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 뜨거웠던 한국…

5월 초에 한국으로 들어가서 8월 말이 되어서야 미국에 돌아왔다. 2년만의 방문이라서 한국으로 떠나기 전부터 마음이 좀 설레였다. 오랫만에 그리운 사람들도 만나고 쌓였던 할 얘기를 가슴이 담고 떠났다. 이제 그 시간이 다 흘러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한바탕 쏟아내고 오면 좀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았는데 할 말이 더 늘어났다. 답답했던 한국의 정치적 현실에 덧붙일 말도 많아졌고, 블로거로 대중문화에 관해 쓸 이야기도 자꾸 생겼다.

인터넷 여론통제, 언론 탄압, 표현의 자유억압 같은 구시대의 산물이 한국에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나를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막연하게 세계는 점점 나아지고 있고 비이성적 세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믿었던 내가 한심했다. 쇠파이프로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았고 한동안 그 혼란스런 기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한 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촛불도 들어봤고, 신문기사나 블로그 글로 울분을 표현했지만 공허했다. 그렇다고 해서 냉소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체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촛불시위에 관한 토론회나 학회에 가보았지만 과장된 낙관론과 패배주의적 시각의 양극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생각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한가지 확실해진 건 기술의 발전이 사회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시 사회를 변화시키고 지켜주는 주는 것은 사람의 힘이다.

결국, 여름을 보내며 내가 내린 결론은 좀더 부지런히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다하는 거였다. 언론학자, 대중문화 블로거, 인터넷 신문기자로 살아가는 나의 본분에 충실하자. 그리고 다양한 생각에 귀를 열어두고 열심히 듣고 토론하는 것도 중요하다. 소통을 모르고 다른 의견에 담을 쌓는 현실 정치세력에 맞서기 위해서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동안 열심히 듣는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행동으로 실천하기. 생각만으로 세상이 달라지지 않으니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골방 속에 갖힌 책이나 마찬가지다. 이게 가장 어렵지만 제일 필요한 미덕이다.

미국에 왔다고 해도 한국의 현실과 멀어진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내 눈으로 보고 경험한 2008년 여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속에서 불기둥이 치솟는다. 그만큼 화가 나고 앞으로도 계속 그 분노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그 힘으로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갈 것이다. 그 여름에 만난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갈 것이다.

나에게 비장한 각오를 다지게 해준 그 분께 감사해야 할까? 덕분에 한동안 느슨해졌던 신발끈도 다시 매고, 힘들어 하는 주변 사람들도 다시 보게 되었다. 느슨하게 이어진 연대의 끈을 따라서 한없이 가보고 싶어졌다. 한번 가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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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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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og 2008년 9월 15일, 9:40 pm

    동협님 이게 몇 년 만이신가요~ 🙂

  • 용감한티카 2008년 9월 16일, 12:08 am

    그분…
    정말 “참언론” 발전에 관하여 지대한 공이 많으시다고 봐요.

  • 2008년 9월 16일, 10:43 am

    웰컴백~

    그럼 앞으로 읽을 글이 많아지는건가요? 홍홍~

  • 류동협 2008년 9월 16일, 4:24 pm

    foog — 몇 년 씩이나요~ 잠시 여행을 다녀온 거죠.

    용감한티카 — 요즘 조중동의 행태를 보더라도, 참언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군요.

    — 고마워~ 아마도 그렇게 될거야 ^^

  • 황라경 2008년 9월 17일, 3:47 pm

    멋진 글 부탁해요^^

  • 류동협 2008년 9월 17일, 6:18 pm

    황라경 —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

  • 프랭키 2008년 9월 18일, 1:23 am

    잘 다녀가셨군요.
    이제 더 좋은 글을 기다리고 열심히 읽으면 되는 거죠? ㅎㅎㅎ
    연대라는 말이 요즘처럼 소중하게 느껴지는 때도 없습니다.
    연대를 위해선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래야 우리의 연대는 더욱 튼튼해질테니까요.

  • 류동협 2008년 9월 18일, 2:23 am

    프랭키 — 느슨하지만 질긴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지요. 역시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느리지만 큰 변화를 일으키겠죠. 프랭키님도 힘내시길… ^^

  • 홍성일 2008년 9월 18일, 9:15 pm

    그래도 믿을 건 사람밖에 없겠군요. 남 이야기 하듯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자신, 우리 사람 말입니다. 종종 지나다니겠습니다. 간간이 안부 확인할께요.

  • 류동협 2008년 9월 19일, 4:55 am

    홍성일 — 반가워 ^^ 우리 모두 좀더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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