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케이블 뉴스에서 사라지는 객관적 보도

뉴욕타임즈에 실린 시엔엔(CNN) 광고는 폭스뉴스(Fox News)와  엠에스엔비시(MSNBC)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견제하고 있다. 시엔엔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부문을 나열하고 있지만 실제로 폭스뉴스와 엠에스엔비시의 성장에 위기의식을 느낀 시엔엔의 다급함을 읽을 수 있다.

황금시간대 케이블 뉴스 시청률 경쟁에서 폭스뉴스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폭스뉴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우파의 목소리다. 폭스뉴스의 우파 앵커들이 점점 목소리를 높여가며 좌파 정치인이나 활동가를 공격한다. 폭스뉴스가 황금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기 전에는 시엔엔(CNN)이 미국 최고 인기 케이블 뉴스로 군림했다. 시엔엔은 객관보도를 목표로 하는 중도 성향의 케이블 뉴스다. 그래서 정치자문을 구할 때도 우파 논평가와 좌파 논평가의 비율을 항상 고려해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앵커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시엔엔은 폭스뉴스에 밀리다 못해 최근에는 엠에스엔비시에도 뒤처지게 되었다.

중도객관을 지향하는 시엔엔 인기하락의 이유는 뭘까? 시엔엔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홀로그램을 도입했고 아이포트닷컴(ireport.com)으로 시청자 참여를 유도하는 혁신을 거듭했다. 기술혁신이 시엔엔의 인기하락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보수의 나팔수가 되어서 거의 선동수준의 뉴스를 내보내는 폭스뉴스가 어떻게 중도객관의 시엔엔을 꺾을 수 있었을까. 달라진 시청자의 취향과 뉴스환경의 변화가 폭스뉴스의 성장에 기여했다. 뉴스의 홍수시대가 도래하면 정말 다양한 채널로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지만 비슷한 관점의 뉴스가 대부분이다. 폭스뉴스는 보수적 시청자들에게 확실한 보수적 관점으로 해석한 뉴스를 제공한다. 보수 시청자들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뉴스를 향해 달려간다.

그동안 뉴스는 객관적 영역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주관적 관점이 개입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폭스뉴스는 시작부터 달랐다. 보수적 사업가 루퍼트 머독은 자신의 정치적 관점을 뒷받침 해줄 도구로 뉴스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폭스뉴스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지만 보수적 시청자들만 믿고 그대로 밀어부쳤다. 그 결과 보수성향의 시청자들이 모여서 폭스뉴스를 단번에 황금시간대 케이블뉴스 1등으로 올려줬다. 폭스뉴스는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뉴스로 명성을 굳히게 되었다.

폭스뉴스와 반대로 엠에스엔비시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시청자를 겨냥했다. 레이첼 매도우 같은 진보적 성향의 동성애자를 앵커를 기용했다. 카운트다운의 앵커인 케이스 올버맨은 부시 행정부와 폭스뉴스의 스타앵커 오라일리에 대한 비판적 뉴스로 유명해졌다. 엠에스엔비시는 폭스뉴스가 보수적 시청자를 모은 것처럼 진보적 시청자에게 호소하면서 서서히 성장해왔다.

미국 케이블뉴스는 점점 단순한 사실보도하는 기사에서 앵커의 논평과 해석이 담긴 기사로 옮겨가고 있다. 뉴스의 객관성은 신화처럼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으로 배우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보수성향이 강한 미국의 뉴스매체는 기업과 정부 중심의 기사가 다수를 차지한다. 노조파업만 보더라도 노조의 입장보다 사주나 정부의 입장에 우선권을 주는 경향이 짙다. 얼마전에 있었던 헐리웃 작가노조의 파업에 관해 뉴욕타임즈가 경영진을 옹호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케이블뉴스라고 해서 물리적 객관성을 지키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수익원이 되는 광고를 통해서 케이블 뉴스를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평을 하지 않고 사실만을 보도한다고 객관적 보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노조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면서 노조에게 불리한 동영상만 편집해서 보여준다면 편들기 뉴스가 되어버린다. 뻔히 드러나는 뉴스의 편향성을 감춘 채 우린 객관적이라고 말한다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뉴스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이룰 수 없는 꿈일 수도 있다.

시청자들이 단순한 보도 위주의 뉴스보다 논평과 뒤섞인 뉴스를 보는 것을 위기로만 볼 수는 없다. 뉴스의 객관성을 더이상 믿을 수 없다는 시대정신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국의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신문이 미국의 폭스뉴스처럼 보수의 대변지가 우뚝 선지도 한참이나 되었다. 객관적인 뉴스 매체를 찾기 어려운 시대에 그 가치에 매달리고 있는 시엔엔에서 멀어지는 시청자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뉴스의 미래는 폭스뉴스가 될 것인가. 이 역시 경계해야 한다. 폭스뉴스는 논평과 해석을 하는 것을 넘어서 사실을 왜곡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앵커의 견해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을 스튜디오로 불러내서 모욕을 주는 것은 다반사다. 보수적 견해에 조금이라도 배치되는 인사들을 반애국적 인물로 몰아세우는 파시스트적인 과도한 해석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견해나 주장을 할 때는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뉴스 매체일수록 그 원칙을 지켜서 공정한 뉴스를 생산해야 한다. 뉴스 매체가 중도객관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더라도 폭스뉴스처럼 사실을 오도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시청자는 멍청하지 않다. 보수의 가치를 아무리 객관성으로 포장한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교육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시민의식도 그에 맞춰 성장한다. 절대중립을 추구하는 객관뉴스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시엔엔이 달라진 시청자의 성향과 뉴스환경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계량적 중립성과 객관적 태도를 고수한다면 구시대의 뉴스매체로 대중에게 인식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In Category: 미디어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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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년 8월 26일, 2:07 pm

    RSS로만 읽다가 (물론 최근 트위터 관련글에 쓰신 것처럼 한동안 쉬셨지만요. : ) 아거님의 트윗 링크소개로 오랜만에 와봅니다. 글 잘 읽었고요. 다만 우리 상황을 떠올리면 역시나 암울한 생각을 지울 길 없네요. 즉흥적으로 말미의 문단을 소재 삼아 패러디 글 하나 썼는데요. 트랙백 쏩니다. : )

    • 류동협 2009년 8월 27일, 9:25 am

      미천한 글에 패러디 글까지 써주셨네요. 링크타고가서 얼른 읽어봐야겠네요.

  • 민노씨 2009년 8월 26일, 2:09 pm

    이상하게 트랙백이 튕기네요. ㅡ.ㅡ;
    손트랙백으로..

    독자는 멍청하다.
    http://www.minoci.net/947

  • 홍성일 2009년 8월 28일, 8:48 am

    반갑습니다. 한동안 소식이 뜸해 걱정했는데,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잘 지냅니다. 선배도 알찬 시간 되시고요. 아직도 신촌에 우리가 묶었던 그 곳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빨리 가봐야 하는데, 같이 갈 사람이 없다는게 아쉽네요. 바람이 선선한 개강 전 마지막 주말입니다.

    • 류동협 2009년 8월 28일, 11:13 am

      나도 반갑다. 좀더 자세한 소식은 메일로 전할게. 별다른 일이야 있을게 없지. 자잔한 일상의 변화 정도? 지난 여름을 보낸 곳도 좋았지만 내년에는 어디 경치 좋은데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얼마남지 않은 시간과 주말을 잘 보내고 산뜻한 개강을 맞이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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