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과 음식의 동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2008)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어 두번째 메트 오페라의 영화관 상영에 참여했다. 이번에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40분 전에 영화관에 도착해서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역시 상영시간이 임박하자 앞좌석 구석만 남았다.

아이들을 위한 오페라여서 이번에는 아이들을 데려온 사람들이 많아서 평균 연령대가 대폭 낮아졌다. 전세계 600개 이상의 영화관도 비슷한 사정일 것이다. 메트의 카메라는 미래에 관객이 될지 모를 아이들의 살아있는 표정을 잡아내느라 객석 사이로 바쁘게 움직였다. 오늘의 주인공은 아이들이었다.

동화에서 오페라로

‘헨젤과 그레텔’은 그림형제의 동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페라다. 제이콥 그림(Jacob Grimm)과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은 독일지방에 떠돌던 민담과 민요를 채록해서 책으로 묶었다. ‘헨젤과 그레텔은 1812년에 출판된 책에 포함된 이야기 중에 하나이다.

민담학자들은 ‘헨젤과 그레텔’과 역사적 사실을 연결시킨다. 19세기 초반에 독일지방에 반복된 기아, 아이를 버리던 풍습, 어머니의 이른 죽음에 따른 계모얻기, 개발되지 않은 숲에 대한 공포 등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헨젤과 그레텔’이 탄생하였다. 한편, 브루노 베텔하임은 이 이야기는 아이들이 극복해야 할 의존심, 식탐, 다른 파괴적 본능에 대해 교훈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다른 학자들은 계모와 마녀를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 아이들이 마녀를 오브에 가둬서 죽이는 것은 못된 계모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헨젤과 그레텔은 독일지방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다른 나라의 민담에도 사악한 마녀, 계모,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만, 나라별로 조금 변형된 형태로 존재한다.

작곡가 엥엘베르트 훔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는 여동생 아델하이트의 부탁으로 이 오페라를 만들게 되었다. 원래 아델하이트는 크리스마스때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몇 장면만 각색해서 오빠인 훔퍼딩크에게 곡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의외로 반응이 좋자 훔퍼딩크는 아델하이트와 함께 곡을 늘려서 오페라로 완성한다.

아델하이트는 원작 동화가 너무 잔혹하다고 판단해서 이야기를 조금 부드럽게 바꾼다. 계모가 친모로 바뀌고, 아이들을 버리는 장면이 사라지고 대신에 아이들은 게으름에 대한 처벌로 숲속으로 산딸기를 구하러 갔다가 길을 잃는 설정이 된다.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은 1893년 독일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로 초연되어 엄청나게 흥행하였다. 훔퍼딩크 남매의 가족행사용 소품이 전세계적 사랑받는 어린이용 오페라가 되었다. 아직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헨젤과 그레텔’은 전세계 오페라극장의 단골 레파토리가 되고 있다.

메트판 헨젤과 그레텔

메트의 헨젤과 그레텔의 무대는 부엌에 초점을 맞췄다. 3막 모두 부엌을 중심으로 사건이 발생한다. 비록 2막은 숲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헨젤과 그레텔이 숲에서 잠에 빠지면서 부엌 테이블에 앉아서 마음껏 음식을 먹는 장면이 된다. 결국 메트판 헨젤과 그레텔은 음식을 만들고 먹는 부엌을 중심으로 기존의 오페라를 살짝 바꿨다.

무대 뒷모습을 보여주는 막간 영상에서 호스트인 르네 플레밍은 재료담당자와 푸드네트워크와 협력을 구애하는 듯한 농담을 나눈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음식은 모두 유명 베이커리나 식당에서 가져온 것이다.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쓰며 오페라 가수들이 먹으면서 노래하고 연기했다. 성악가들이 연기를 위해 먹어야 할 음식이 맛없는 것이라면 현실감있는 장면이 연출되기 어렵다.

현대 오페라 경향은 음악 이외에도 현실감이 있는 연기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연기를 하지 않고 그냥 뻣뻣하게 서서 노래만 부르던 성악가도 있었지만, 요즘은 음식을 먹고, 담배도 피우고, 공중에 매달려서 연기하며 노래도 완벽하게 해야한다.

거대한 오페라 공연장에서 성악가의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든 거리에 즐기던 시절은 가고 있다. 클로즈업, 현란한 카메라 기교와 편집으로 성악가의 미묘한 연기가 주인공이 되고 있다. 물론 노래는 기본이다. 어떤 자세에서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오페라 공연 DVD도 출시되고 메트 공연이 영화관까지 진출까지 되고 있으니, 현대 오페라에서 시각적인 부분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런 시각적 요소까지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관객들은 금방 싫증을 낼 것이다.

영국의 감독 리차드 존스(Richard Jones)는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초현실주의 느낌이 나도록 무대를 꾸몄다. 나무는 검정색 정장을 입고 나뭇가지 모자를 쓴 배우들이 연기했다. 원래 요정의 역할은 ‘모여라 꿈동산’을 연상시키는 큰 얼굴과 살이 덕지덕지 붙은 뚱보 요리사로 바뀌었다. 마녀의 집앞에 있는 입은 영화 록키호러픽쳐쇼의 거대한 입을 닮았다. 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적 장면 연출은 최근에 유행하는 판타지의 느낌이 났다.

이 오페라에 압권은 역시 마녀가 아이들을 잡아가두고 괴롭히는 장면이다. 헨젤을 맡은 영국 메조소프라노 알리스 쿠트(Alice Coote)와 그레텔을 맡은 독일 소프라노 크리스틴 쉐이퍼(Christine Schäfer)의 연기도 괜찮았지만, 최고의 연기와 노래를 보여준 성악가는 마녀역의 영국 테너 필립 랭그리지(Philip Langridge)였다. 마녀는 그레텔을 살찌워 생강쿠키로 만들려고 준비하면서 테이블을 마구 더럽힌다. 필립은 이 장면을 통해 마녀 성격을 잘 나타내었고 극적 긴장감도 잘 표현했다.

지휘자 유로프스키(Jurowski)는 절제와 균형의 미덕을 살려 노래와 기악 사이에 조화를 이뤘다. 젊은 나이에 2007~2008시즌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맡고 있는 그의 실력은 허명이 아니었다. 바그너의 제자였던 훔퍼딩크는 이 작품도 바그너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유로프스키는 섬세한 속도조절로 바그너의 강한 기악의 무게감을 살리되 너무 압도적이 되지 않게 하고 성악의 변화무쌍함 살려주는 선택을 해서 균형감을 찾았다.

아델하이드가 많이 순화시키긴 하였지만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마녀의 죽음으로 마법이 풀린 생강쿠키는 다시 아이들이 된다. 아이들은 포크를 부딪히며 오븐에서 구워져 생강쿠키가 된 마녀를 맛있게 바라본다. 마녀의 팔다리가 아이들에 의해 잘려져 나간다. 나는 좀 잔인한게 아닌가 염려되어 주위 객석을 둘러봤다. 내가 염려했던 것과 달리 아이들은 웃으며 즐거워한다. 지나친 염려가 검열을 낳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은 판타지를 받아들이고 즐길만한 충분한 현실감각을 가지고 있다.

리차드 존스는 연출감각도 뛰어나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마케팅 감각도 탁월하였다. 그는 아이들과 어른의 즐거움을 어느 하나 희생시키지 않고 균형있는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 기사가 되었습니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Show 2 Comments
  • foog 2008년 1월 4일, 8:04 pm

    미국아이들이 우리나라 아이들보다 잔혹한 면에서 더 태연한가 보군요. 얼마전에 동화연극을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피터팬 연극에서 후크선장이 잔인한 대사를 하면 애들이 울곤 한다는군요. 🙂

  • 류동협 2008년 1월 6일, 2:15 am

    foog — 연극이라 더 실감나서 그런게 아닐까요? 오늘 죠니 뎁이 주연한 스위니토드를 보고왔는데 어른들도 중간에 자리를 뜨더군요. 영화가 좀 잔인하긴 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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