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적 시각으로 본 십자군전쟁

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 2005)

Kingdom of Heaven

“킹덤 오브 헤븐”은 크리스챤와 무슬림 사이의 종교적 논쟁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간 안전한 영화다. 십자군 전쟁의 비극을 극단적 크리스챤과 극단적 무슬림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종교적 교리와 논쟁에 관해서 나는 아는 바가 없다. 그건 이 영화에서 주제로 삼고 있는 것과 거리가 멀다. 이 영화는 대장장이 출신 발리안(올랜도 블룸)이 예루살렘에서 겪게 되는 전쟁과 사랑을 다룬 역사물이다.

1096년의 1차 전쟁이 사작된 이 십자군 전쟁은 대략 200년간 지속되었다. 영화는 1184년 무렵 볼드윈 4세 왕이 예루살렘을 통치하던 시기를 다룬다. 발리안이 살라딘과 전쟁에서 패한 후, 그에게 예루살렘은 어떤 의미인지 물어본다. 살라딘은 처음에는 아무 의미없다고 말했지만, 다시 돌아서서 모든 것이라며 웃는다. 역사적으로 복잡한 예루살렘의 이야기만큼 미묘한 웃음이었다.

이 영화는 종교적 의미를 추구하지 않는다. 발리안의 아내는 자살했고, 그도 타락한 성직자를 죽이고 도망친 신세다. 예루살렘이 가면 그의 죄를 씯을 수 있다고 해서 왔지만, 그런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그 와중에 살기위해 아둥대는 사람들만 있다. 발리안의 눈에 비친 예루살렘은 천국의 왕국(Kingdom of heaven)이 아니라 전쟁으로 점철된 지옥에 가까웠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건, 크리스챤과 무슬렘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세계이다. 이들의 평화를 해치는 건 양종교의 극단주의자들이다. 믿음을 위해서 전쟁을 불사하는 불관용의 인간들이 문제다. 이 극단주의자들만 없다면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게 리들리 스콧의 주장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순진한 발상이다. 종교전쟁은 21세기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예루살렘 근처 이라크에서 일어난 전쟁은 극단주의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이런 전쟁은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책임으로 돌리기엔 엄청난 노력과 결말이 따른다.

영화적 완성도에서 킹덤 오브 헤븐은 캐릭터의 형성과정이나 로맨스 전개과정이 너무 급작스럽다. 평범한 대장장이가 예수살렘의 기사가 되고 왕의 신임을 얻게되는 과정이 너무 허술하다. 왕의 여동생과 사랑에 빠지는 필연적인 이유도 무엇인지 모르겠다. 리들리 스콧은 역사극에 너무 많은 흥행의 요소를 집어넣다가 산만해진 모양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역사극이 액션극이 되었다.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시대 문헌을 좀 찾아봤다. 얽히고 섥혀서 몇차례 왕이 바뀌는 복잡한 권력관계들의 연속이었다. 영화처럼 낭만적인 이야기를 찾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 시기를 다룬 소설이 제법 있는 걸로 보아, 꽤나 인기있는 소재거리였나보다. 역시 나의 취향은 왕들의 이야기보다 일반인의 자잘한 이야기인가?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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