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박완서의 새 단편집 [친절한 복희씨]가 출간되었다길래 그 책을 사려고 오랫만에 한국의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갔다. 결제를 하기 위해 설치해야 할 프로그램이 수십개쯤 되었다. 다른 인터넷 서점을 가봤지만 거기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한가 싶어 좀 짜증이 났다. 결국 내 컴퓨터로 계속 에러가 나서 아내 컴퓨터로 결제하고 책을 주문했다.

미국에 온지 5년째 되어가니 이쪽 상황에 내가 더 길들여졌나보다. 아마존이나 반스앤노블로 책을 사더라도 결제는 아주 간단히 할 수 있다. 내 컴퓨터에 새로 설치해야 할 건 아무 것도 없다. 습관이 무섭다.

돌이켜보면 한국에 살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살았다. 한국의 인터넷 결제 시스템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거꾸로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공항의 복잡한 공항검색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신발을 벗고 노트북을 꺼내고 하는 불편한 과정이 이젠 일상이 되어서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인터넷을 하다보면 한국과 미국을 오고가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어떤 사이트에 가입하려고 하면 한국 사이트는 대개 주민등록번호라던지 전화번호 같은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미국에도 소셜시큐리티 넘버라는 주민등록번호 비스무리한 게 있지만, 프라이버시 때문인지 이걸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메일 정도만 요구한다. 이런 절차에 익숙해지다보니 인터넷 사이트에 내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건 왠지 꺼림칙하다. 인터넷 사용습관이 그렇게 길들여진 탓이다.

습관은 그런 거다. 내가 익숙해지면 일상이 되어버려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된다. 한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 그에 따르는 다양한 습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차피 맞춰서 살아야 하는 거니까. 다른 사회를 경험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습관 사이의 갈등을 느껴야 하는 일이 자주 있다.

인터넷 쇼핑의 습관이 5년 사이에 이렇게 변했다. 한국에서 뭔가 필요한 걸 사야할 때가 오면 변화된 나의 습관 때문에 주저하게 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나의 습관도 그에 따라 변하게 되겠지.

In Category: 라이프스타일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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