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청춘

허슬러 (Hustler, 1961)

인생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허슬러(Hustler)”는 인생이라는 큰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동시에 보여준다. 에디(폴 뉴먼)는 챨리(마이런 맥코믹)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내기당구로 살아간다. 찰리의 도움으로 당구계의 전설인 미네소타 팻(재키 글리슨)과 붙었지만 가진 돈을 다 털리고 패배의 충격으로 방황한다.

이 영화는 당구가 중요한 소재가 되지만 결국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당구에 인생을 걸었던 젊은이가 좌절하며 사랑에 빠진다. 미네소타 팻과 승부에서 지고 에디는 그레이하운드 버스터미널에서 우연히 사라(파이퍼 로리)를 만나서 첫눈에 반한다. 사라는 에디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인생의 방향도 없이 일주일에 이틀만 재미로 대학에 다니며 나머지 시간은 술로 연명한다. 에디와 사라는 서로 사랑을 느껴서 한때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허슬러”가 당구에 관한 영화라면, 에디와 미네소타 팻의 대결이 이야기 전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에디는 미네소타 팻이 아닌 버트(조지 스캇)과 대립하고 자신의 내면과 싸우게 되는 인생 드라마였다. 내기 도박꾼 버트는 에디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에디의 엄지손가락 모두 부러뜨리는가 하면, 사라에게 모욕을 줘서 떼어놓으려 하는 차갑고 냉정한 악당이다.

버트는 에디에게 “캐릭터”가 없다는 소릴한다. 여기서 캐릭터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버트에게 캐릭터는 승부근성이나 독기를 말한다. 에디에게 캐릭터는 정체성을 상징한다. 당구실력은 뛰어나지만 그걸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할지 확신도 없다. 캐릭터의 상실은 목적없이 방황하는 에디를 가리킨다. 승부에서 패배한 에디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다. 내기에 이겨야 먹고살 수 있는 내기당구꾼의 운명을 놓아버리자 자유로워진다. 이 순간 에디는 사라를 만나서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에디는 패배자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다시 승부의 세계로 돌아온다. “승리에 중독된” 에디는 버트의 세계 속으로 들어온다. 경기에 승리하는 것이 반드시 인생의 행복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제작과 감독을 맡은 로버트 로센은 맥카시 마녀사냥에 항복한 전력이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공산주의자였던 40년대에 작가로 활동했던 그는 동료료 5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정부에 넘겼다. 그 댓가로 영화감독으로 경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미네소타 팻이 현실과 타협해서 살아가는 쓸쓸한 모습이 감독의 현실과 미묘하게 겹쳐진다.

1986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컬러 오브 머니(Color of Money)에서 에디를 다시 볼 수 있다. 에디가 늙으면 아마 그런 모습이 될 것 같다. 경기에서 승리하지만 인생에서 패배한 선수를 다시 확인하게 되어 씁쓸하다. 사라는 에디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은 너무 굶주려 있어요”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굶주린 도박사들의 세계를 다룬 영화다. 이기고 지는 문제에 목숨을 걸다보면 누군가 다치게 된다. 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고 냄새나는 남자들의 당구장은 세상의 축소판이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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