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와 코카콜라의 사랑

남성, 여성 (Masculine Feminine, 1966)

사회주의 혁명을 믿는 청년이 가수의 꿈을 가진 소녀와 사랑에 빠지다. 이 영화는 너무나 다른 사회의식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사랑하는 이야기다. 68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시대적 불안이 주된 배경이다. 첫 장면부터 아내를 떠나려는 남자를 총으로 쏘는 아내가 등장한다. 폭력으로 물든 프랑스 파리, 베트남 전쟁 탓에 황폐한 세계에도 사랑은 꽃피어난다.

“남성, 여성”은 주크박스, 핀볼, 비틀스, 그리고 밥 딜런의 시대를 충실히 기록한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다. 탄탄하게 짜인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자칫하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청춘남녀의 사랑의 궤적을 따라서 내면의 감정을 파고들면 풍부한 드라마가 드러난다. 이 영화는 요즘의 시각으로 봐도 다소 파격적인 동거, 섹스, 혼전 임신, 낙태를 모두 다루고 있다. 카메라는 내면을 파고들지 않은 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담담하게 기록한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 폴은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이 만든 “400번의 쿠타”의 주연배우 장 삐에르 레오가 맡았다. 여자주연 마들렌은 가수로 활동하던 샹탈 고야가 연기했다. 폴과 레오의 관계는 15개 소제목 가운데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막스와 코카콜라의 아이들이다.” 공산주의자 폴은 마르크스의 자녀이며, 가수 지망생 모델 마들렌은 코카콜라의 자녀다. 하나는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혁명을 기다렸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는 날을 기다렸다. 이 둘의 만남 자체가 서로 뒤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다.

폴은 세상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이상주의자였다. 그러나 그가 직면한 현실은 녹녹하지 않았다. 그는 친구와 정치토론을 하거나 거리벽에 낙서하는 일로 세상에 대한 불만을 풀었다. 60년대의 프랑스의 지식인들이 했던 것처럼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스크린에서 자유를 느꼈지만 억압적 현실에 염증을 느꼈다. 자동차 소리나 시끄러운 거리의 소음이 들리는 카페에서 사랑, 섹스,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폴은 60년대 청년의 모습이다. 비정한 현실을 원망했지만 그곳에서 살짝 벗어난 부르주와 지식인의 삶.

정치적인 폴이나 정치에 전혀 관심없는 마들렌이나 모두 60년대의 젊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약간 다를 뿐이지 극단적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폴과 마들렌의 사랑은 세상 속의 개인적 관계일 뿐이지 세상을 바꾸는 일과 관계 없다. 영화 속에 폴과 마들렌이 침대에 누워있는데 바로 그 옆에 마들렌의 친구가 누워서 책을 보는 장면이 있다. 마들렌과 폴이 나누는 사랑과 친구의 독서는 서로 섞이지 않는다. 사랑은 사회적 관계가 아닌 개인적 감정의 몰입이다.

영화적 삶은 현실적 삶이랑 섞이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혁명의 꿈을 꾸었지만 현실에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한다. 어쩌면 폴이 하고 있는 사랑은 한없이 미끄러지는 추락의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폴은 사회적 삶이나 세상의 폭력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는 편안한 집이나 어둑어둑한 영화관에서 안식을 느꼈다. 그러다가 바깥으로 나오면 달라진 세상이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 영화는 2005년 미국에서 다시 개봉되었다. 2000년대의 폴이라면 어떻게 사랑했을까?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를 향해 달리고 폴 같은 좌파는 소수가 되었다. 폴이 마들렌 같은 여자를 만날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 그동안 세상은 달라졌고 폴과 마들렌의 간격은 더욱 넓어졌다. 만약 2000년대의 폴과 마들렌의 사랑을 영화로 만든다면 이들의 극적인 사랑은 이라크전과 아프카니스탄 전쟁이 깔리고 뉴욕 맨하튼이 배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달라진 듯하지만 그 내면풍경은 아주 흡사하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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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크캐스터 2010년 7월 7일, 9:3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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