핑환경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장점으로 인해 사람들은 쇼핑몰을 선호하게 되었다. 쇼핑몰은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는 비교적 부유한 지역에 있어서, 인종적으로 백인 중산층 위주의 공간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쇼핑몰을 공공장소로 보아야 하는지, 상업적 사유지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법정 공방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주 정부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쇼핑몰에서 정치집회나 서명을 받는 행위는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역사학자 리자베스 코헨(Lizabeth Cohen)은 공공영역의 상업화와 사유화로 인해 시민의 권리가 제한되었다고 주장한다.

쇼핑몰이 만들어진 초기부터 여성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부분이 많았다. 여성 운전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던 시기라서 주차의 편의를 위해 공간도 넓게 만들었고, 유모차 접근이 쉽게 입구를 배려했고, 아이를 봐주는 서비스를 제공한 쇼핑몰도 있었다. 더군다나 안전을 고려해서 보안요원을 적극적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온 가족이 함께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서 쇼핑몰은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가장 대중적인 장소로 떠오르게 되었다. 1973년에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 (U.S. News & World Report)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모든 연령대의 미국인들이 직장, 학교, 집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쇼핑몰이였다고 한다. 쇼핑몰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공간이 아니라 놀고 즐기는 것까지 함께할 수 있는 종합적인 장소가 되었고, 미국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상징물이자 미국의 삶 자체가 되었다.

미국의 대중문화 속에서 쇼핑몰은 중요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주로 클루리스(Clueless) 같은 10대 영화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들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장소였다. 1978년에 조지 로메로 감독이 만든 컬트영화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에서 쇼핑몰이 주요 배경이 되었다.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좀비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살아남은 네 명의 생존자가 헬기를 타고 쇼핑몰에 도착한다. 이들에게 풍족한 물건이 있는 쇼핑몰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그들은 세상과 격리된 공간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었지만, 끊임없이 몰려오는 좀비에 갇히게 되니 감옥이 따로 없다. 좀비들은 본능적으로 소비했던 인간 시절의 기억에 이끌려 쇼핑몰로 찾아온다. 이 영화는 소비 욕구에 빠진 사람을 좀비에 비유하는 절묘한 사회비평이 담겨 있다.

이유 있는 쇼핑몰의 변신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은 더는 미국에 있지 않다. 경제 대국이 된 중국 동관에 있는 뉴사우스차이나몰(New South China Mall)이 미국 최대의 쇼핑몰 킹오브프러시아몰(King of Prussia Mall)보다 두 배 이상 크다. 미국에서는 그 성장이 둔화하였지만, 미국의 쇼핑몰이 바다를 건너 중국, 필리핀, 이란 등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 비슷한 형태의 쇼핑몰을 찾자면 영등포 타임스퀘어가 있는데, 미국과 달리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망해버린 쇼핑몰은 교회, 소방서, 시청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렇게 죽어가던 쇼핑몰을 되살린 사례도 있다. 호세 레가스피(Jose Legaspi)는 애틀란타 외곽에 있는 쇼핑몰을 인수해서 플라자 피에스타(Plaza Fiesta)를 만들었다. 최근에 놀랍게 성장하는 히스패닉 인구에 맞춰서 쇼핑몰을 새롭게 꾸민 것이다. 거기에는 병원도 있고, 미장원도 있고, 돈을 송금하는 서비스업체도 있고, 차가 없는 고객을 위한 버스 서비스도 있다. 멕시코 마을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모여있다. 히스패닉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벤트와 음악과 휴식처도 마련되어 있어, 일종의 히스패닉 공동체 기능을 하고 있다. 이 쇼핑몰을 다녀간 방문객이 2013년에 무려 400만 명이 넘었다.

쇼핑몰이 지역행사나 축제를 주관하기도 해서 사람을 불러 모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상품만이 아니라 ‘경험’이다. 쇼핑몰의 변신이 과연 떠나갔던 사람을 찾아오게 할지는 모른다. 불황이 회복된다고 해서 쇼핑몰의 경기가 자연히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달라진 소비 습관과 온라인 몰의 경쟁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쇼핑몰이 겪고 있는 지금의 위기는 종말로 치달릴 수 있지 않을까?

다독다독에 기고한 글입니다.

In Category: 라이프스타일, 역사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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