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시간이 개인적 공간으로 박제

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1994)

Chungking Express

시간은 감지할 수 없고 인위적으로 재단하거나, 사물이나 사건을 통해서만 그 흐름을 추측할 뿐이다. 시계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우리는 알 수 없고 개인에 따라 다른 주관적 시간만을 느낄 뿐이다. 시간은 일회적이므로 한 번 지나가 버리면 되돌릴 수 없는 절대적인 관념이다. 따라서 인간이 저지르는 무한한 실수에 비하면 시간은 냉혹하기가 이를 때 없다. 또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근본적인 조건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개인에 딸린 문제이지만 시간은 전체적이고 집단적인 활동의 장이 된다. 집단의 삶을 일반화시켜 놓은 시간이 역사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집단을 떠나서 개인으로 옮아오면 본질적인 속성이 변하고 공간으로 고착된다. 개인만의 특별한 세계 속에 시간은 죽음을 맞이하고 공간으로 남고, 흐르지 않는 추억, 기억의 형태로 영원히 박제되어 간직된다.

중경삼림의 세계는 시간이 흐름을 멎어버린 곳에서 시작한다. 대신에 그 시간이 하던 역할을 공간이 재현하고 다른 형태로 재생산하고 있다. 초반부와 중반부에 등장하는 흐르는 구름은 바로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 아래로 개개인의 세세한 시간들이 섞여서 의미를 맺기도 하고 그냥 사라져 버린다는 나레이션이 흐른다. 하지무(233) 개인의 역사, 즉 개인의 시간이 위치하고 있는 지점은 25살을 3일 앞둔 시점이고 밤거리이다. 그는 실연을 당하고 그 기억 속에 갇혀 있다. 그가 자주 오던 패스트푸드점도 그의 애인이 좋아했던 곳으로 추억을 상기시킨다. 자신의 생일까지 그녀가 돌아오리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5월 1일(233의 생일)이 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30개 모은다. 또 그는 그가 항상 타고 내려오던 그녀의 발코니로 찾아간다. 그는 그녀의 흔적이 있는 장소에 와서 과거를 회상하고 둘만의 시간을 되살리고 있다. 그의 일련의 행위는 공간을 통해서 시간(기억)으로 들어가는 작업을 반영한다. 그 둘의 시간은 이미 끝나버려서 다시 돌이킬 수 없지만 공간은 여전히 남아서 시간을 대체하고 있다. 물론 공간도 영원할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기억의 연장이 될 수 있다. 공간은 흐르지 않고 정체되어 있어 인간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두 에피소드가 겹치는 핵심적인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패스트푸드점이다. 이 패스트푸드점은 특별한 장소도 아니고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빠른 시간 리듬을 가진 현재의 생활 양식이 잘 드러나 있는 장소이다. 패스트푸드점을 통해서 우리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를 경험할 수 있다. 일상적인 사건과 시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일상적인 공간이 사용되고 있다. 유리에 진열된 음식, 각종 소스들, 유리문, 공중전화가 패스트푸드점을 장식하는 도구들이다. 이것들은 시간을 단축시키는 기능을 한다. 진열된 음식과 소스들은 재빨리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고 음식에 대해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유리문은 그 안의 상황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문을 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공중전화는 안부를 알기 위해 편지를 쓰거나 방문하는 시간을 줄여준다. 시간을 절약을 통해서 시간의 잉여가 생산되는 소비적인 공간이 패스트푸드점이다.

시간의 공간적 파악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명확한 사물은 시계이다.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시계는 9시, 12시, 6시 등 명확한 시간이 명시되어 있다. 너무 명확해서 의심할 수 없을 정도이다. 불가능한 시간의 파악을 시계를 사용해서 어느 정도 정지시키고 있다. 통조림에 기재된 유통기한은 시간이 지배력을 갖는 것을 암시한다. 모든 물건에 수명이 정해져 있는 셈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물건의 수명은 일종의 시간의 감옥에 해당한다. 정해진 기간 안에 먹도록 하고 기간이 지나면 폐기 처분된다. 명확한 시간이 표시되는 것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제공한다. 시계가 없으면 효율적인 작업을 할 수 없고, 유통기한이 없으면 식중독에 걸리기 일쑤이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 뒤에 숨어있는 환상을 알아야 한다.

233은 30개의 통조림을 먹으며 금붕어가 담긴 어항 옆에 앉아 있다. 233의 얼굴이 어항의 유리 표면에 반영된다. 또 633이 거울에 자주 비치는 장면, 페이가 633집에서 나와 에스컬레이트를 오르는 장면의 그녀를 비추는 반영이지만 실제의 그녀가 아니다. 공간은 시간을 반영하고 있지만 사실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지니고 있는 한계 때문에 시간을 굴절시키고 있다. 거울은 좌우를 바꾸어 버리고 상태에 따라서 비치는 형상이 일그러지기도 한다. 반영된 이미지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체와 함께 보여줌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공존을 보여준다. 시간과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반영된 이미지는 흐릿해지거나 얼굴이 없고 재빨리 사라진다.

또 하나의 시간의 공간화가 스텝 프린팅 기법으로 나타난 사람들의 이미지이다. 633의 시간은 멈춰있고 흐르지 않지만 그의 주위의 시간은 분주하게 흘러간다. 바쁜 일상적인 시간의 흐름과 과거와 현재에 갇혀 있는 자아의 모습이 공간화하여 나타났다. 자아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시간은 끊임없이 움직여서 흐름의 형태로 공간화되고 자아는 그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이 때 카메라는 자아의 시점을 중심으로 표현되어 있다. 자아는 또렷하고 특정한 감정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주위의 사람들은 단지 흘러가는 배경으로 처리되어 있어서 얼굴도 표정도 읽을 수 없다. 자아와 타자의 극단적인 대립이 카메라를 통해서 재현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자아와 타자의 대조를 드러내고 있지만 자아 역시 스텝 프린팅을 통해서 감정의 몰입에 빠지기도 한다. 스텝 프린팅은 자아의 강조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쓰이고 있다. 공간화된 타자의 시간을 배경으로 자아는 성찰하고 자아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233과 633은 모두 자아의 세계 속으로 숨어버리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지만 실연을 견디는 방법은 다르다. 233은 식욕과 배설로 자아를 단련시키고, 633은 자아분열을 통해서 자아를 위로한다. 233은 아미가 4월 1일(만우절)에 떠난 후 30일간 5월 1일 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30개 모으고 자신의 생일(5월 1일)에 모두 먹어 치운다. 파인애플은 그녀가 좋아하던 음식이다. 1달 동안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자신의 생체리듬에 따르고 있다. 어떤 생각도 필요하지 않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요건이다. 평소보다 왕성한 생체리듬을 타기 위해서 30개나 되는 통조림을 하루에 먹고, 구토하고 조깅을 해서 체내의 땀을 뺀다. 233이 실연을 버티기 위해서 먹고, 또 먹고, 배설하는 양은 그의 눈물을 상징한다. 233은 겉으로 자신의 눈물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지만, 온 몸으로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 233의 실연의 시간은 육체라는 공간으로 대체되어 있다. 233이 정한 1달이라는 기간은 공간화한 시간이다. 육체로 나타난 실연의 상처가 공간화된 시간 속에서 단련된다. 233이 헤매는 거리보다는 233의 육체에 바로 실연의 시간이 담겨있고 치유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633은 자신의 애인과 함께 머물렀던 집에 집착한다. 633은 집과 그 안에 있는 그녀의 손 때가 묻은 모든 사물과 대화를 나눈다. 예를 들어 비누, 걸레, 인형과 얘기하며 자신의 자아를 투영시킨다. 633은 그녀를 잊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자아분열을 통해서 대화 상대를 만들어 낸다. 예전에 그녀가 했던 영역을 대신하는 분열된 각각의 자아상이 상처받은 자신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633의 집은 단순히 안식처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 공유된 시간을 간직하는 변형된 시간의 공간이다. 633의 방은 그녀의 기억을 지니고 있으며 계속해서 기억을 재생산한다. 비행기 모형이 온 방에 널려 있고 그의 집 옆의 에스컬레이터에는 그녀의 모습이 남아있다. 그래서 633은 자주 집에 들르고 그녀를 부르곤 한다. 페이가 집을 몰래 방문하면서 아미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우려 한다. 침대의 시트를 갈고, 인형을 바꾸고, 자기의 사진을 거울에 붙인다. 페이는 공간을 정리해서 아미의 기억을 정리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페이는 633의 방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시간을 누리며 그 기억을 공간의 형태로 만들어 놓는다. 페이와 633은 방을 중심으로 공유된 기억을 간직하게 되지만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 있기에 그들이 남긴 기억을 공간으로 즉 간접적인 형태로만 지각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633과 페이는 마주치게 되고 별다른 말없이 오후의 낮잠을 같이 즐긴다. 페이의 음악인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울려 퍼지는 속에 둘의 시간이 새로운 탄생을 맞이한다.

633은 페이와의 데이트를 앞두고 헤어진 여자친구의 짐을 정리하고 페이가 두고 간 옷을 꺼내 입는다. 페이는 데이트를 앞두고 환한 얼굴이 화면에 펼쳐지지만 둘은 만나지 않는다. 633은 다시 낙심하고 테이블 위의 맥주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아분열 한다. 페이가 자신에게 시간을 주기로 결심하고 1년이라는 시간의 유예를 준 것이다. 633은 예전의 방법으로 기다리지 않고 페이가 머무르던 공간이 패스트푸드점을 인수한다. 그 곳에 둘은 다시 만나서 새로운 미럐를 예견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이제는 공간의 시간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페이는 633에게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언제부터 물었냐고 질문한다. 633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음악은 시간으로 이뤄지는 예술이다. 음악은 시간을 담아내고 시간 속으로 여행할 수 있는 직접적인 수단이다. 633이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들으며 보낸 시간은 페이와 떨어진 공간을 극복하는 힘이다. 633은 페이를 기다리는 시간을 음악으로 채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인물은 미지의 여인(임청하)이다. 그녀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공간적으로 정해진 구역을 가지지 않는다. 친구도 없고, 집도 없고, 이름도 주어지지 않는다. 또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썬글라스와 금발의 가발을 쓴다. 마약을 거래하며 살아가느라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 그녀는 거래자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쫓기는 입장이다. 생존을 위해서 살아갈 뿐 일상인들처럼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다. 언제 비가 올지 몰라 우의를 입고 언제 해가 뜰지 몰라 썬글라스를 쓴다. 그녀의 시간은 일상적인 흐름을 따르고 있지 않다. 남들처럼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 시간적인 혼란이 있다. 분명히 첫 번째 에피소드가 두 번째 에피소드에 시간적으로 선행한다. 하지만 그녀가 배신자를 쫓고 있는 과정에 느닷없이 첫 번째 에피소드의 페이가 등장해서 633의 방을 꾸미기 위한 인형을 사고 있다. 이것은 단지 구성상의 문제점으로 보기에는 의도적이고 치밀하다. 물론 633의 애인도 등장하지만 그녀는 어떤 시간 속에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미지의 여인의 시간은 역전되어 있고 알 수 없는 맥락을 따른다. 그녀가 233을 만나는 술집은 영업시간이 끝나서 그들을 내쫓는다. 그녀는 심지어 호텔에서도 구두를 벗지 않고 잠들고 233이 떠나는 것을 지켜볼 정도로 불안하다. 그녀의 시간도 마찬가지로 어디에 정착하지 못하고 영화 전반에 걸쳐 떠도는 것이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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