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어린이의 우상이 된 남미 소녀

탐험가 도라 (Dora The Explorer, 2000 ~ 2014)

미국 텔레비전 역사상 백인이 아닌 라틴계 소녀가 주인공이 된 일은 아주 드문 일이다. PBS 방송국의 ‘세서미스트릿(Sesame Street)’이나 다른 만화 프로그램에서 가끔 소수인종이 등장한 적이 있었지만,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었다. 미국에서 ‘탐험가 도라 (Dora The Explorer)’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소수인종의 텔레비전 만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도라는 현재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수십 나라에 방영되고 있어서 미국만의 아이콘이 아니다. ‘도라’가 2004년 한 해에 벌어들인 돈만 해도 10억 달러를 가볍게 넘는다.

‘도라’는 거의 10년 동안 전 세계 어린이들의 인기를 누려왔다. 텔레비전뿐 아니라 장난감, 인형, 학용품 등 각종 캐릭터 상품으로 개발되어서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상업적 성공만 누린 것이 아니라 학부모, 교사에게도 환영받는 교육적 만화로 인정받았다. ‘도라’는 많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문제점이 되고 있는 폭력성, 성차별, 인종차별이 거의 없고 다인종 국가 미국의 가치를 잘 구현시킨 애니메이션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도라’는 PBS에 어울리는 교육적 애니메이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사실 니켈오디언(Nickelodeon)이라는 상업 케이블방송국의 작품이다. 흥행의 성공과 교육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도라’의 탄생과정을 살펴보자.

정치적으로 올바른 캐릭터

라틴계 소녀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에 대한 아이디어는 ‘도라’의 총제작자 브라운 존슨(Brown Johnson)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녀는 그 무렵에 성, 인종 그리고 미디어를 다룬 학회에 참석했다가 어린이 텔레비전이 라틴계 문화를 제대로 반영시키지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2000년 8월 14일 라틴계 소녀에 관한 애니메이션 ‘탐험가 도라(Dora The Explorer)가 니켈오디언에서 첫 방송을 하였다.

당시에 상호참여적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도라도 그런 의도로 기획되었다. 텔레비전이 수동적 매체라는 기존의 관념을 뒤집고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새로운 모델이 그 기초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재미있게 따라 하는 장점 때문에 이런 종류의 어린이 프로그램은 그 후로 장수할 수 있었다.

‘도라’는 어린이들이 집에서 그냥 보기만 하는 프로그램과 달리 끊임없이 참여를 유도한다. ‘도라’가 질문을 던지면 시청하던 아이가 대답한다. 예를 들어, 도라가 배를 타고 가고 있을 때 시청자에게 악어가 없는 물길이 어디인지 물어본다. 그러면 아이들은 악어가 없는 방향을 큰소리로 알려준다.

1960년대 시민운동의 물결이 일어나서 미국 텔레비전에서 흑인이나 여성 등에 대한 묘사가 덜 차별적으로 개선되었지만 어린이 프로그램은 여전히 백인 중심의 영역이었다. 다문화 사회라는 교육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미국이지만, 어린이 텔레비전은 여전히 사각지대였다. 라틴계나 아시아계 아이들은 백인 아이를 역할 모델로 배워야 했다.

미국 인구의 4천만 명이 넘는 라틴계에 비하면 텔레비전 속 라틴계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특히 라틴계는 학교 취학 이전 어린이의 인구비율이 높은 것에 반해 멋진 라틴계 캐릭터 하나도 없는 현실은 라틴계 아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했다.

도라의 등장은 라틴계나 백인 모두에게 환영받았다. 라틴계 아이들에게 라틴계 문화를 자랑스럽게 대변할 캐릭터는 우상이 되었고 백인들은 이 프로그램으로 라틴계 문화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스페인어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2외국어니까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부도 할 수 있으니 좀 좋은가.

니켈오디언은 라틴계 시청자를 포용하면서 다문화 교육방송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도라의 성공에 힘입어 중국 소녀 카일란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프로그램 방송을 2008년에 시작했다.

전문가의 연구가 바탕이 된 프로그램

지금은 세계적인 프로그램이 된 ‘도라’는 한두 사람의 생각이 바탕이 되었지만 많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세 명의 제작자 크리스 기포드(Chris Gifford), 에릭 와이너(Eric Weiner), 발레리 월쉬(Valerie Walsh)는 처음에 토끼와 그의 엄마가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오래가지 못했다.

다문화적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했지만 라틴계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막연했다. 어떤 외모를 지녀야 할지, 무슨 옷을 입혀야 할지, 또 배경은 어디로 해야 할지 몰랐다.

제작자는 할 수 없이 자문단을 꾸려서 서서히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 자문단에는 학교 교사, 사회학자, 역사가, 언어학자, 라틴 문화 전문가 등이 포함되었다. 영국의 텔레토비에 버금가는 자문단은 프로그램의 기획단계부터 참여했다.

도라의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티코(Tico)는 매일 잠만 자는 게으른 인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라틴 문화 전문가가 그건 별로 바람직 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왜냐하면, 코스타리코 사람들은 흔히 티코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좋아하는데, 만일 티코를 게으른 인물로 하면 코스타리코 사람들을 화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스페인어라도 남미 여러 나라에서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언어 선택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제작진은 자문단과 함께 도라를 기획할 때도 도라에게 특정한 국적을 주지 않고 범 라틴계 소녀로 설정했다. 다양한 라틴계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특정 나라에 의존하는 것을 피했다. 또한 도라가 미국뿐 아니라 남미 시장도 겨냥하고 있었던 것 또한 도라에게 특별한 국적을 부여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였다.

스페인어권의 폭넓은 시청을 위해서 가능한 한 보편적인 스페인어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똑같은 단어라도 아르헨티나에서 쓰는 뜻이랑 멕시코나 쿠바에서 쓰는 의미가 다르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쓰는 영어와 호주나 영국이나 캐나다에서 쓰는 영어가 다르듯 스페인어도 미묘한 의미 차이가 심각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도라는 누구인가?

도라는 여행을 좋아하며 활동적인 7살가량의 라틴계 여자아이다. 이름은 도라 마르케스(Dora Marquez)다. 도라(dora)는 탐험가(explorer)의 스페인어 여성명사인 ‘exploradora’에서 빌려왔다. 마르케스는 콜롬비아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에서 따온 것이다.

도라의 외모는 라틴 여자아이의 전형적인 모습과 살짝 다르게 그려졌다. 전형적인 긴 머리 대신에 짧은 머리이고 약간 개구쟁이 느낌이 나도록 했다. 수동적인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피하고 모험을 사랑하는 성격이 외모에 드러나도록 했다.

아무리 어른들이 잘 만들었다고 해도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이유로 도라의 파일럿 프로그램은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미취학 아동들에게 먼저 보여줬다. 다행히 아이들은 도라를 무척 좋아했다. 아이들의 반응까지 반영해서 최종적으로 현재의 도라가 탄생했다.

도라는 똑똑해서 주어진 문제를 잘 해결한다. 한번도 실패하는 법이 없다. 게다가 도라는 친절해서 처음 보는 친구와 금방 친해진다. 학부모가 볼 때 아이들이 도라처럼 된다면 더 바랄 바가 없을 것이다.

도라는 미국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라틴계를 대표하는 최초의 우상이 되었다. 백인을 비롯한 다른 인종들은 도라를 통해서 스페인어와 라틴계 문화를 배우고 있다. 도라는 이제 미국을 넘어 다른 나라의 아이들에게도 친숙한 캐릭터가 되고 있다.

도라는 전 세계로 제2외국어 교육용으로 수출되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한국도 포함된다. 한국에서 ‘도라도라 영어나라’ ‘하이 도라’라는 이름으로 EBS에서 방영되었다. 미국 아이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던 도라가 한국에 와서 영어를 가르친다. 덤으로 한국인에게 낯선 스페인 문화도 배울 수 있으니 괜찮은 애니메이션이다.

도라와 비슷한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디즈니의 ‘릴로와 스티치(Lilo and Stictch)’가 있다. 릴로는 19살 언니와 함께 사는 하와이 여자아이다. 그런데 뚱뚱한 백인 관광객 사진 찍는 게 취미이고 엘비스 음악을 듣고 부두교를 믿는 엉뚱한 소녀다. 릴로는 싸움도 자주 하고 언제나 말썽을 피운다.

이 애니메이션은 인종적 편견이 그대로 담겨있다. 하와이 원주민은 게으르고 사회보장제도나 축내는 반사회적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하와이 원주민만 아니라 흑인도 상당히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이런 특징은 릴로에만 있는 게 아니라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반면에 도라는 인종적 편견이 거의 담겨있지 않다. 편견 없이 라틴계 문화를 그대로 접하는 아이들은 더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다. 도라는 라틴계와 타인종의 묶어주는 친선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 도라가 프로그램 속에서 중남미를 탐험하는 동안에 미국의 아이들은 라틴계 문화로 여행을 떠난다.

미국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남미계 사람들은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홀대받았다. 이들은 갱이나 하급노동자 역할만 하는 수모를 벗어나 이제 주인공으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텔레비전은 늘어나는 미국 속 남미 어린이를 더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남미 문화를 미국 어린이 텔레비전에서 보게 될 줄이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Show 8 Comments
  • wizmusa 2008년 4월 17일, 2:41 am

    이 프로그램의 유일한 단점은 후속 시리즈의 캐릭터와 인체 비율이 다르다는 게 아닐까요. 도라의 머리가 사촌인 데이지와 디에고보다 훨씬 커서 왠지 안스럽습니다.

  • 류동협 2008년 4월 18일, 2:41 am

    wizmusa — 머리 크기는 좀 부담되죠. 도라와 연관된 게시판에 가면 그런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꽤 되더군요. 🙂

  • 2008년 4월 21일, 9:41 pm

    그나마 TV에 비춰지는 모습은 귀여운데.. 이거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거 보면 선뜻 손이 안 가더라구요. 재밌는 건, 미국나라 애들은 무지 좋아하대요?! 우리 집 꼬마는 도라의 존재는 알지만, 오로지 토마스 기차. -_- “자본주의 원칙”을 충실히 대변해주는 토마스 기차 이야기만 줄창 봅니다. ㅠㅠ

  • 류동협 2008년 4월 22일, 1:13 am

    — 아이들한테 취향을 강요할 필요가 있겠냐. 자기만의 취향을 존중해줘야겠지. 그리고 도라는 주로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잖아. 도라는 한국 아이들한테 그다지 인기있는 캐릭터는 아닌거 같더군. 무슨 문화적 이유라도 있겠지. 🙂

  • 이혜림 2010년 4월 20일, 2:11 pm

    동협오빠, 구글에서 한국 어린이 티비와 관련한 논문과 뉴스를 검색하는데, 오빠 블로그 포스트가 뜨네요. 하하. 넘 반가워요. 이미 2년 전에 쓰신 글이네요. 울 민웅이는 엄마 아빠 영향으로 아주 이른 나이부터 티비를 끼고 사는데, 도라도 엄청나게 좋아하지요.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다지 귀엽지 않고, 정말이지 위의 “귄”님 (세정언니?) 말씀대로 인형 도라는 너무 섬뜩한데, 아이들은 정말 좋은가봐요. 솔직히 애니메이션도 한국의 뽀로로나 픽사 만화에 비해 세련되지 못하고 살짝 조잡한데 말이에요. 그런데 민웅이랑 앉아서 진지하게 보기 시작한 이후부터 좀 귀여워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뽈록 나온 배). 많이는 아니더라도 이것저것 배우는 것 같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재미도 있구요. 니켈로디언이 상업방송이긴 해도 (아니면, 상업방송이니까?), 유아 프로그램들이 나름 괜찮습니다. 읽기니 산수니, 미국에서 “school-readiness skills”라고 불리는 그런 재주들 말고, 사회성 길러주고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많더라구요. 아무튼… 예전에 쓰신 글에 대해 뒷북 치는 제가 좀 어이가 없네요. ㅎㅎ 반가워요, 오빠~

    • 류동협 2010년 4월 21일, 9:17 pm

      혜림아~ 반갑다. 오래 전에 쓴 글을 네가 이렇게 깨워주니 나야 고맙지.

      난 니켈오디언을 아주 즐겨본다. 도라 뿐만 아니라 유익하고 재밌는 프로그램이 많더라. 게다가 상업방송이지만 환경문제나 제 3세계의 빈곤문제 등에 관한 캠페인도 많이 하는 나름 개념방송국이라서 말야.

      스폰지밥은 중독성이 있을만큼 재밌고, 요즘에는 청소년 프로그램도 자주 보게 되더라. 아이칼리나 새로 시작한 빅토리어스도 나름 괜찮고 미국 청소년 문화를 배우는데 도움이 되더라.

      가끔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로 이렇게 얘기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혜리무 나두 반가워 ^^

  • freetempo 2010년 11월 11일, 12:08 am

    안녕하세요. 도라를 검색하다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몇 년전에 우연히 니켈로디언 채널에서 도라를 보고는 처음엔 아시안계 소녀인 줄 알고 열광했었지요. 백인이 아닌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만화영화 시리즈를 처음 보았거든요. 후에 라틴계인줄 알게 되었고 지금은 두 살배기 딸 아이와 도라를 즐겨 봅니다. 엄마의 취향을 살짝 강권하고 있는 셈이지만 다행히 아기도 도라를 아주 좋아해요. 라틴계가 아니더라도 여자아이들이 보고 배울만한 캐릭터가 참 드물다는 것이 슬픈데 도라가 있어 위안이 됩니다. 게다가 어른이 봐도 재밌다니까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류동협 2010년 11월 11일, 11:06 am

      도라는 정말 잘 만든 프로그램이죠.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배울 점도 많죠. 소년이 아닌 소녀, 백인이 아닌 소수민족이 주인공이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롤모델이 될만한 캐릭터가 드문 요즘에 빛을 내고 있죠. 도라를 좋아하는 분을 만나니 저도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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