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

Pillow Talk (1959)

pillow talk

아마도 헐리우드 영화상 가장 많이 리메이크가 된 영화가 The Shop Around the Corner (1940)가 아닐까?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선물가게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알프레드(제임스 스튜어트)와 신입사원 클라라(마가렛 설리번)은 툭하면 싸우는 사이다. 하지만 알프레드와 클라라는 각각의 펜팔상대와 이런 고민을 나누면서 점점 사랑에 빠져든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서로의 펜팔이 바로 현실에서 싸우던 알프레드와 클라라였다.

가장 최근에 리메이크 된 영화로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주연한 유브 갓 메일 (You’ve Got Mail, 1998)이 있다. 현대적 배경으로 각색하면서 의사소통 수단으로 편지대신 이메일로, 배경이 되는 장소를 선물가게에서 서점으로 바꿔치기 했다. 노라 에프런 감독이 현대적으로 잘 각색하긴 했지만 원작의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로 유명한 뮤지컬 전문배우 쥬디 갈란드가 나온 In the Good Old Summertime (1949)다. 영화의 장소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시카고로 바뀌고, 음악을 넣기 위해 악기점으로 배경을 설정하였다. 그 당시 악기점은 악기만 파는 게 아니라 점원들이 직접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악보를 하나 사면, 즉석에서 점원이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래서 그 역할로 “쥬디 갈란드”만한 사람이 없었다. 펜팔을 통한 만남이라는 설정을 그 대로다. 나는 쥬디 갈란드의 노래도 덤으로 들을 수 있어서 이 영화를 참 좋아한다.

비슷한 테마를 가진 한국영화를 찾아보면, 조승우와 이나영이 주연한 후아유(2002)가 있다. 온라인 게임을 통한 만남이라는 설정 한국의 상황과 잘 들어맞는다. 익명의 만남을 다룬 접속(1997)도 있지만, 나는 후아유의 만남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영화 pillow talk도 이런 기본 스토리 구조를 뼈대로 리메이크된 작품이다. 편지대신 전화라는 새로운 매 체로 바뀐다. 당시에 Party Line이라는 전화를 공유하는 일이 흔했던 모양이다. 바람둥이 작곡가 브레드 알렌(록 허드슨)은 전화로 여자들을 꼬시는 중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잰 모러(도리스 데이 )는 전화를 쓰려고 해도 브레드가 전화를 독점해서 짜증이 난다. 전화로 티격태격하지만 이 두사람은 얼굴 한번 못 본 사이다.

이런 스토리가 미국인들에게 인기있 는 소재인가 보다. 세번이나 리메이크된 또하나의 인기 영화는 워렌비티와 아네트 베닝이 주연한 러브 어페어 (Love Affair, 1994)가 있다. 배에서 만나 첫눈에 빠진 사랑(love at first sight)에 대한 믿음을 다룬 영화다. 어쩌면pillow talk는 첫눈에 빠진 사랑이라기보다 계획된 사랑이라는 의도가 불순한(?) 사랑이다. The Shop Around the Corner에서 유브 갓 메일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구조에서 항상 남자가 상대방의 실체는 먼저 알게 된다.

남자는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이용해서 쉽게 여자의 마 음을 얻게 된다.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잘 읽는 남자를 미워할 수 없다. 잰 모러는 상대가 자신이 싫어하던 브레드 알렌인걸 알게 되었지만 이미 마음이 상대에게 가 있었다. 이걸 되돌리기에 너무 늦었 다. 이건 로맨틱 코미디의 원형같은 스토리지만, 언제나 사랑받는 스토리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50년대 미국은 사회적으로 극격한 변화의 시기다. 냉전의 폭풍으로 매카시즘이 퍼지면서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탄압이 벌어졌고 헐리우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나온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는 정치적인 게 별로 없다. 당시에 아주 유행한 텔레비전 드라마 I Love Lucy (1951~1957), Leave It to Beaver (1957~1963)에서 그려지는 세상은 참 평화로운 중산층의 일상이다. 세상의 중심이 가족이니, 연인의 사랑이야기는 인기있는 주제였다. Pillow Talk는 50년대 개봉된 영화중에 두번째로 흥행한 영화가 되었다.

만일 이 스토리가 다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여자가 상대의 존재를 먼저 알게 되는 설정도 재밌을 거 같다. 연애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적극적이던 시대도 가고 있다. 멋진 커리 어 우먼인 잰 모러도 사랑에는 여전히 수동적인 모습이었다. 유브 갓 메일에서 맥 라이언이 처음에 시위까지 하던 당당한 모습에서 후퇴한 마지막 장면 좀 아쉽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그 위치가 반전된다면 더이상 로맨틱하지 않을까?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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