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와 신앙수기 사이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001)

처음에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릴 때 나는 수도원 기행문을 기대했었다. 다 읽고난 소감은 신앙수기, 신앙고백서에 가까운 글이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공지영은 18년 만에 다시 카톨릭으로 다시 돌아온다.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유럽의 수도원 기행을 우연히 떠난다. 그 여행에 대한 기록과 종교에 대한 생각이 교차되는 독특한 산문이 이 책을 채운다.

공지영의 소설 “봉순이 언니”를 읽은지 얼마되지 않은 터라 도서관에서 그녀의 기행기를 발견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그 책을 집었다. 공지영의 기행글은 소설과 자서전을 섞어놓은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상상을 통해서 종교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과 유럽의 수도원 연결시키고자 했다. 그다지 설득력있는 연결은 못되었고 맥락과 벗어난 내용도 불쑥 나온다. 차라리 이런 기행문대신에 수도원 기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수도원을 다룬 기행글이라면 적어도 역사나 건물이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충실하게 소개되어야 한다. 가이드북처럼 자세할 필요는 없지만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 여행지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 글을 읽을 때 그런 배경지식 없다면 글을 따라가기 어렵다. 공지영은 불친절하게 소개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 늘어놓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수도원 기행에 대한 사전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해박한 여행안내자가 아니라 그냥 관광객의 눈으로 유럽의 수도원을 돌아본다.

이 책은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보다 자신의 신앙에 대한 글이 더 많은 편이다. 나처럼 종교가 없는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여행 내내 돌아온 종교 때문에 눈물흘리는 부분이 필요 이상으로 그려진다. 기대했던 기행글이 적게 나오고 수기만 나와서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종교적인 사람이라면 의외의 글에 반가웠을 수도 있다.

공지영의 종교에 관해 논지는 이랬다. 그녀는 굉장히 종교에 비판적이었다. 한때 막시즘에 경도되어 종교는 아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종교를 다시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종교의 눈으로 세상사를 다시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고 그걸 이 여행을 통해서 새삼 깨닫고 있다고 했다. 공지영의 쿨한 척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인지 이 책은 카톨릭을 비판하다가 칭찬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카톨릭 신자가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잠시 궁금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온전히 종교적 수기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세속적이다. 수녀님을 만나면서도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먼저 따지는 공지영이었다. 나처럼 세속적인 사람이 보기에도 그다지 종교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카톨릭에 관한 글을 쓰면서 불교의 스님이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종교가 다 똑같은 것이라는 모호한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을 자주 봤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다시 카톨릭으로 돌아온 계기가 글로 표현되지 않았다.

이 책은 수기도 기행문도 아닌 애매모호한 공지영의 일기가 되었다. 한번의 여행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책을 발간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정리한 결론은 납득할 수 없다. 그대신 솔직하게 종교적 의미를 찾기위해 여행을 떠났는데 그게 잘 안되었다고 할 수는 없었을까.

자신에게 친절했던 수도원을 상세하고 좋게 글을 써주고, 불친절했던 수도원을 대충 써내려간 공지영의 자세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지나치게 주관적인 평가글보다 적절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서술이 보고 싶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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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2월 13일, 8:11 am

    전 읽어보지 않았지만, 카톨릭 신자인 울 엄마가 재밌게 읽으셨다고 하더군요. 전 그냥 “에세이 제목”이 “수도원 기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손이 안 갈 듯한 제목. ^^;;) 오랍 글을 읽으니 “여행기”로서의 “수도원 기행”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군요.

  • 류동협 2008년 2월 13일, 1:19 pm

    — 넌 카톨릭 신자니까 더 남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수도원이 다 비슷한 줄 알았는데 많이 다르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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