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을 판타지로 풀자

나인 투 파이브 (Nine to Five, 1980)

텔레비전 시리즈 “매드맨”은  60년대 여성의 사회진출과 그 속에서 겪는 차별을 진지하게 다뤘다. 영화 “나인 투 파이브”가 개봉한 1980년도 여성의 지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그동안 여성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직장 내 여성인구도 급격하게 늘었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성차별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한 사회문제다.

이 영화는 남자 직장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세 여자의 유쾌한 복수담이다. 성희롱을 일삼고 노골적으로 성차별하는 못된 직장상사를 골려주는 판타지다. 억눌린 감정을 환상으로 풀어주는 판타지가 이 영화의 주제다. 같은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한 세 여자는 우연히 함께 모여 수다를 떨며 자신의 판타지를 공유한다. 그리고 이들은 다음날이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터로 복귀한다.

세 여성이 나눴던 수다 속의 판타지가 결국 현실이 되었다. 상사를 묶어서 가두고 직장의 판타지도 하나씩 실현한다. 회사 안에 탁아시설을 갖추고,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게 바꾼다. 사무실의 인테리어도 화사하고 예쁘게 바꾼다.

영화 “나인 투 파이브”는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80년대 여성의 일상을 코미디 속에서 적절히 묘사했다. 공공의 적 플랭클린 하트(데브니 콜맨)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특히 여자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어느 회사에서나 있을 법한 인물이다. 하트 같은 상사의 괴롭힘이 현실 속에서 일어난다면 다수의 여성은 참을 수밖에 없지만, 영화는 정반대의 판타지로 달려간다.

비서와 바람난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가정주부에서 회사원이 된 쥬디(제인 폰다), 업무능력은 뛰어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매번 승진에서 밀리는 바이올렛(릴리 톰린), 상사의 성희롱을 받으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도롤리(돌리 파튼)는 부당하게 억눌린 채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이들이 판타지로 폭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동안 참고 있던 분노가 컸기 때문이다.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하트를 보면 웃음이 터진다. 회사에서 그의 말은 곧 법과 다름이 없었지만, 저택에 갇힌 그가 하는 요구는 아무런 힘도 없다. 시끄럽다는 이유로 입을 틀어막히기 쉽다. 고층빌딩에서 추락하는 상상처럼 하트의 삶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다. 하트가 망가질수록 그 즐거운 더 커진다.

로널드 레이건의 보수적인 80년대에 여성운동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성희롱이나 성차별 문제가 빈번했던 1980년에 판타지는 유일한 해방구였을까. 총이나 쥐약 같은 극단적 소재가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폭력적 현실은 폭력적 판타지로 대처하는 게 제맛이다.

여성의 반란, 직장상사에 대한 복수극이 주는 재미는 시대를 초월한다. 여러 차례 텔레비전 시리즈로 각색하여 방송되었고, 2009년에 돌리 파튼이 음악을 쓴 브로드웨이 뮤지컬 “나인 투 파이브”가 공연되기도 했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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