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돌로레스 공원에서 만난 클래식 공연

자꾸 미루다가 여름에 했어야 할 샌프란시스코 여행에 관한 글을 겨울의 한 가운데서 쓰게 되었다. 하지만 눈보라가 치는 겨울날에 여름을 추억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가 여름마다 돌로레스 공원에서 공짜 공연을 여는데 운좋게 구경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메조소프라노 수잔 그래험이 부르는 섬머타임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캠코더를 가져가지 못해서 아쉬운대로 디카로 동영상을 찍었다. 그것도 찍는 도중에 옆에 있는 미국인 남자가 프로그램에 관해 물어보는 탓에 마지막에 마구 흔들리고 중단해야 했다. 정말 아쉬웠다.

처음에 돌로레스 공원을 찾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초행길에는 사람을 따라서 움직이는 게 편하다는 교훈에 따랐다가 낭패를 보았다. 지하철역부터 사람들이 무리지어 이동의자나 음식을 가지고 가길래 무조건 따라갔다. 목적지에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도무지 오페라 공연을 보러갈만한 사람들이 아니고 대부분이 남미쪽 사람들이었다. 브라질 카니발을 연상시킬 만한 복장의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남미축제였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서 돌로레스 공원에 오니 공연이 막 시작하고 있었다. 공원에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음악을 즐겼다. 주위를 둘러보니 포도주나 맥주와 간단한 음식을 준비한 사람들이 돗자리나 간의의자에 앉아서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부분이 관광객이 아닌 동네 사람들로 보였다.

공연은 교향곡, 오페라 아리아를 선별하여 들려줬다. 앞으로 있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공연의 일부분을 발췌하여 맛보기해주는 것이다. 역시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수준은 믿을만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살면 이런 공연을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이 동네에 한번 살아보고 싶어졌다. 시카고나 뉴욕 같은 대도시의 오페라단은 여름 공개콘서트를 주기적으로 연다. 다양한 공연을 맛볼 수 있는 대도시의 삶이 그립다. 눈까지 지독하게 내려서 거의 고립된 생활이 계속되니까 문득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이 떠올랐다.

그날 비까지 약간 뿌려서 오히려 소리가 더 청명하게 들렸다. 날이 추워져서 얇은 옷이 원망스러웠지만 음악만은 잊을 수 없다. 수잔 그래험이 무대에 올라와서 “섬머타임”을 부르는 데 여긴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라 알라스카냐고 농담도 했다. 공원이라 따로 백스테이지가 없어서 성악가들이 모두 잔디밭에 서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사진도 마음껏 찍어올 수 있었다. 수잔 그래험은 굉장히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다른 성악가가 노래에 맞춰서 춤도 추고 늘 웃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멀리서 카메라를 들이대자 손도 살짝 흔들어 주었다.

점심도 못먹은지라 옆에서 닭꼬치 굽는 냄새가 아주 고문이었다. 참다못해 쉬는 시간에 사먹었다. 그런데 닭꼬치가 냄새만큼 맛있지 않고 너무 짜서 먹다가 말았다. 양념을 조금만 약하게 했더라면 그럭저럭 먹을만 했을 것이다. 한국 지하철역 근처에서 팔던 닭꼬치가 그리웠다. -.-;;

돌로레스 공원은 낮에는 테니스를 치는 사람, 개를 산책 시키는 사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인기가 높지만, 밤이 되면 마약 거래상들의 근거지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 오페라 공연이 펼쳐지는 공원이 밤이 되면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고 하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돌로레스 공원 근처는 빅토리아 양식의 집들로 유명하다. 그림 같은 집들이 많아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규모도 다양하지만 똑같은 집은 하나도 없었다. 디자인도 예쁘고 색깔도 쨍한 집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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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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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og 2007년 12월 30일, 6:22 am

    오~ 지난 여름에 샌프란시스코에 계셨습니까? 저도 약 3주간 거기 머물렀었습니다. 제 인생에 잊지 못할 추억이죠. 거기서 산타나 공연도 봤었드랬습니다… 하~ 다시 가고 싶다

  • 류동협 2007년 12월 30일, 4:22 pm

    foog — 샌프란시스코 너무 멋진 곳이죠. 저도 언제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죠. 그때는 학회 일로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서 대충만 봤는데, 넉넉한 시간을 잡아서 오래 느끼고 오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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