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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의 바다를 항해하는 싸이의 젠틀맨

Psy_Gentleman싸이의 두 번째 싱글 ‘젠틀맨’이 유튜브 기록을 경신하면서 일주일 만에 2억 조회수를 넘겼다. 전작인 ‘강남 스타일’로 얻은 유튜브에서 존재감을 다시 한번 과시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미국 시장에서의 음원 판매 또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차에 공영방송 KBS는 2013년 4월 18일 공공시설물 훼손 장면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의 방송불가 판정을 내렸다. 방송불가 판정에 관한 소식만으로도 외신의 화제가 되었으니, 그 인기가 사뭇 놀랍다고 하겠다.

물론 과거처럼 텔레비전 방송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이라면 그 방송불가라는 판정이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겠지만, 요즘처럼 온라인 매체가 활발한 시대상황에서는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를 누리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지금 싸이가 누리고 있는 인기는 텔레비전을 통해 쌓은 것이 아니라 유튜브라는 동영상을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둘러싼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그만큼 빠른데, 그에 맞춰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 문화적 제도는 조소를 자아낸다.

그렇다면 이 뮤직비디오가 미국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공영방송이라면 PBS밖에 없고, 상업방송체제가 주류를 이루는 미국에서 한국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긴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의 문화적 풍토에서 검열은 심각한 도전을 받기 쉽다. 그것도 공공시설물 훼손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서 방송을 금지하기는 더더욱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 텔레비전의 다양한 채널 중 뮤직비디오를 주로 볼 수 있는 채널은 역시 MTV이다. 물론 MTV의 주시청층이 십대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학부모 단체 등의 항의를 많이 받는 편이긴 하다. MTV는 요즘에 뮤직비디오보다는 십대들이 좋아하는 노골적인 리얼리티쇼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다 보니 십대를 자식으로 둔 학부모 단체들의 비난이 빗발치기 때문에 검열이 종종 이뤄진다.

검열의 기준은 주로 마약, 무기, 섹스, 정치적 올바름이나 종교 등이고, 사회적 논란의 정도에 맞춰 늦은 시간대로 문제의 뮤직비디오가 옮겨지거나 부분 편집되거나 심하면 방영금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공공시설물을 발로 차는 행위로 방송금지 같은 높은 수위의 검열이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다. 아직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가 미국 방송국에서 금지될 것이라는 소식은 아쉽게도(?) 들려오고 있지 않다. 총이나 수류탄 등을 동원해서 대량의 공공시설물을 폭파하는 테러라면 모를까, 이 정도 수위로는 큰 물의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 같다.

gentleman1검열이라는 것은 사회마다 달라서 그 절대적 기준을 논하긴 어렵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아주 사소한 경범죄를 비롯한 모든 불법적 표현은 금지되어야 한다. 음악이라는 대중예술 영역에서 표현한 것을 현실사회의 법적 기준으로 접근하는 것은 일어나지도 않은 범죄를 미리 처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모방의 우려가 있으니 아무도 못 보게 해서 시청자를 보호하겠다는 과잉보호일 뿐이다. 결국, 연령등급이나 다른 방법이 아닌 방송금지라는 강경한 방법을 택한 것은 시청자가 그 뮤직비디오를 보고 공공시설물 훼손에 나설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듯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세환 서울시의원도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도서관에서 춤을 춰도 되는 곳으로 사람들이 착각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피력하였다고 하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런 인식 자체도 어이가 없지만, 이러한 방송금지가 과연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아닌 내용을 과도하게 검열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무엇일까? 이미 유튜브로 전 세계인이 보고 있는 뮤직비디오를 한국의 방송사가 금지했다고 해서 그 영향이 얼마나 될까? 새 발의 피도 안되지 않을까 싶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떠오르는 영화가 한 편이 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로 알려진 리처드 커티스 감독이 만든 ‘해적 라디오(Pirate Radio)’다. 1960년대 영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근거로 해서 만든 작품이다. 당시 BBC는 공영방송이라는 명목하에 대중의 교양을 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대중음악을 엄격하게 검열하는 정책을 고수했다. BBC가 주로 방송하는 음악 장르는 클래식이나 가벼운 재즈나 전통적인 포크였지만, 대중이 열광하는 장르는 로큰롤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는 깊은 괴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검열은 60년대를 풍미했던 자유로운 영혼들의 락앤롤에 대한 열망을 꺾지 못했고, 서로 뜻이 맞는 디제이들과 제작자들이 정부의 검열을 피하려고 영국의 영해를 벗어난 북해 한가운데 배를 띄우고 로큰롤을 방송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직접 라디오를 들어보지 못해 확언할 수 없지만, 영화를 보면 디제이들의 음담패설이나 적나라한 표현도 인기의 한 축이 되었던 것 같다.

pirate-radio해적방송국에서 만든 라디오 전파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영국의 라디오 청취자의 마음을 뒤흔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청취자들은 BBC 라디오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오락거리를 찾기 어렵자 주파수를 해적 라디오로 돌리게 되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BBC는 검열과 온갖 법적 규제의 방법들을 동원했지만, 그 거대한 로큰롤의 태풍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BBC는 해적방송에서 활동하던 디제이들을 거의 흡수해서 로큰롤을 방송할 수밖에 없었다.

검열하고 통제한다고 인간 본연의 욕망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음성적으로 변질되거나 기형적인 형태로 발현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즐기고 노는 욕망만큼 끈질기고 오래가는 것도 드물다. 금주법 시대에도 사람들은 몰래 술을 구해다 마셨다. 영화 언터처블에 나온 마피아 알 카포네는 금주법 때문에 거물이 되었다. 금욕을 요구하던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최고로 타락한 인물의 대명사를 탄생시킨 아이러니를 생각해보라. 이와 마찬가지로 그 사회의 음악에 대한 판단 또한 공영방송의 소수 엘리트에게 있는 게 아니라 듣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음악을 즐기는 대중은 보호해야 할 어린이가 아니고, 존중하고 함께 가야 할 동료이다. 소수 엘리트의 판단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머리가 클 만큼 큰 어른들이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들을 리도 만무하지 않은가? 정력낭비고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2010년대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터넷 라디오나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굳이 해적 라디오를 통하지 않고서도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방송하는 라디오도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가장 강력한 통로로 유튜브가 부상한 지는 이미 오래다. 웬만한 뮤지션 이름을 타이핑하면 뮤직비디오부터 방송출연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영상이 주르륵 검색된다. 이러한 유튜브를 타고 싸이는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남미,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무대로 진출할 수 있었다. 여기에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도 전 지구적 망을 구축하며 성장하고 있으니, 1960년대의 해적 라디오가 형성한 주파수를 통한 네트워크는 이제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세계적 연결망이 뚫린 시대에 검열은 그 의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검열 당국의 법적 영역을 벗어난 다른 나라를 통해 서비스한다면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중국처럼 아예 접속 자체를 막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이마저도 소위 능력자들이 나서면 쉽게 뚫리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접속을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외부 세계와 완벽히 격리된 사회라고 하는 북한의 사람들조차 남한의 방송국 SBS의 붕어빵을 즐겨본다고 하지 않는가?

완벽한 격리와 통제가 이제는 무의미한 시대로 향해가고 있는 시기에 과거로 돌아가 검열을 강화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 아닐까.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인 대책일 것이다. 우선 검열의 기준부터 새로 정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공공시설물 훼손의 우려라는 전근대적 기준은 버리고, 최소한 폭력의 심각성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많은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창작물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통제의 방법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아무런 논란이 되지 않는 작품을 예단하는 것은 무리한 검열이라고 볼 수 있다.

gentleman2혹자는 싸이의 젠틀맨이 방송금지를 받은 진짜 이유는 선정성 때문이라며, 포르노그래피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성적 코드가 들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성적 코드가 들어간 모든 영상물이 포르노그래피는 아니지 않은가? 직접 노출이나 야한 장면이 나온 것이 아니라 은유적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정도이다. 물론 성적 코드 강도를 판단하는데 개인차가 존재할 수 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부분이 불쾌하게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느낀 사람들이 자신은 뮤직비디오에 드러난 성적코드가 과하다고 보며, 불쾌함을 느꼈다고 표현하고 토론하면 될 일이다. 방송국이나 정부에서 미리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판단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ㅍㅍㅅㅅ에 기고

진짜 총보다 가상의 총을 더 두려워하는 이상한 나라

Gun Culture

미국에 유학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텔레비전을 틀면 온갖 범죄수사물에서 총격신과 피 튀기는 살인 장면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에야 불륜드라마가 주류를 이루지만 미국드라마의 주류는 역시 범죄물이다. 처음에는 한국과 너무나 다른 미디어 환경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그 탓인지 잠재의식 속에서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누군가가 갑자기 총을 꺼내 나에게 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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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평민들을 홀린 영국 귀족이야기 ‘다운튼 애비’

Downton Abbey

한국 사람들이 미드에 열광하고 있는 현시점에, 미국에서는 때아닌 영국 드라마 열풍(이하 영드)이 불고 있다. 많은 미국인이 일요일 저녁 텔레비전 앞에 붙어 앉아 100여 년 전 영국의 한 상류층 집안의 흥망성쇠에 일희일비하고 있는 것이다.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요크셔 지방의 크롤리 백작 (극에서 로드 그랜썸이라고 불린다)의 집안에 딸만 셋이 있는데, 딸에게 작위와 재산을 물려줄 수 없어 먼 친척인 매튜 크롤리를 상속자로 데려와서 큰딸과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시키고, 둘째딸은 늙은 귀족과 결혼하려다가 결혼식장에서 버림받고, 셋째딸은 집안에서 부리던 운전사와 결혼을 하는 등의 파란만장한 생활을 그리고 있다. 흡사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의 영국 귀족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결론이 김약국의 딸들만큼 비극적으로 날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공중파 네트워크 텔레비전 채널에서 외국에서 제작한 작품을 그대로 수입해서 방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대체로 영국이나 유럽의 쇼를 수입해서 미국의 배우를 캐스팅해서 리메이크를 해서 방송한다. 네덜란드에서 빅브라더를 수입해서 미국식으로 다시 만든 것이 좋은 예이다. 자막 읽기를 싫어하는 문화 탓인지, 아니면 외국 문화의 생소함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대체로 배경이나 캐릭터를 번안해서 방송한다. 자막의 문제가 전혀 없는 영드 ‘오피스’ 조차도 미국의 펜실베니아주의 스크래튼으로 배경을 바꾸어 미드 ‘오피스’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 사실 영드 오피스에 비해 재미가 떨어지는 미드 오피스를 보다보면 왜 이걸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하여간 미국사람들은 그렇게 리메이크 하는 걸 좋아한다.

이런 경향과 달리, 리메이크 없이 수입한 그대로 당당하게 외국 프로그램, 특히 영국 프로그램들을 수입해서 별다른 편집없이 보여주는 채널이 있었으니 바로 공영방송채널인 PBS이다. 가끔 PBS를 보면 이게 미국 채널인지 아님 영국채널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영국에서 제작한 제인 오스틴, 토마스 하디,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고 BBC의 셜록(Sherlock), 닥터 후(Doctor Who)를 비롯해 닥 마틴(Doc Martin)같은 민영 ITV의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주말 PBS의 편성은 영국방송이 없으면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지경이다. 그동안 PBS에서 영국 프로그램의 방영이 꾸준히 이루어졌던 것에 비해 시청률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저 PBS 방송의 주요 시청자들인 지식인이나 중상류층 노인들의 채널로 인식되었을 뿐이었다. 영드에 대한 미국내 소비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하며 1998년에 BBC America 채널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주류문화로 진입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차에 최근 들어 폭발적 인기를 누린 영드가 두 개나 등장했다. 하나는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베네딕트 컴버베치가 주연한 셜록(Sherlock)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이다. 시즌2 피날레는 무려 오백사십만 명의 시청자들이 보았다. 도대체 영국 귀족판 김약국의 딸들이 무에라고 그렇게 많은 미국시청자가 TV 앞에 모여 앉아있었던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시청률과는 만리장성을 쌓아왔던 PBS가 이런 관심을 받게 된 일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사실 기존의 시청자들만으로 이 시청률은 불가능한 것이었고, 이는 새로운 시청자가 유입됨으로써 가능한 수치였다. 여러 미국 뉴스미디어의 분석에 따르면, 평소 PBS를 보지 않던 2~30대가 다운튼 애비를 보려고 평소에 채널을 잘 돌리지 않던 PBS로 몰려왔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모여 드라마를 보기 위한 파티가 여기저기에서 열렸다. 월드컵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치킨과 맥주를 사다놓고 친구와 모여 시청하듯이, 미국인들이 치즈와 와인을 앞에 두고 다운튼 애비의 희로애락에 몸과 마음을 던진 것이다.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시애틀에서는 4~50대의 여성팬들이 다운튼 애비의 캐릭터들의 스타일로 옷을 입고, 다시 말해 코스프레 비스름한 것을 하며 시즌2를 단체관람하기도 했다. 컬트팬이 생겨났고, 에미상을 받는 등 대중적 인기도는 하늘 높이 치솟고 있다. 오죽하면 CBS 시트콤 빅뱅이론(Big Bang Theory)의 쉘든 쿠퍼 박사마저 대사로 언급했겠는가! 영국에서는 이미 시즌3가 끝났지만, 현재 미국에서는 시즌3가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다.

김약국의 딸들과 엇비슷한 것 외에, 다운튼 애비는 과연 어떤 드라마일까? 이 드라마는 20세기 초반 영국의 요크셔지방 귀족 집안을 배경으로 다룬 시대극이다. 미국 평민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서 때아닌 영국 귀족과 그 하인들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100여 년 전 미국도 아닌 영국 지방의 머나먼 드라마가 무슨 매력이 있었을까. 고급 호텔을 연상하게 하는 웅장한 저택,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갈아입는 화려한 옷, 아침에 종만 흔들면 하인들이 방으로 가져다주는 아침, 이런 라이프 스타일에 미국 시청자들이 압도되어버린 걸까. 그것도 아니면 주인을 시중들며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하인들의 삶에 동화되어버린 걸까.

사실 불황기에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낭만적 작품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면하기보다는 탈출해서 꿈이나 환상 속으로 숨고 싶은 욕망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더불어 미국이 굉장한 불황기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런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드라마가 유행하는 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미국 대공황기에 쇼비즈니스는 절망스러운 현실을 벗어나 꿈을 꾸게 했다. 2008년 불어닥친 경제위기에서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미국인이 영국 과거로 도망가서 몇 시간 정도 노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나.

과거라고 해서 그냥 과거가 아니다. 다운튼 애비가 보여준 과거는 귀족과 하인이 조화를 이루는 삶이다. 다운튼 애비의 주인은 로버트 크롤리 백작인데 인자하기가 그지없다. 눈이 아픈 하인의 병도 고쳐주고, 법적 문제가 있는 하인에겐 변호사도 대주고, 다리를 저는 하인도 차별 없이 다 받아준다. 하인이 주인과 친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자기 집에 들인 충성스런 하인을 끝까지 책임져주는 인자한 주인님인 것이다. 하인들에게 이보다 더 나은 고용주가 과연 있을까? 결코 다운튼 애비보다 낫다고 할 수 없는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영국에 비해 계급사회 전통이 약한 미국에서 이 드라마가 부각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가설은 미국이 신계급 사회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빈부 격차가 점차 커지면서 상위 1퍼센트가 누리는 삶은 귀족적이라고 불릴 만큼 높아만 간다. 2008년 이후 중간층은 몰락하고 하위층은 늘어나면서 계급 갈등이 커지게 되었다. 월스트릿의 비도덕적인 현실만 보더라도 미국 상위 1퍼센트 중에서 크롤리 백작처럼 인자한 사람을 찾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불경기에 직장이 있는 게 어디냐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다운트 애비의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는 이상향과 다름이 없다.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며 복지까지 책임지는 의식 있는 귀족이었다. 현실에는 없지만 어디엔가 있을 법한 다운트 애비의 삶은 안식을 가져다주었을지 모를 일이다.

2012년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이러한 계급갈등이 낱낱이 드러났다. 월스트릿 금융가와 상류층을 대변하는 공화당 대선후보 미트 롬니는 현대판 귀족의 상징이 되었다. 부의 축적을 위해서라면 정리해고를 마다하지 않는 몰인정한 짓을 저지르는 상류층이 계급갈등을 더욱 부추켰다.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제도와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보호하려는 버락 오바마는 중간층 이하의 계급을 그나마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대선 이후에 이어진 상류층 증세와 조세 공평성 논쟁만 보더라도 오바마가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을 위해 돈을 물쓰듯 쓰면서, 노조를 탄압하고, 사회보장제도를 공격하는 상류층의 이중성에 대한 심판이 대선과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월스릿 점거시위도 이들의 분노와 사회정의에 대한 갈구의 목소리로 이해할 수 있다.

다운튼 애비가 보여준 삶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사회상이었다. 다운튼 애비도 세계대전, 스페인 독감, 여권신장운동, 기술의 발전 등에 따라서 서서히 변하고 있다. 2013년의 미국 패권주의도 예전만 같지 못하고, 중국을 견제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지구 온난화와 테러의 시대를 맞아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오바마 집권 2기가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사회갈등을 완화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점점 높아만 가는 사회불안과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총기사고도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폭발할 것 같은 계급 갈등이 없는 다운튼애비의 시대의 부재를 그리워할 여유가 더이상은 없다. 밖으로 다른 나라와 싸워야 하고, 안으로 계급 갈등이 높아지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잠시나마 평화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이 드라마, 묘하게 중독된다.

ㅍㅍㅅㅅ에 기고한 글입니다.

주말 블로거로 살기

television

거의 몇 년간 휴면상태나 다름이 없었던 블로그를 다시 살리면서 이름도 ‘읽고 쓰고 달린다‘로 바꾸고 새로운 글도 쓰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연재 비스름한 글도 써보기로 해서 여기에 공개한다. 장안의 화제 ‘ㅍㅍㅅㅅ‘란 사이트에 요즘 유행하는 미국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꾸준히 내보내기로 했다. 물론 블로그에도 그 글을 게재할 예정이다. 예전 블로그 글에서는 구체적인 텍스트에 더 집중했지만, 이제는 미국사회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그 작품이 가지는 의미에 더 치중해보려고 한다. 대중문화 상품이라는 게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히트작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작품 자체를 파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작품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이 더 흥미롭게 보였다. 뭐 그런 궤적을 쫓아가는 여행을 글로 해보려고 한다.

한동안 블로그에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그 시절로 돌아가진 못 한다.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앞으로 꾸준히 블로그 글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주말에 글 한 편 정도는 쓰는 것은 지금 일정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전업으로 블로그 글은 쓰지 못하겠지만, 주말 블로거로 이제부터 변신한다. 주중과 주말의 분리가 지킬과 하이드처럼 일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2013년이 바빠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블로그 이름 개명작전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기로 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름을 바꾸는 거였다. 블로그 통계를 살펴보니 주로 검색을 통해서 사람들이 오는데 거의 음식이랑 관련된 것이었다. 제목에 “맛있는”이 들어있어 그런가, 아니면 음식 블로그가 주류라서 그런가. 아무튼, 음식을 연상시키는 말도 빼고, 대중문화도 빼고 며칠 고민했다. 그래도 썩 마음에 드는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거 작명해주는 서비스가 있을까.

고민 끝에 정한 이름이 “읽고 쓰고 달린다”였다. 이 이름은 트위터 프로필 소개 글로 써왔던 문구다. 내가 요즘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을 적은 것이다. 읽고 쓰는 건 예전부터 열심히 하던 일이었는데 최근에 의욕을 잃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달리기를 시작했고, 달리면서 앞의 두 일도 무기력증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세 가지 일이 합쳐 완전체가 되었다.

이름을 바꾼 이유 중의 하나는 대중문화 영역을 넘어서 글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주로 대중문화 연구자로 계속 살아가면서 문화 관련 글을 쓰겠지만, 사회나 정치 관련 글도 써보려고 한다. 대중문화지 롤링스톤도 문화 글과 함께 정치 글도 중요하게 다룬다. 그리고 문화와 정치는 생각하는 것보다 가깝다. 문화와 정치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공존한다. 정치가 억압적인 시절에는 대중문화 속 표현의 자유는 제약되기 마련이다. 문화는 진공상태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사회와 정치의 영향 속에서 살아간다. 문화 속에서 텍스트만 보려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만 봐서 볼 수 없는 세계가 있었다.

이런 생각들이 뭉쳐서 블로그 이름을 다시 바꾸게 되었고, 당분간 읽고 쓰고 달리면서 살아볼 계획이다.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 관한 단상

이 글은 원래 작은 논문으로 쓸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가벼운 블로그 글로 바꿨다. 축제에 가보지 못했고 인터뷰도 할 수 없어서, 인터넷 홈페이지, 기사, 동영상, 블로그 글을 통해서 얻은 것을 바탕으로 정리해봤다. 자라섬 재즈 축제가 많은 사람이 참여한 성공적인 축제로 평가받고 있지만, 재즈가 국내에서 아직 대중적인 장르가 아닌 탓에 기사나 자료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지산 록 페스티벌 같은 행사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재즈 관련 축제 가운데 꾸준히 성장하면서 어느 정도 대표성을 가지는 행사가 되었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2012년에 9회의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올해는 벌써 10회를 맞이한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자라섬에서 재즈를 주제로 축제를 유치한다는 것은 특이한 조합이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가 아닌 가평에서 민요나 가요가 아닌 낯선 재즈라니. 가평 하면 잣이 아닌가. 지역 축제하며 흔히 특산물이나 공예품을 먼저 떠올리거나 전통과 연관있는 행사가 떠오른다. 그러나 자라섬에서 반드시 전통에 한정해서 행사를 치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전통과 외래문화의 구별이 뚜렷하게 나눠지지 않는 것이 요즘의 상황이다. 가평 자라섬이 재즈라는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축제의 장을 마련한 것은 세계화의 모습이다.

자라섬은 이제 한국 속에서 재즈를 알리는 재즈의 동네가 되어가고 있다. 재즈라는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 모여서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재즈팬으로서 한국에 가게 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마음 속에 새겨 두었다. 연구자로서도 재즈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있는지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다. 일상의 답답함을 벗어나 사흘 동안 재즈에 푹 빠져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축제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탈의 욕구는 충분히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

자료를 찾아다니다 우연히 제8회 자라섬 국제 재즈페스티벌 광고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텔레비전 광고로 보이는 이 동영상을 보면서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한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다.

아직 충분한 재즈팬을 확보하지 못한 환경에서 재즈를 전면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보였다. 이 광고에서 재즈는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데이트 여행,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 가족이 떠나는 소풍, 외국인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 등을 자라섬 재즈 축제에서 즐길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낭만이란 감정에 호소하는 편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재즈팬을 대상으로 광고를 만들었다면 유명 재즈 뮤지션들의 영상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내 재즈팬이 늘고 있긴 하지만 그들만으로 이 축제를 치르기에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2000년대 들어서 지역축제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바람에 자라섬 재즈 축제가 경쟁해야 할 대상이 많아졌다. 특화된 주제가 없는 축제는 쉽게 사라지기 쉬웠다. 이런 지역 축제들의 특징은 주로 지역 자치단체의 지원과 기업의 후원으로 이뤄진다. 지속적인 지원을 받으려면 아무래도 규모의 경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참여자의 숫자 경쟁이 이뤄진다. 공연 티켓만 팔아서 축제를 이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서기 전까지는 지역단체나 기업의 후원은 필요하다. 2012년에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을 다녀간 사람은 23만 명이 넘어섰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표축제로 3년 연속 수상했고, 국/도비를 합쳐 2억 2500만 원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직접 자라섬 재즈 축제에 가본 사람들의 경험은 블로그 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로 재즈팬은 아니지만, 낭만을 즐기면서 놀기에 적당한 축제라는 긍정적 평이 많았다. 재즈팬으로 재즈와 상관없는 지역 특산물이나 기업행사 등 상업적인 분위기에 대한 불만도 살펴볼 수 있었다.

재즈 막걸리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을 둘러싼 흥미로운 상품으로 “재즈 막걸리”가 있었다. 재즈 하면 쉽게 연상되는 와인이 아니라 막걸리라니 신선한 발상이다. 이 술은 그 해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할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면서 숙성되었다. 음악 숙성이 요즘에 유행하는 방법인지 찾아보니 간장도 그렇게 만든 게 있었다. 아무튼, 재즈라는 외래 음악과 막걸리라는 전통의 술이 결합한 상품이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과 묘하게 닮아있다. 전통과 외래가 교차하는 축제라는 독특한 성격이 유지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실험이다. 지역 축제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즈의 조합이 생소하지만, 1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전통과 외래를 섞고 숙성시켜 재즈 페스티벌은 어떤 맛을 내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은 재즈와 가평의 만남이다. 비록 국내에서 대중적인 음악 장르가 아니지만, 재즈는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상당한 팬을 확보한 세계적인 음악이다. 지역과 세계의 만남에서 어떤 갈등이 생겨나고 있고, 그 속에서 전통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을까. 경기도 가평이라는 지역이 어떻게 세계적 문화상품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려면 좀더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축제 관계자, 지역민, 재즈 뮤지션, 참여자 등에 대한 인터뷰로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한국에 영구귀국하게 되면 좀 더 가까이서 자라섬 재즈 축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때까지 잘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

전자책으로 넘어가는 길목

요즘에는 음반이나 책을 거의 사지 않는 편이다. DVD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영화나 책을 즐기지 않게 된 건 아니다. 말하자면 소비하는 방식이 약간 달라졌다. 이사를 자주 다니게 되면서 든 습관인지 모르겠으나, 물건이 너무 많아지면 가지고 다니기가 너무 어렵다. 이사 상자에 책을 챙기다 보면 다시는 읽지 않는 책을 처분하고 싶은 욕구가 불쑥불쑥 든다. 아직 미련이 많이 남아서인지 선뜻 포기하기 쉽지 않다. 그런 고민에 빠지면 내가 왜 이걸 바득바득 모아서 무엇하지 하는 생각까지 미친다. 내가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만들 것도 아닌데 이걸 모을 필요가 있을까. 수집벽에 빠진 나에 대한 재발견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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