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이에게 느끼는 친밀감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2003)

Lost in Translation

위스키 광고를 촬영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헐리웃 영화배우 밥(빌 머레이)은 생소한 일본문화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밥이 타고 있는 리무진 바깥의 풍경은 시차만큼이나 이질적인 감정을 자아낸다. 늦은 밤에 갖가지 총천연색의 네온사인과 커다란 전광판으로 완전히 도배한 동경은 미국의 헐리웃이나, 뉴욕과는 사뭇 다르다. 그를 맞이하는 일본인들의 환대는 왠지 모를 “낯선” 감정이 가슴 속에 묘한 동선을 그린다. 알아듣기 어려운 일본식 억양의 영어로 말을 걸고,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때론 허리를 숙여서 인사로 응대한다. 호들갑스러운 환대와 점잖은 친교의 표현이 묘하게 교차되는 가운데 밥은 어리둥절하다. 낯선

사진작가와 결혼 후 남편을 따라서 일본으로 여행 온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답답한 일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소하려 한다. 남편은 바쁜 일정에 쫓겨 샬롯에게 거의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말할 상대도 없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도 하지만 무시당하기 일쑤다. 샬롯은 일본 문화를 느끼기 위해 꽃꽂이를 배우거나 오락실에서 놀거리를 찾아보지만 쉽게 몰입이 안 된다.

이 영화는 <화양연화>나 <애정만세>를 연상시킬 정도로 소통의 부재를 말한다. 미국인이 말도 안통하는 일본에 와서 어떻게 소통을 원할하게 할 수 있겠나? 밥은 자신의 일터에서 절박한 의사소통의 불안을 겪게 된다. 예를들어, CF감독은 밥에게 각종 표정과 자세를 요구한다. 감독은 잔뜩 짜증이 섞인 억양의 일본어로 속사포처럼 쏘아 붙이지지만, 통역사는 밥에게 한 번역은 “카메라를 쳐다보면서 얘기하세요”라는 짧은 한마디다. 이 상황은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통역될 때의 어려움을 잘 형상화시켜준다. 통역사가 친절하게(?) 복잡한 상황을 의역했다.

마찬가지로 사진작가가 밥에게 어설픈 영어로 말하는 장면도 압권이다. “프랭크 시나트라”를 “시이나또라”라고 하거나, “로저 무어”를 “로쟈아 모아”라고 발음하는 바람에 밥은 한동한 난감했었다. 이런 언어적 소통을 넘어서 문화적 교감을 이루기는 역부족처럼 보인다. 밥이 텔레비전 토크쇼에 나가서 겪는 일이 바로 그런 예일 것이다. 노홍철은 연상시키는 진행자가 밥을 다양한 일본식 문화속으로 끼워 맞추려 한다. 흉내내기 어려운 춤을 먼저 선보인 다음 이게 재패니스 댄스라면 한번 추어 보라고 한다. 이를 받아들이기 힘든 밥은 바로 자신이 나온 그 프로를 여지없이 꺼버린다.

샬롯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남편이 자신에게 냉담해서 견딜 수가 없다. 하루종일 팬티만 입고 방을 걸어다니며 담배를 피워대는 게 유일한 낙이다. 가끔 호텔 주위를 돌아다니며 소일거리를 찾아보지만, 여전히 관광객일 뿐이다. 샬롯은 고층 호텔의 창가에 앉아서 동경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곱씹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밥과 샬롯이 유일하게 공유하는 것은 바로 “외로움”이다. 소통이 단절된 외국생활의 외로움이 둘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그들이 미국에 있었다면 가족, 친구, 동료들로 얽혀서 그럴 틈이 없었겠지만, 외국생활은 그런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이 둘의 외로움은 일상 속에 잠복해 있었다. 이미 중년을 맞이한 밥은 부인에게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밥은 미국으로 전화를 걸어 부인과 통화를 하지만 그 둘을 묶어주는 끈이라곤 아이들 뿐이다. 샬롯은 일에만 빠져 사느라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에게서 외로움을 느낀다.

밥이 샬롯을 처음 본 곳은 엘리베이터이지만, 샬롯이 밥을 처음 본 곳은 술마시던 바이다. 각각 다른 공간에서 밥과 샬롯은 서로의 외로움을 읽어내고 쉽게 친해지게 된다. 이 때부터 둘이 함께 하는 일본여행이 시작된다. 밤만 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경의 밤세계로 빠져든다.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고, 뛰어 다니면서 피곤해서 쓰러질 때까지 논다. 같이 놀 수 있다는 건 밥과 샬롯을 억누르는 외로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힘이다. 그래서 질주하듯 일본의 밤문화를 헤집고 다닌다. 둘은 오락실, 파친코를 지나, 스트립 카페, 가라오케를 거쳐가며 마음껏 즐기게 된다.

짧은 여행이지만 서로을 이해하게 된 밥과 샬롯은 헤어져야 한다. 거리에서 깊은 포옹을 하며 밥은 샬롯에게 무어라 말을 하지만 우리는 무슨 얘기인지 들을 수 없다. 결코 헤피엔딩이라 단언할 수 없는 그 장면은 샬롯은 눈물로 표현된다.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알 수 없지만, 가슴 속에 뜨거운 교감을 느낀 건 확실하다.

기나긴 인생에서 길을 잃는 경우 낯선 사람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면 위안을 얻게 된다. 밥과 샬롯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위안을 느끼고 서로를 치유해준다. 서로의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장 잘 위로할 수 있었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문화권, 혹은 가장 친숙한 자신의 인생에서 길을 잃은 두 사람. 외형적으로는 더욱 확장되어가는 세계, 코스모폴리탄들이 늘어나는 시대이지만, 그에 따라서 외로움도 커간다.

중년의 위기를 느끼는 밥과 결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샬롯은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여행객들이다. 마지막 장면의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인들에게 둘러쌓인 두사람의 포옹은 이 영화가 그려 주된 감정이다. 밥과 샬롯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시간대로, 자신의 인생으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또다른 여행을 떠났을까?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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