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심장부에서 시위한 마이클 무어

자본주의: 러브스토리 (Capitalism: A Love Story, 2009)

코미디와 다큐멘터리가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마이클 무어 감독이 이번에 도전한 주제는 놀랍게도 “자본주의”다. 그는 끔찍한 현실을 다루면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묘한 방식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월스트릿을 배경으로 한 장면에서 그는 재치있게 자신의 주장을 웃음과 함께 관객에게 전달한다.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월스트릿 금융회사와 증권거래소에서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당신들을 시민의 이름으로 체포한다.”

마이클 무어는 지난 20년간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만들면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미국시민의 삶”을 망가뜨린 죄악과 싸웠다. 의료산업, 무기산업, 부시 행정부, 대기업, 어느 것 하나도 만만한 상대는 없었다. 자본주의는 기존의 상대를 모두 아우르는 공공의 적이 분명하다. 자본주의를 상대로 한 그의 싸움이 승리할 수 있을까? 마이클 무어는 자본주의를 뒤집으려는 급진적 사회주의자인가? 아니다. 그가 보여준 대안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온건한 개혁에 가깝다. 그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을 현대에 되살리는 일에 희망을 걸고 있다.

상위 1%의 부자가 미국 전체 부의 95%를 소유하고 있다. 빈부의 격차는 더욱 늘어나고 사회복지는 망가진지 오래되었다. 공정한 자유경쟁시장의 이상은 독과점 기업의 횡포로 무너졌다. 열심히 노력만 하면 누구나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 이상국가가 미국인가? 자본주의 이상에 푹 빠져서 계속해서 늘어나는 빈곤층과 노숙자에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는 것도 현재의 미국이다. 마이클 무어가 파고든 현실의 모순이 바로 여기다.

첫 장면은 로마제국의 귀족들이 어떤 사치스런 삶을 살았는지 보여준다. 로마에 비교될 수 있는 막강한 제국을 건설한 미국부자나 로마귀족이나 비슷하다. 평범한 미국시민을 착취해서 얻은 막대한 부를 거머쥔 부자에게 이 영화는 아주 불편하다. 개인의 노력에 따라서 부의 차이가 생기는 건 인정할 수 있지만 지금의 현실은 지나치다. 상위 1% 부자가 95%를 가지고, 남은 5%의 부를 나머지 95%가 나눠 가져야만 하는 상황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마이클 무어는 추상적 이론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자본주의에 착취당하는 사람을 직접 만났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서 집에 쫓겨난 사람. 도저히 상환할 수 없는 수준으로 대출금리를 계속 올려서 결국에 집을 빼앗는 금융권의 기업윤리를 문제삼는다. 10만 불의 학비신용대출금을 갚기 위해서 커피하우스에서 알바를 뛰어야 하는 비행기 조종사도 만났다. 그의 연봉은 놀랍게도 2만 불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 버팔로에서 추락한 비행기 조종사도 비슷한 처지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노동자 권익이 바닥을 친 건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던 레이건 행정부 시절이다. 노조를 노골적으로 사악한 집단을 몰아세우고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이 성공하면서 노동자 권익은 후퇴했다. 고용주가 마음대로 노동자를 부당하게 해고하거나 비윤리적으로 다루어도 제재할 수단이 사라졌다. 국가나 공공부문이 축소되면서 기업은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일반 노동자는 그 자유를 점점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은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막대한 정부지원금을 쏟아부어도 실업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노동자는 해고당할 불안에 떨어도 CEO는 보너스를 받아서 휴가를 떠나는 세상이다. 마이클 무어는 그런 모순된 현실을 보여주면서 이래도 자본주의가 세상 최고의 경제체제이냐고 반문한다.

마이클 무어는 이 영화로 이론적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는다. 그는 일반인의 상식이나 경험을 통해서 씁쓸한 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바라보기를 권한다. 증권거래소를 도박장으로 비유하는 그의 풍자는 적절했다. 도박장에서 무슨 윤리 타령인가? 어떻게 해서든지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이다. 노동자의 피와 땀은 전광판의 숫자로 보일 뿐이다. 노동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으니 비인간적 착취는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규제나 통제 없는 자본주의는 돈만 버는 일에 눈이 멀게 마련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신자유주의를 향한 맹목적 사랑에 빠진 한국의 미래가 염려되었다. 빈부의 격차가 늘어나고 공공서비스와 복지 등 약자를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지게 되면 더 처참한 현실이 펼쳐질 것이다. 부자의 세금을 줄여주고 기업규제를 없애는 MB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 레이건 경제정책과 똑같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래는 지금의 미국이 아닐까.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서비스 개혁이나 공공서비스 개선 정책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미 부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저항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들이 더이상 비윤리적으로 다른 인간을 착취할 권리는 없다. 마지막으로 영화관 근처를 둘러보니 온통 은행이다. 체이스, 웰스파고, 키뱅크의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주말이라서 거리는 한산했지만 저 멀리 노숙자 한 명이 쓰레기통을 뒤져서 카트에 뭔가를 담고 있었다. 이게 자본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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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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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ksac 2009년 11월 16일, 6:52 pm

    아 이 영화 빨리 보고싶네요 ^.^
    부제를 러브스토리라고 붙인 마이크의 유머에 하하-
    웃으면서도 왠지 씁쓸해지는게 이 분 영화인 것 같아요. ㅠ

    • 류동협 2009년 11월 16일, 10:22 pm

      씁쓸한 웃음 속에서 현실을 다시 보게 하는 게 마이클 무어의 장기죠. 기막히게 부제까지 풍자적으로 다는 기지도 여전하죠. 미국에 이런 다큐멘터리 감독 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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