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허구의 절묘한 조화

Rome (2005~2007)

Rome

HBO와 BBC가 합작한 텔레비전 시리즈 로마는 역사극의 한 획을 그을만한 작품이다. 1억달러가 넘는 제작비가 들어간 것도 화제이고 역사고증자까지 참여한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로마는 방대한 스케일보다 역사적 디테일이 돗보이는 색다른 역사물임은 틀림없다.

전투장면 없는 전쟁

두 시즌 동안 제대로 된 전쟁장면은 시저의 갈리아 전쟁과 필리피 전쟁이 전부다. 로마의 수많은 전쟁은 아주 간략하게 묘사된다. 화려한 전쟁장면은 기대하고 이 시리즈를 본다는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전쟁보다 재미있는 인물들 사이의 전쟁은 기대해도 좋다.

전투장면은 초근접 촬영으로 극사실주의적 기법이 사용되었다. 스케일의 거대함보다 전쟁의 디테일에 초점을 맞췄다. 현재진행중인 전쟁보다 그 후에 널려있는 잘린 팔과 다리는 그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아쉽게도 공을 아주 많이 들인 필리피 전투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실망스러운 에피소드가 바로 필리피 전쟁을 다룬 거였다. 특수효과와 전쟁촬영에 너무 신경을 쓴 탓에 캐릭터가 엉망이 되었다. 다행히 마지막 악티움 해전을 다룬 에피소드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크 앤소니와 클레우파트라의 비장한 최후에 집중하는 초심으로 돌아갔다.

로마가 재밌는 이유는 화려한 볼거리 때문이 아니라 현실감있는 캐릭터의 드라마 때문이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의상, 세트, 관습 등을 다룬 디테일은 잔잔하게 즐길 수 있다. 거리의 아낙네가 입는 옷조차 역사교과서이고, 인물들이 치는 대사에도 고대 로마를 느낄 수 있다. 인간사의 적나라한 모습은 전쟁보다 흥미진진하다.

두 개의 이야기

로마는 크게 두 개의 이야기 축으로 형성되어 있다. 흔히 알려져 있는 시저, 폼페이우스, 마크 앤소니, 옥타비안 등으로 전개되는 역사적 이야기가 기본이다. 그리고 보레누스와 풀로가 살아가는 군인의 가정사도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다. 보레누스와 풀로는 역사서에 이름만 등장하는 인물로 한국드라마 대장금처럼 철저히 허구적 이야기다.

로마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적절히 교차하는 역사극이다. 보레누스와 풀로는 시저의 군대에 속했던 군인들로 시저, 마크 앤소니, 옥타비안, 심지어 클레오파트라와 관계를 맺고 있다. 보레누스와 풀로는 자칫 심각한 정치물이 될 뻔한 로마에 일반인의 일상과 드라마를 보태준다. 로마가 전개될수록 뻔한 역사보다 이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보레누스와 풀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저의 이야기 역시 소홀하게 다루지 않는다. 시저가 암살당하는 에피소드는 아주 압권이다. 시저를 암살할 수 밖에 없었던 브루트스도 이해할 수 있었다. 공화정을 지킨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인물의 고뇌도 잘 묘사되었다.

로마는 역사적 해석은 놓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이야기로 기존의 역사극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런 시도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풀로와 보레누스는 다른 역사적 인물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는 생생한 인간이었다.

풀로의 여정

풀로와 보레누스의 우정은 이 시리즈의 중요한 미덕이다. 두 사람의 인연의 시저의 군대에서 상관과 부하로 만났다. 풀로는 보레누스를 상관으로 충직하게 모시지만 이들의 관계는 나중에 친구가 된다.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지켜주는 감동적인 모습이 여러번 연출된다.

풀로는 원래 노예의 자식이었다가 군인이 된 과거를 가지고 있다. 보레누스와 달리 노예를 아끼는 정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하지만 풀로는 착하기만 인물은 아니다. 난폭한 성격으로 말썽도 많이 피우고 냉혹한 킬러가 되기도 한다. 이런 풀로를 곁에서 늘 지켜보는 보레누스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러브스토리 같기도 하다.

풀로는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마음을 고쳐먹고 성장한다. 풀로와 보레누스는 나중에 처지가 바뀌어 풀로가 보레누스를 보살피게 된다. 풀로는 로마제국의 성장 속에서 커가게 될 것이다. 풀로의 여정만 따라가더라도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자기가 직면한 삶의 운명에 아주 빠른 적응력을 지닌 사내가 풀로다.

이 시리즈는 로마 공화국에서 로마 제국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다. 단순한 정치적 드라마보다 인간에 초점을 맞춘 로마는 섬세하다. 권력을 향해 치닿는 인간의 허무도 잘 드러났다. 권력을 탐해서 최고의 자리를 얻었지만 사랑도 아들도 잃어버린 아티아의 눈빛은 의미심장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나 풀로의 뒷이야기도 궁금하지만, 애석하게도 천문학적 제작비와 낮은 시청률 때문에 시즌 3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언제 다시 이런 사극을 만날 수 있을까?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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