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민 앵커의 교체가 연상시킨 드라마

MBC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앵커가 물러났다. 공식입장은 뉴스 경쟁력 강화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신경민 앵커만큼 인지도와 인기를 가진 뉴스 앵커를 자르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누가 보더라도 정치적 외압설이 가장 유력하다. 현정권은 그동안 클로징 멘트로 간접적으로 정치적 비판을 해온 신경민 앵커를 자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역시 말도 안되는 이유로 피디수첩 피디를 구속수사를 일삼고 있는 현정권의 언론관은 요즘 즐겨보는 미국드라마 한편을 연상시킨다. 쇼타임 채널에서 영국 튜더 왕조 헨리 8세 이야기를 다룬 튜더스(Tudors)다. 영국 제국의 기초를 닦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 헨리 8세는 종교개혁, 예술문화를 장려한 왕이었지만 무서운 정책을 강행했다. 헨리 8세는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무어와 절친한 사이였지만 이혼과 종교관 차이로 그를 내친 후에 죽였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의 정치에 반대한 정적을 모조리 불로 태우거나 목을 잘라서 죽였다. 튜더스는 정치와 사랑이 중심이 된 전형적 왕조사를 다룬 드라마지만, 언론학을 전공한 나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당시의 언론환경이었다.

헨리 8세 시대의 언론은 흔히 ‘권위주의 언론’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당시 언론은 자유로운 의견개진의 장이 아니라 왕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고 왕의 정치를 선전하는 매체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한국의 정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언론관이 바로 튜더 왕조의 권위주의적 언론관이다. 언론이 정부를 비판하면 국익이나 공익을 해한다는 이유로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다. 옛날처럼 극악무도한 방법을 쓸 수는 없겠지만 국민들을 겁주는 효과는 비슷하게 얻고 있다. 수백년 전으로 후퇴한 언론관을 가진 정부가 통치하는 한국언론의 미래는 참으로 암울하다. 드라마 같은 일이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정권은 비판 언론과 여론에 대한 관용조차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시각으로 어떻게 ‘선진화’를 말할 수 있을까. 정책의 잘잘못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따라오기만 하라는 왕조시대의 언론관이 진정 선진화인가. 미국인은 억압된 이 드라마에 드러난 언론의 자유에 절망하며 왕조시대를 벗어난 안도감을 느끼겠지만,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의 미래를 체험하고 있다. 이대로 언론의 자유가 무너지는 걸 그냥 지켜봐야 할지 막막하다.

In Category: 사회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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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yd K. 2009년 4월 22일, 1:01 pm

    박혜진 앵커도 교체래요… 지금 엠비씨 파업 페이퍼 쓰는데 자료 정리할 때마다 눈물나서 돌겠음 ㅠ.ㅠ 아주 정치적으로 느무 편향된 페이퍼가 될것같다눈… –;

    • 류동협 2009년 4월 22일, 7:37 pm

      비보가 여기저기서 자꾸 들려오는군. 한국 언론 수준을 단번에 왕조시대로 거슬러가게 하는 그 정치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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