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장을 개척한 팝아트,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행복한 눈물(Happy Tears)”이 한국의 인터넷 뉴스포털의 대문을 며칠째 장식했다. 1964년 팝아티스트의 작품이 2000년대 한국 대중들에게 이렇게 이름을 드날릴 줄 리히텐슈타인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이 그림은 고흐나 피카소의 그림만큼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삼성가의 비자금으로 구매한 의혹을 받는 이 그림은 천문학적 가격으로 더 유명해졌다. 2002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715만 불에 팔렸는데, 현재는 1,000만 불이 넘는 가격으로 급등하였다. 주인이 누구인지 몰라도 탁월한 미술품 투자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팝아트는 예술에 대한 성찰

리히텐슈타인은 앤디 워홀, 글래스 올덴버그, 제임스 로젠퀴스트와 더불어 팝아트를 이끌었다. 이들은 대량 소비시대의 산물인 텔레비전, 자동차, 식기 세척기, 만화, 깡통 수프, 코카콜라, 네온사인 등을 적극적으로 미술의 소재로 다루었다. 저급하게 여겨지던 대중문화와 고급 예술이었던 미술이 만나서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것이다. 고급과 저급,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허문 팝아트는 예술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면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Happy Tears

60년대에 인기를 누렸던 팝아트는 50년대 추상미술에 도전하였다. 관념적이고 모호한 추상미술보다 현실 대중문화의 일상적 주제로 돌아간 것이다. 비슷한 시기의 네오다다, 비트, 펑크는 전후 미국문화의 헤게모니와 상업주의에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팝아트는 일상생활과 밀착된 대중문화를 껴안는 선택을 하였다. 삽화가, 쇼윈도 장식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 등 상업적 예술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팝아티스트들은 상업주의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60년대 미국은 대중문화 홍수의 시대였다. 엘비스, 비틀스가 대통령보다 인기가 높았던 시대였다. 1960년 87%의 미국 가정에 텔레비전이 보급되었다. 1962년 타임스지보도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하루 평균 1,600번 광고에 노출되었다고 한다. 회사 로고, 전광판, 영화배우의 얼굴 등 시각적 기호가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팝아티스트들은 현실과 예술의 대화를 강조했기 때문에 대중문화가 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미술 시장의 폭발적 성장

팝아트는 예술에 대한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 미술 시장의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의 경제성장으로 미술품 수집가들이 폭발적 늘어났다. 1945년 수십 명에 불과했던 수집가들이 1960년에는 200명 정도로 늘었고, 1970년에는 2,000명 이상이 되었다. 이런 경향에 따라서 미술품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한 예로 1965년 로젠퀴스트의 벽화 F-III는 수집가인 로버트 스컬과 에썰 스컬에게 6만 불에 팔렸다. 그러나 10년도 채 지나기 전에 이 작품을 비롯한 다른 팝아트의 작품들도 무려 4,000%나 값이 뛰어올랐다. 1960년에 한 수집가는 이런 말을 했다. “팝아트 회화나 조각은 IBM 주식과 같아요. 지금부터라도 사모아야 해요.”

많은 미술작품 중에 유독 팝아트가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60년대 초반부터 미술 시장이 크기 시작한 시대적 배경 이외에도 팝아트는 대중들 좋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화려한 색채, 산뜻하고 깨끗한 디자인, 흥미 있는 주제는 수집가들의 구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팝아트는 비슷한 시기의 비트나 펑크가 추구했던 ‘지저분하고 혐오스러운’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미술 작품과 대조되었다. 그리고 수집가들은 네오다다의 탈예술, 탈기성예술에 질려 있었다.

팝아트는 60년대 초반의 중산층의 경제적 풍요를 작품 속에 담고 있었다. 팝아트는 소비가 미덕이 된 사회의 수집가들의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를 충분히 자극할만 했다. 늘어난 부를 남들에게 뽐내기에 미술품만큼 근사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시대 미국 회사들은 예술 기금을 경쟁적으로 늘리게 된다. 기업의 예술 단체에 대한 감세 혜택을 두 배로 늘려주었다. 기업들이 미술을 투자 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보면서 미술 시장은 지속해서 성장해왔다. 팝아트는 그중에서 아주 투자가치가 높은 우량주로 인기를 계속 누렸다.

상품이 된 팝아트

팝아트는 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의 대중화에 노력했다. 팝아트가 상업화를 거부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높은 가격에 거래될 운명이기를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팝아트는 그렇게 도전했던 기성 예술품보다 더 대접받는 세상이 왔다. 상품이 되어 미술관이 아닌 개인 소유가 되면 예술의 대중과의 소통도 물 건너가게 된다. 팝아트는 예술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최고급 상품이 되어서 부자들의 과시욕에 봉사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로젠퀴스트의 F-III는 정치적 목적이 강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미국 경제의 부흥이 미국의 군사 산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주제를 다루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비평가나 대중들에 무시당하고 소비문화의 역설만 강조되었다.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싸구려 로맨스를 풍자하는 그림이지만, 수집가들의 눈에는 싸구려가 아닌 고급 눈물로 보일 것이 분명하다.

누구보다 예술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했던 리히텐슈타인이 지금의 상황을 알면 무덤에서 통탄해할 일이다. 알 수 없는 보관소에서 감금된 채 대중과 만나지 못하는 그의 팝아트는 더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미술관이 소장품을 개인에게 팔아서 대중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비접근화(Deaccessioning)라고 한다. 1990년 구겐하임 미술관이 칸딘스키, 샤갈, 모딜리아니 작품을 소더비 경매장에서 470만 불에 팔았다. 이 돈으로 새로운 작품과 미술관 확장에 쓰기는 했지만 이 작품들은 더이상 전시로 대중들을 만나기 어렵게 되었다. “행복한 눈물”은 몇 년 만에 한정된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만일 비자금으로 구입하는 비리가 있었다면 대중들을 떳떳하게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작품이 국내에 있는 것만으로 기뻐할 일이 아니다. 대중과 만나지 못하는 팝아트는 더는 팝아트가 아닌 금전가치만 있는 주식이나 다름없다. 팝아트의 정신은 사라진 작품은 행복하지 않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In Category: 문화, 역사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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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하(初夏) 2008년 2월 5일, 12:41 am

    그의 기여는 반가운 일이나 삼성과 맺어진 인연에서인지,
    위 그림은 왠지 반갑지가 않고 뒤돌아서고 싶은 그림입니다.
    행복한(?)이 아니라 민중의 피눈물로 보여서… ^^ ㅋㅋ
    블코에 글 엮어주셔서 고맙게 읽었습니다.
    즐거운 명절 맞으시고, 좋은 시간 보내시길~~

  • 류동협 2008년 2월 5일, 3:24 pm

    초하(初夏) — 그림으로 별로 영광스럽지 못한 운명을 맞고 있죠. 하지만 그림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다시 미술관에 걸려서 대중들을 만나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저도 블코를 통해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행복한 설 쇠시기 바랍니다. ^^

  • bono 2008년 2월 5일, 11:24 pm

    이런 역사가 있었군요.
    늘 한가지 씩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소장자 때문인 지 윗님 말씀처럼
    다른 의미의 눈물로 보이네요.

    참,
    멀리 계시지만 즐거운 연휴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 류동협 2008년 2월 6일, 4:31 pm

    bono — 참 슬픈 운명이죠. 주인을 잘못 만나서 빛도 못보고 있으니까요.

    bono님도 새해 건강히 잘 지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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