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셜록 홈즈에 열광할까?

아서 코넌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즈는 1887년에 태어나서 아직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영원한 캐릭터이다. 셜록 홈즈를 다루거나 영감을 받은 연극, 영화, 텔레비전, 만화, 게임 등의 작품만 언급해도 수천 개가 넘는다. 비교적 최근 작품만 보더라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주연한 영화나 베네딕트 컴버베치가 맡은 BBC 셜록도 엄청난 흥행을 하고 있다. 셜록 홈즈에 영감을 받아서 만든 ‘하우스’, ‘몽크’, ‘엘리멘터리’ 같은 작품까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100 여 년을 넘게 인기를 누리는 캐릭터도 흔하지 않다.

매력적 캐릭터

셜록 홈즈가 요즘에도 인기 있는 이유는 쉽게 짐작하겠지만, 일단 작품성이 뛰어나서 현대 시대에 적용하더라도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다른 요소가 있다.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다른 작품들도 있지만, 셜록 홈즈 시리즈만큼 다시 부각되는 작품을 찾기 쉽지 않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셜록 홈즈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다소 기이한 행동을 하지만 치밀한 관찰력으로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결국 범인을 찾아내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인 셜록 홈즈에 빠져드는 건 시간문제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단서를 찾아내고 그걸 바탕으로 인물의 성격이나 사건의 전개를 추론해내는 것을 보면 추리계의 ‘슈퍼히어로’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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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기는 쉽지 않다. 비록 사회성은 떨어지더라도 따뜻한 인간애가 살아있는 셜록 홈즈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차가운 이성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감성이 살며시 보일 때 사람들은 감동을 받게 된다. 빅토리아 시대의 탐정이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도 이런 은근한 매력이 시대를 초월하는 감수성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보낸 왓슨은 셜록 홈즈의 차가워보이는 외면 속에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셜록 홈즈의 팬이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일 것이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셜록 홈즈의 결점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게 한다. 사건 해결에 몰입하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회관계에 쓸 시간이나 에너지가 부족할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셜록 홈즈의 유일한 친구인 왓슨은 독자와 팬을 이어주는 훌륭한 다리이다. 지나치게 혼자만의 사색에 빠져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걸 왓슨이 막아주어야 할 만큼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만큼 빠져들기 쉬운 것도 없다.

빅토리아 시대로 회귀하는 현대

셜록 홈즈가 현대에도 통하는 이유로 캐릭터가 주는 매력도 분명히 있겠지만, 시대적 분위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셜록 홈즈가 주로 활동하던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 제국의 전성기였다. 세계 곳곳에 걸쳐있는 식민지에서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해서 얻은 부를 바탕으로 영국의 산업과 경제는 번성했다.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갈등은 영국 내부에도 존재했다. 산업혁명으로 부를 축적한 부자와 노동자 사이의 골은 아주 깊게 팼다.

찰스 디킨스 소설에도 잘 드러나 있듯이,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까지 노동 착취를 당해야 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침울한 분위기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금수저, 흙수저 논쟁이 일어날 정도로 사회적 갈등은 깊어지고, 상대적 박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빈부의 격차 수준은 이미 1920년대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다.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 빅토리아 시대로 가는 건 이제 시간문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제국주의가 자본주의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 갈등이 여기저기서 곪아 터지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이러한 사회 갈등을 해소해주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무너진 지 오래다. 오히려 기술의 발전은 시대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면도 있다. 무기 기술의 발전은 테러와 총기 난사가 가져올 피해의 규모를 놀라울 정도로 키우게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잭 더 리퍼’라는 희대의 연쇄살인마를 능가하는 공포가 현대 사회를 지배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공포는 도시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국경을 너머 전 지구적인 현상이 되었다.

21세기의 셜록

셜록 홈즈의 매력은 이런 사회 갈등과 공포에 대한 반발심리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다. 작품 속에서나마 무질서와 혼돈을 해결하는 이성적 해결사로 셜록 홈즈는 마성을 발휘한다. 사회 갈등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지만, 사건을 유발한 범인을 잡고 다시 안정을 찾게 되는 효과는 있다. 비슷한 예로, 미국 냉전 시대에 서부 영화가 붐을 일으킨 것도 무법천지에서 승리하는 영웅에게 기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실 속의 불만을 상징적으로 해소해주는 존재에 열광하는 심리는 시대를 초월한다. 아무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미스터리를 명쾌하게 해결하는 셜록 홈즈를 보면서 사람들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탐정 이야기는 진실을 알고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혼돈과 질서가 반복되는 세상의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다소 지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셜록의 매력적 캐릭터가 그 이야기에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부당한 현실에 한 줄기 빛처럼 등장해서 명쾌한 해결하는 감동은 시대를 초월한다. 비록 불평등한 사회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셜록 홈즈가 작품이란 소우주 속에서 멋지게 제시한 해결사 이미지는 짜릿한 희열을 느끼게 하는 건 아닐까?

BBC의 셜록 시리즈가 4번째 시즌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또다시 아서 코넌 도일의 작품이 현대적으로 각색되어 베네딕트 컴버베치의 연기로 어떻게 재생될지 기대가 된다. 22세기에도 셜록 홈즈가 불사조처럼 살아나 사건 해결에 나설 지 아무도 모른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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