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어떻게 쓸 것인가?

멕시코 여행에 대한 글을 쓰려고 마음 먹었다가 몇 번을 접었다. 시간이 흐르면 여행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글에 대한 욕심도 잠잠해졌다. 그때그때 기록해둔 것도 별로 없으니 기억만 의지해서 쓰려면 막막해진다. 역시 여행기는 미룰수록 쓰기 힘들다.

기행문 같은 것은 별로 써보질 않아서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잘 모른다. 며칠전 코스코에 갔다가 기행문을 모아 놓은 책이 있어서 한권 사서 지금 읽고 있다. 아직 서평을 쓸만큼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대충 감은 잡았다.

2007년 미국 최고의 여행기(The Best American Travel Writing)이란 책이다. 한 해동안 잡지에 실린 글 가운데 편집자가 추려서 엮었다. 2000년부터 매년 책으로 나왔으니까 8번째 책이다. 내가 산 건 2007년판이지만, 2006년에 잡지에 발표된 글이다. 편집자가 서문에 밝혔듯이 여행기를 뽑을 때 형식은 크게 고려하지 않은 모양이다. 론니플래닛을 흉내내서 쓴 자신의 아파트 안내글도 있고, 남태평양 섬나라의 국민투표 참관기, 자연 다큐같은 남극 여행기, 살빼기 위해서 북미대륙을 횡단하는 사람 이야기 등이 담겨있다.

편집자도 서문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부탄 여행기를 썼다. 편집자 수잔 올린(Susan Orlean)의 말에 따르면, 가장 나쁜 여행은 아예 여행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기분 나쁜 경험이라도 여행을 통해서 얻는 것이 반드시 있다. 전형적인 여행기에 대한 탐구로 시작된 나의 독서도 그러했다. 전형적인 여행기란 없었다. 이 책의 작가들은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낼 뿐이었다.

잘 쓴 여행기를 많이 읽으면 여행기 쓰는데 도움이 된다. 좋은 여행기를 읽으면 내 머리 속에서 여행의 경험이 재구성된다. 나의 블로그 이웃 프랭키님의 글도 나에게 많은 자극을 준다. 프랭키님의 글을 읽으면,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전체 풍경이 그려진다.

최근 여행책의 경향이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 상식적인 안내서나 충실한 여행기록 같은 여행책은 이미 구식이 되고 있다. 커피나 음악 같은 테마를 잡아서 여행하고 그걸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도 흔히 본다. 단순한 가이드북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경험의 깊이을 느낄 수 있다. 파리, 런던, 이태리 토스카니 지방 등에 살면서 아예 생활글을 쓰는 작가들도 있다.

영화배우 이완 맥그리거가 동료 배우와 오토바이를 타고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한 여행책을 봤다. 여행을 평소부터 좋아하던 이완 맥그리거가 평소의 촬영스케줄을 다 물리치고 본능에 이끌려 떠난 기록이었다. 인기 배우가 이렇게 마음 먹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용기가 대단해보였다. 서점에서 몇 페이지만 슬쩍 훔쳐봤을 뿐인데 내용도 솔직하고 술술 잘 읽힌다. 나중에 서점에 가면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돈과 시간만 허락된다면 지금이라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그 기록을 묶어서 여행기도 블로그로 써보면 참 멋질 것이다. 나는 여행을 꿈꾸며 이런 여행책을 읽고, 여행 블로그의 글을 보고, 도서관에서 여행 DVD 빌려서 전세계를 몇 바퀴나 돌았을 것이다. 나같은 사람을 영어로 안락의자 여행자(Armchair Traveler)라고 한다. 비록 방안에서 떠나는 여행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아주 행복하다.

In Category: 라이프스타일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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