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뉴요커가 사랑하는 법

섹스 앤 더 시티 (Sex and the City, 2008)

텔레비전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의 영화판은 그 후 4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한다. 뉴욕의 30대 여성의 연애를 다룬 텔레비전 시리즈가 영화로 제작되면서 40대 여성의 이야기로 바뀐다. 과연 캐리, 미란다, 사만다, 샬롯은 성숙해질까, 그냥 나이가 들까?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넷의 모습은 나이만 먹은 예전의 그들이랑 비슷하다.

케이블 방송국 HBO에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방영된 텔레비전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를 재밌게 봤던 시청자였던 나는 영화로 제작된 작품도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영화로 만든 “섹스 앤 더 시티”의 이야기는 통쾌하지도 참신하지도 않은 그냥 그저 그런 수준이다. 다행히 캐릭터는 망가지지 않아서 흥미있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이 시리즈에 빠져들게 된 이유는 “솔직한” 그녀들의 매력에 끌렸기 때문이다. “섹스 앤 더 시티”는 여자의 사랑과 섹스와 도시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처음으로 솔직하게 다뤘다. 이런 소재는 금기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텔레비전 시리즈로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뉴욕신문에 섹스 칼럼을 쓰는 캐리 브래드쇼와 그녀의 친구들은 카페에 모여서 노골적으로 성생활에 관한 수다를 떤다. 이런 민감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늘어놓는 네명의 여성은 이 시리즈의 중심인물이다. 거짓으로 포장된 근사한 연설이 아닌 노골적 잡담이 이 시리즈의 핵심이다. 40대가 되어서도, 영화로 오면서도, 이들은 변함없이 솔직하다.

캐리를 비롯한 다른 인물도 40대가 되어서도 비슷한 고민과 갈등을 겪는다. 별거를 경험하는 미란다나 새로운 도시에서 외로워하는 사만다도 나이가 더 들었다고 해서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이들이 50대가 된다고 해도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 나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혜를 이 영화는 들려준다.

여성의 시각으로 통쾌하게 사랑을 묘사하고 있는 텔레비전 시리즈의 매력은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오히려 영화에서 남성의 캐릭터는 약화되고 여성 중심의 시각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캐리, 샬롯, 사만다, 미란다의 관계도 시리즈에 비해 더 끈끈해 보인다. 아이와 남편이 이들의 관계 속으로 들어왔지만 넷의 우정의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의 기본 이야기는 캐리의 결혼이다. 결국 빅과 결혼을 하게 된 캐리는 흥분된 마음으로 준비하지만 뜻밖의 난관에 봉착한다. 시리즈에서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던 빅과 캐리는 영화 속에서도 비슷한 운명이다. 결혼을 사랑의 결말이라고 생각하는 샬롯, 결혼은 사랑과 일상의 중간으로 보는 미란다 사이에서 캐리는 고민한다. 결국 캐리는 이런 갈등 속에서 그녀만의 결론에 이른다.

한국 2~30대 여성의 아이콘이 된 캐리는 자유로운 뉴욕 여성이다. 한국에서 그녀는 스타벅스와 더불어 소비주의의 화신이 되었다. 그녀는 몇 백 달러 짜리 구두를 사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상품은 이 영화의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다. 특히, 루이 비통은 상당히 비중있는 조연급이 되었다. 이 시리즈와 영화에 대한 많은 비평은 반소비주의와 여성주의에서 나온다. 남자에 휘둘리는 캐리는 독립적인 여성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여성주의의 여성관과 거리가 멀다. 무분별한 소비에 빠져사는 캐리는 소비주의 사회의 피해자다.

캐리는 여성의 섹스에 관해서 당당하게 말하는 독립적인 여성이다. “섹스 앤 더 시티”는 여성의 우정이 남성들의 것 못지 않게 끈끈함을 일깨워 준다. “섹스 앤 더 시티”는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여성의 사랑을 명쾌하고 통쾌하게 보여준 영화로 기억될 것은 분명하다.

네 명의 주인공에 대한 개인적 취향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얄미울 정도로 이기적인 캐리의 모습에 가끔 실망하기도 했다. 그것도 자기주장에 강한 여성이라고 볼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답답할 정도로 여성적인 샬롯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인물처럼 보였고, 여자 카사노바처럼 대범하게 살아가는 사만다는 부담스러웠다. 그나마 가끔 엉뚱하지만 현실적인 미란다가 내 취향에 맞았다. 내가 만일 여자라면 나는 미란다 정도의 여자가 되었을 것이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Show 4 Comments
  • 오렌지 걸 2008년 11월 17일, 6:03 pm

    요즘도 온스타일에서 주말 아침에 방영하고 있어서 즐겨 시청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사회 정의라는 측면에서 여성이 자아를 찾아나가고 그 길이 존중받아야하지만
    솔직히 드라마에서 그게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이지요.

    네 명의 캐릭터가 현재 존재할 수 있는 인물 유형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노골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여자친구들끼리 만나면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게 사실이지요…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근데 소비와 어떻게 보면 시쳇말로 된장녀의 대표주자격인
    캐리의 현실인 사라 제시카 파커는
    절약주의 화신이라고 하니…
    참 재밌는 역설이기도 합니다^^

  • 류동협 2008년 11월 18일, 9:34 am

    오렌지 걸 — 네 명 모두 현실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인물인 거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시리즈와 영화가 공감을 주겠죠. 사회적으로 이런 정도의 표현도 할 수 없다면 무척 답답할 거 같습니다.

  • 프랭키 2008년 11월 21일, 1:20 am

    저도 비슷한 이유로 영화를 봤습니다만,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오히려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티비 시리즈에서 한 이야기들의 반복인데, (확장이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랬는지.. 좀 길더군요.
    저는 여성이지만, 섹스앤시티에 대해서 그다지 열광적이지 못합니다.
    저와 연결지을만한 코드를 찾지 못해서인가.. 싶은데,
    그런 면에서 저는.. 차라리 신경쇠약직전의 앨리에게 더 끌립니다. ㅎㅎㅎ

  • 류동협 2008년 11월 21일, 10:27 am

    프랭키 — 텔레비전 시리즈를 못 본 관객을 위해서 설명이 길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다운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텔레비전의 인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니 이야기가 좀 상투적으로 흐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한 건 저만의 생각이었나봐요~~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