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도시의 인종주의

한 흑인 여학생이 익명의 사람이 보낸 증오 메일을 받았다. 흑인에 대한 온갖 인신공격과 심지어 흑인의 피부를 원숭이에 빗대는 모욕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학생은 학생회에 그 메일을 보고하였고, 인종주의에 대처하기 위한 학교위원회가 꾸려졌다. 그와 비슷한 사례로 게이에 대한 비난과 욕설이 담긴 벽보가 캠퍼스 전역에 나붙었다. 얼마전에는 흑인 학생이 한무리의 백인들에 둘러싸여 집단 폭행을 당하여 턱뼈가 부셔지는 중상을 입었다.

인종차별적 범죄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대학 도시는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대도시의 슬럼지구에 일어나는 범죄율에 비하면, 대학 도시의 범죄는 아주 낮은 수준이다. 이 글은 미국의 범죄율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필이면, 비교적 안전한 대학도시에서 인종차별적 범죄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인가? 강력 범죄가 잘 발생하지 않는 대학 도시는 더이상 보안이 보장된 상아탑이 아니다. 혐오성 범죄는 단지 대학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서 형성된 사회적 감수성이 대학 도시에도 퍼지는 과정이다.

이곳 볼더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1890년대에 형성된 주립대를 중심으로 서서히 발전하고 있는 전형적 교외 대학 도시이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히피문화가 유입되기도 하였고, 진보적인 성향의 도시로, 콜로라도 주가 부시의 공화당을 지지할때도, 주민의 70%정도는 민주당에 투표할 정도로 주변의 보수적 동네와 차별화된다. 하지만 주민의 85%정도가 백인으로 이뤄져 있어, 미국의 평균적인 인종구성을 고려할때 철저한 백인중심의 공동체이다. 주민의 절반이상이 콜로라도 대학의 학생, 교수, 교직원이 차지하며, 나머지는 주변의 IBM, 마이크로썬시스템 등 IT계열 산업에 종사하는 상당한 부유한 중산층이 살고 있다. 년평균 연봉의 경우도 8만불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 주변에 비해 집값도 비싼 편에 속한다. 간단히 말해서 민주당 성향의 중산층이 주로 모여 산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진보적 성향의 동네에서 인종차별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종차별은 워낙 뿌리깊고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어서 쉽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 발생한 인종차별 범죄는 다양성에 이해가 결여된 상황을 잘 알려준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자들이 이주해온 이민의 나라로 알려진 미국이지만,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들여온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대학도시들은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생각을 포용하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9/11이후로 달라진 도전을 받아왔다. 이라크전에 대한 지지를 표방하는 언론이나, 집집마다 미국의 성조기를 다는 집이 늘어나고, “우리군을 지지합니다”라고 써붙인 범퍼스티커가 늘어났다. 보수적으로 변화된 사회분위기에서 대학도시들은 더이상 성역이 아니다.

백인 사회의 타인종에 대한 이해부족이나 경멸을 몸소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TA로서 참여하는 수업에 400명 가량에 학생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이 백인이고, 아주 소수의 타인종이 섞여 있다. 얼마전 수업의 보조자료로 비디오를 볼 기회가 있었다. 모 학교의 교수가 광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갑자기 학생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그래서 난 무슨 유머가 섞인 장면인가 유심해 봤다. 하지만 그 장면은 아랍계열의 교수가 광고에서 인종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 지적하는 부분이었다. 그 교수가 남들과 좀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게 웃음거리가 되는건지 이해하지 못해서 난 교수랑 다른 TA에게 물어봤다. 그 사람들도 학생들 반응에 사뭇 놀라는 입장이었다. 소위 대학생 정도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인종문제에 대한 시각이 이정도라면, 그 이외 사람들은 어떨지 이해가 간다.

나는 인종문제에 관한 전공자도 아니지만, 그게 그냥 보아넘어가지 않았다. 인종문제는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인종분리 정책이 사라지고, 소수인종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다지 나아진 거 같지 않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한 후에 제일 먼저 제기된 문제가 인종문제이다. 부시 대통령이 다른 허리케인때와 달리 늦장 대책을 하면서, 흑인들이 그 불만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힙합 가수인 케냐는 허리케인 구호방송에서 부시에 대한 맹비난을 퍼부었다. 부시는 흑인이 사는 뉴올리언즈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라는 비난은 어느정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인종차별은 단순한 인식이나 이해부족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적 계급의 문제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가난한 흑인과 중산층 백인의 격차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백인지구, 흑인지구, 히스패닉지구, 그리고 아시안지구로 나눠어진 공동체의 모습은 미국의 한단면을 보여준다. 미국은 문화의 용광로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리된 공동체가 잘 암시해준다. 다 함께 어울려 살기보다, 따로따로 모여살기를 미국은 택한 것이다. 1950년대 이후 교외지구의 번성은 백인들이 슬럼화되는 도시내부와 흑인을 피해서 모여살기의 결과이다. 백인들 사이에서 형성된 타인종에 대한 혐오는 지금같은 상황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백인들 동네에 살면서, 백인들 친구와 어울리면서, 흑인이나 타인종과 어울릴 기회조차 없으면서, 미디어에 형성된 범죄자, 부랑아 타인종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 백인 대학생이 길러지는 것이다.

다행히 인종범죄에 대한 위원회가 꾸려지고, 학교당국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이 단순히 혐오메일을 보낸 당사자를 찾고 처벌하는 수준으로 그친다면 인종차별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학생단체의 행동으로 이 공동체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는 무리이다. 학교당국과 볼더시 차원의 중장기적 정책만이 백인위주 공동체의 문제해결에 희망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각종 부동산 사이트에서 실시하는 살기좋은 도시에 매년 순위권으로 뽑히는 도시지만, “살기좋은” 백인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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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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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kui 2008년 7월 6일, 10:10 pm

    잘 봤습니다. 볼더를 잠시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공감하는 바입니다.

  • 류동협 2008년 7월 9일, 7:50 am

    허kui — 볼더 뿐만 아니라 미국대학도시들 중에 이런 곳이 꽤 되더군요.

  • ㅇㅇ 2016년 6월 12일, 1:00 am

    저 위에 일들이 볼더에서 일어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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