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마시고 담배피고 바람피고, 매드맨 (Mad Men)

사무실에서 틈만 나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던 시절이 있다. 까마득한 과거인거 같지만 50년 정도 밖에 흐르지 않은 1960년대 미국이다. 1960년대를 떠올리면 히피, 우드스탁, 마틴 루터 킹, 여성인권운동 등이 떠오른 게 보통일 것이다. 이 시리즈는 격동의 사회변화가 일어나기 바로 전 1960년에서 시작한다. 백인 남자가 모든 권리를 다 쥐고 있고 각종 사회적 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맥카시즘의 광풍이 지나간지 얼마되지 않았고 미국은 소련과 냉전상태였다.

담배연기가 뿌연 사무실처럼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과거가 “매드맨”에서 생생한 드라마로 돌아왔다. 정말 미국의 60년대를 제대로 재현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절에 활동하던 광고업계 종사자에게 자문을 받고 시대적 분위기에 맞는 패션과 무대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고파는 광고업계의 현실을 직접 다룬 드라마가 미국 방송사에서 드물었다. 범죄물과 리얼리티쇼가 판치는 미국 방송에서 60년대 광고업계를 다룬 드라마는 확실히 별종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HBO와 Showtime 두군데 방송사에 거절당한 경력이 있다. 그 덕에 프리미엄 채널이 아닌 기본 케이블 채널 AMC는 성공적인 히트작을 낼 수 있었다.

아마도 백인 남자들중에 그 시절을 그리워 하는 이들이 있으리라. 비서와 은밀한 관계를 갖고 사무실에서 술담배를 마음대로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었으니까. 거꾸로 생각하면 백인남자가 아니었던 여성, 흑인, 동성애자, 이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끔찍한 현실이다. 시민운동, 인권운동의 광풍 속으로 들어가면서 60년대는 변화의 시기가 되었다. 60년대를 다룬 다양한 책, 연구논문, 다큐멘터리를 보더라도 그 시기가 미국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매드맨”은 변화의 중심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사회갈등과 변화를 무시하지 않고 주류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다룬다.

타이틀 화면에서 검은 실루엣의 정장차림의 남자가 고층빌딩에서 추락한다. 그 배경으로 60년대 광고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 타이틀 화면을 보고나서 이 시리즈에 마음에 끌렸다. 추락하는 사나이는 시리즈의 주인공 “돈 드레이퍼”다. 시리즈는 돈 드레이퍼의 좌절과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성공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마도 추락은 술담배와 여자로 방탕했던 시대의 도덕적 추락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상품을 최대한 많이 팔기위해 있지도 않은 이야기로 꾸며야 하는 광고업계의 모순적 상황에 대한 풍자였을까. 아니면 어메리칸 드림 성공신화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시각적 효과일지도 모른다.

“매드맨”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화려한 타이틀 화면에 비해서 느리고 지루한 사건전개 때문에 약간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느리지만 단단한 전개로 담아낸 사회적 드라마를 보면서 그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돈 드레이퍼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상관의 사망을 계기로 그의 정체성을 훔쳐서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부정한 채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의 아빠로 새 삶을 살고 있다. 가짜 정체성으로 채워진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촛불같다. 어쩌면 사람들의 꿈에 기대어 거짓말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광고계에 대한 은유가 돈 드레이퍼이다. 광고는 허풍이고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다. 돈 드레이퍼처럼 성공적 이미지는 만들어진 것이다.

돈 드레이퍼는 나쁜 주인공이다. 여자를 바꾸면서 수없이 바람을 피고 아내가 모처럼 모델로 일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만두게 하는 자기중심적 남자다. 바람피운 것을 아내가 알게 되었어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외로움을 무기로 착한 아내에게 용서를 구한다. 돈 드레이퍼는 이어지는 성공신화는 성공이 착하게 사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이 시리즈의 다른 주인공은 “페기 올슨”은 비서로 일을 시작해서 카피라이터가 된다. 여성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 여자들이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화받고 타자를 치는 비서가 전부였다. 페기는 남자 동료의 차별과 심지어 여자 비서의 시샘까지 온몸으로 받으며 이겨내야 했다. 페기는 카피라이트 능력이 뛰어났지만 제대로 된 사무실이 없어 복사기 옆에서 업무를 봐야했다. 페기의 눈에 비친 돈 드레이퍼는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어메리칸 드림도 백인 남자에게만 허락된 신화였다. 페기의 시점에서 회사는 성희롱과 성차별이 스스럼없이 행해지는 야만적 사회였을 것이다.

여성문제만 아니라 동성애자, 유태인, 흑인 차별에 관한 에피소드가 차분하게 절제된 어조로 등장한다. 광고인은 이런 사회문제 누구보다 민감하게 접근했다. 당장 상품판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흑인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무슨 텔레비전을 사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유태인에게 관광하는 이유를 물어보기도 한다. 광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판매에 빠질 수 없는 동력이다. 사회적 이슈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기업의 이익에 충실하게 봉사해야 하는 처지가 광고인의 운명이다. 나름대로 예술적 작업을 한다고 믿지만 결국 광고의 성공은 상품판매가 결정한다.

이 시리즈는 60년대를 돌아보는 시대극이지만 인간의 탐욕을 탐구하는 심리물로 볼 수도 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동료의 약점을 이용해서 몰아내고 밟고 올라서려는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너무나 쉽게 이성의 유혹에 빠지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원하는대로 다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연구다. 해고당하는 동료를 위로하다가 사무실로 들어가서 뛸듯이 기뻐한다. 바로 그 자리는 자신의 승진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씁쓸한 현실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도 마치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인간의 잔인한 욕망일까.

또다른 이야기 축은 돈 드레이퍼의 과거이다. 시리즈가 전개될수록 그의 어두웠던 과거가 드러난다. 아내조차 모르는 돈 드레이퍼의 과거는 자아찾기의 여행이다. 부끄러웠던 과거는 돈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찾아온다. 피하다가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돈 드레이퍼의 복잡한 내면이 투명해지는 순간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시작한 이 시리즈는 점점 시청률이 높아지고 있다. AMC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에미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휩쓸고 성장하고 있다. 이미 2010년까지 연장계약을 체결했으니 변화의 중심부로 점점 다가가고 있다. 60년대 후반의 격변의 시기를 어떻게 다룰지 무척 궁금하게 하는 시리즈다.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뉴욕의 광고인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매드맨”이라는 용어는 매디슨거리(Madison Avenue)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50~60년대 뉴욕의 매디슨가에 유명한 광고회사들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광고인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In Category: 문화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Show 4 Comments
  • julee 2009년 10월 7일, 8:47 am

    60년대 시대극에서 인간의 욕망을 살펴볼 수 있다구요, 광고인(쟁이)들의 삶이 지금과 같은 경기불황 속에서 어떻게 읽혀질지 궁금하내요. 전혀 다른 장르지만 한국에서는 선덕여왕이 최고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답니다. 불온한 정치가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욱 현실을 괴롭히고 있기에 1500년전 시대극(신화이자 소설일 수 있겠지만)을 통해 정치(게임)와 사람(왕과 귀족, 백성-대통령과 정당-국민)을 견줘가며 보고 있답니다. – 시간이 빨리 가네요. 오랫만에 찾아왔는데, 뭔가 다른 일에 열중하신 듯 합니다. 뒤쳐지지 않게 잘 읽고 갑니다 – 잘 지내세요!! 화이팅!! – 숨쉬는 흔적만 남기고 갑니다.

    • 류동협 2009년 10월 8일, 7:53 am

      시대극의 매력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주제도 있고, 과거와 달리 변화한 현재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죠.

      저도 선덕여왕을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과거의 정치와 현재 정치인의 모습이 자주 겹쳐지기도 했죠. 이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 차이는 우리의 상상력으로 채워가면서 정치란 무엇인가 그런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요즘에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느라 블로그 관리를 소홀히 했습니다. 호흡은 느리지만 꾸준히 블로그로 제 생각을 풀어내는 일은 할 생각입니다.

  • FOX채널 2010년 8월 30일, 11:42 pm

    안녕하세요~^ ^ ‘미드의 본좌’ FOX채널입니다! FOX채널의 오픈캐스트에 담아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류동협 2010년 8월 31일, 9:38 pm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