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빌려듣는 음악

요즘 관심을 가지게 된 “앤 소피 본 오터(Anne Sofie Von Otter)”라는 메조 소프라노 성악가에 대한 갈증을 달래기 위해서 공공도서관에서 CD를 잔뜩 빌려왔다. 음악듣기를 좋아하지만, 아직 박사과정을 밟고있는 학생의 신분으로 이 많은 음반을 산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다. 라디오나 도서관이 있다는 건 나같은 사람에겐 정말 축복이다. 듣기좋은 음악을 공짜로만 듣는 걸로는 양이 차지 않으니, 언젠가는 이 음반들은 사게 될꺼 같다. 지금은 빌려다 듣고, 컴퓨터에 저장해서 두고두고 들을 작정이다. 돈이 없다고 문화예술을 즐길 권리가 없는 건 아니기에.

돈만으로 인간의 가치를 재단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공성이 살아남아서 누구에게나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권장되어야 할 것이다. 인류의 건전한 사고의 배양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게 공공의 문화다. 돈이 없으면 음악도 듣지 말라는 식의 상업적, 배타적 시각을 중심으로 짜여지고 있는 한국의 배타적 저작권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방송, 도서관에 비치된 자료가 없었다면, 현재의 수준으로 문화예술이 유지되기 어렵다. 나는 법학자는 아니지만, 법이라는 것이 사회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법 자체를 위해서, 현실을 외면하는 법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의 문화로서 유지되어온 음악의 공유가 나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라디오로 좋은 음악을 공짜로 듣는게 무슨 죄인가? 도서관에서 씨디를 빌려서 듣는게 무슨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인가? 법은 현실을 못따라간다고 했던가? 문화예술의 공공성을 죽이고, 사적 소유권만을 살린다고 해서 예술가들이 살아나지 않는다. 현재의 저작권법은 둘 사이의 균형을 추구했다기 보다, 사적재산권 위주로 만들어졌다. 수용자와 예술 생산자들의 권리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현실적인 지적재산권법을 다시 만들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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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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