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황석영의 변절을 바라보는 독자

by 류동협 on 2009년 5월 16일

in 표본실의 대중문화

사람은 누구나 변하게 마련이지만 작가 황석영의 최근 행보는 정말 놀랍다. 황석영이 누군가. 사회 비판이나 진보적 가치에 관해서 목소리를 높이며 그걸 소설로 쓰며 활동한 대표적인 진보적 문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용산학살, 비정규직 양산, 신자유주의적 자본중심 세계관으로 똘똘 뭉친 이명박 정부에 야합을 하다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극우정권이 들어선지 2년도 되지 않았는데 지식인들의 변절이 이토록 빠를 줄이야.

기사를 보니 황석영이 ‘유라시아 특임대사’로 이미 내정이 되었다고 하던데 이런 지위를 위해서 그간 자신이 쌓아온 사상을 길바닥에 내팽개친건가. 작가는 독자의 사랑과 후원을 받으며 커가는 사람이다. 이번 사건은 줄곧 그의 작품에 담긴 사회비판과 진보적 가치를 좋아해서 팬이 되었던 독자를 배신한 것이다. 그는 이명박 우파정권을 ‘중도실용’이라고 거짓말까지 해가며 자신의 변신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가 한겨레와 했던 인터뷰를 보면서 그의 팬들이 수긍하며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나만 해도 그 인터뷰를 보면서 더 화가 났다. 차라리 솔직하게 심경 변화를 밝혔다면 편하게 보내줄 수 있을지 모른다.

독자의 생각을 대변해줄 캐릭터를 창조하고 흥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가는 더 많은 팬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평생토록 지속되는 건 아니다. 마치 연애처럼 서로 뜻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는 한시적 관계다. 진보적 가치를 통해서 황석영을 만나왔던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번 일은 충분히 배신에 가까운 행위였다. 작가가 마음이 바뀌어 바람을 피는 건 자유지만 그걸 이해해 달라고 하는 건 염치가 없다. 한번 깨진 관계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번 계기로 기존의 황석영 팬들은 상당히 떠나갈 것이다. 이제 보수팬을 향한 그의 본격적인 구애가 펼쳐질 것이다.

‘중도실용’이라는 실체도 모호한 큰 틀 속에서 황석영이 구상하는 세계에는 더이상 관심이 없다. 그가 수십년간 쌓아온 진보적 문인이라는 이름을 버려가며 그리고 오랜 고정독자층을 배신해가며 얻으려고 했던 새로운 가치가 과연 그가 원하던 것이었을까. 그건 작가 자신이 판단할 문제지만 오랫동안 그를 후원하던 나같은 배신당한 독자는 그를 곱게 보내주진 못할 것 같다. 우파정권의 늦둥이로 이문열과 복거일을 넘어서는 인물로 거듭나는 과정을 괴롭게 지켜봐야할 독자의 심정을 그가 조금이라도 이해해줄 마음이 있다면 깨끗이 떠나시라. 중도를 운운하며 자신은 변하지 않았고 궤변을 늘어놓는 모습은 그를 더 싫어지게 할 뿐이다.

순수문학도 마찬가지지만 황석영 같은 현실참여형 작가가 붙잡고 있는 현실은 작품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황석영이 사회적 약자나 민중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이 아니라 자본가나 기업인의 입장에서 소설을 썼다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중도실용의 한국이 그가 생각한 이상적 세계라면 그의 시대적 인식은 한심한 수준이다. 잘해봐야 기회주의자들이 자기들끼리만 잘먹고 잘사는 이기적 욕망이 넘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런 공감할 수 없는 현실로 쓴 작품이라면 쳐다도 보지 않을 것이다.

몇 주 전에 동생에게 부탁해서 “개밥바라기별”과 “바리데기”까지 구해 놓았는데 무척 난감하다. 그 책을 읽는 동안에 이 사건이 머리 속에서 내내 맴돌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황석영 관련 기사도 검색해봤더니 문단계에서는 벌써 그의 변절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의 ‘화려한 변신’이 독자를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작가 생명에 치명적인 독이 될 것이다. 독자를 잃어버린 작가는 시대적 울림이나 감동도 끌어내기 어렵다. 황석영이 새로운 독자층을 확보하거나 아예 정치계로 진출할 계획이라면 모를까, 기존의 독자까지 끌어안고 가긴 아마 힘들 것이다.

내가 아는 황석영이었다면 문화, 예술, 언론 분야에서 학살에 가까울 정도로 탄압받고 있는 지금 시대의 현실을 포착한 소설을 썼을 것이다. 광주항쟁에 관한 글을 썼듯이 용산학살이나 촛불과 노조탄압으로 피해를 당하는 민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이 그의 과거를 대표하는 모습이었으리라. 내가 알던 황석영은 이미 죽었다.

참고글

연관글

{ 16 comments… read them below or add one }

1 에구에구 2009년 5월 17일 at 7:45 am

용산학살이라니… 풍자나 반어를 하고 계시는건가요 말이 너무 지나치신듯

Reply

2 류동협 2009년 5월 17일 at 9:46 am

미안하지만 그 말보다 더 적당한 말을 못 찾겠네요.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진상규명도 안 하고 청장 한명 물러난 걸로 대충 수습하려는 현실이 슬픕니다.

Reply

3 홍성일 2009년 5월 17일 at 8:19 pm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Reply

4 류동협 2009년 5월 18일 at 1:30 pm

정말 실망이 크고 안타까울 뿐이다.

Reply

5 황라경 2009년 5월 18일 at 12:59 am

‘황석영’작가를 좋아하던 한 사람으로써 저도 너무 실망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책을 모두 불 태워버릴까, 재활용 쓰레기로 버릴까 생각 중입니다.

Reply

6 류동협 2009년 5월 18일 at 1:33 pm

저도 비슷한 심정입니다. 예전에 이문열 때가 문득 생각이 나네요. 문제적 작가의 문제적 변신은 고민할 만한 주제를 다시 던져주셨군요.

Reply

7 구월산 2009년 5월 18일 at 5:37 am

저는 심청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황석영이라는 작가 이전 작품들하고는 좀 다른 책을 쓰는구나라고 느꼈는데 이전 작품들이 주로 민중들의 투쟁을 그린 것이라면 후기작품들은 민족이나 사랑, 인간과 같은 것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김지하 시인이 그랬듯이 작가의 눈은 변합니다. 과거에 그를 존중할만한 작가라고 인정했다면 황석영씨의 이번 동행도 그의 욕심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흐르는 변화로 인정하고 봐주는 것도 유연한 관점이 아닐까요?

Reply

8 류동협 2009년 5월 18일 at 1:42 pm

초기작 위주로 읽어오다가 최근에 다시 그의 책을 잡게 되었는데 그런 변화가 있었는 줄은 몰랐습니다. 김지하씨도 그렇지만 황석영씨의 변화가 놀라운 건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아닐까 합니다. 그 변화가 납득할만한 것이라면 독자도 이해하겠지만 이번 사건은 충분히 독자들을 등돌리게 할 만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Reply

9 이키나! 2009년 5월 18일 at 10:19 pm

오늘 한겨레에 김지하씨 인터뷰도 있는데.. 절반은 맞는말 같지만 절반은 동의할 수 없더군요. 작가가 보수냐 진보냐에 상관없이 작품만 잘쓰면 된다는말이 그중 가장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결과물만 좋으면 되는분야도 있긴하지만.. 문학이라는것이 현실과 이어지게 마련인데, 작품과 현실이 완전히 반대의 길을 타거나… 뭐 예를들어서 문학성이 아주 뛰어난 작품인데 일제시대에 나온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을 찬양하는 글이라던가… 이런건 좀 아닌거 같습니다.

Reply

10 류동협 2009년 5월 20일 at 11:44 am

저도 그 인터뷰를 읽었는데 동의할 수 없더군요. 예술가와 작품이 맺는 관계는 그럴 수 있지만 사회 구성원으로 예술가는 특정한 세계관을 가질 수 밖에 없죠. 그게 하루에 수십번 변한다면 작품의 세계라는 것도 믿을 수 없게 되는 거니까요.

Reply

11 줄리 2009년 5월 19일 at 8:00 am

지난 일주동안의 광풍, 일상의 바쁨과 버거움에 지쳐, 영 무슨 소리인지 감을 못잡고 있다가 동협님의 블로그에 들어와보고 이제야 조금 알게되었내요. 그리고 한겨레와의 인터뷰, 고등학생 기자의 글, 황석영(선생)-아직도 그글 이름만으로 부를 수 없는데… 이맘을 알지 모르겠내요-의 사랑하는 독자에게 까지 읽어보았습니다. 참으로 할말이 없내요.
변절과 배신, 분노보다도 이미 힘빠진 저는 두가지가 떠오릅니다. 왜 우리 선생, 선배들은 혼자 다해야 한다는 스타성과 엘리트주의에 빠져있을까, 왜 혼자서 다하려 하는지…또하나 나이를 먹으면 사리판단이 역시 흐려지는구나, 이것이 바로 노추구나, 그래서 젊음과 원칙의 비난이 쏟아져야만 본인이 성급했음을 깨닫고, 그게 아니라고 화려한 언변으로 자신이 누구였는지 계속 믿어달라고 그제서야 호소하는 구나. 그리고는 결국 바꾸려하지 않고, 변명을 하내요.
그냥 조용히 총기가 떨어지고, 기력이 떨어지면 그대로 가만 육체의 변화에 본인을 맞기면 안되는지…계속 계속 선배이자 선생으로 살아가는 일이 그렇게 힘든 것인지…새로움은 후배와 젊은이들이 하고, 그들은 그저 가만히만 있으면 안되는 지, 그나이가 되지 않아 잘 모르겠내요.
평소 너무나 존경하고 믿어왔던 선생님들의 배신을 보면서, 처음엔 분노와 비난과 비판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그래, 뭐 더 기대하냐. 그냥 내가 존경했던 그 시절, 그 사람들이 선생으로 있었다는 사실만 기억하자. 그리고 나머지 몫은 그들에게 기댈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제 선생이 되고, 선배가 되서, 우리를-뭐 제가 그렇게 살겠다거나 살고있다는 것은 아닙니다-우리를 존경하는 젊은이들을 후학들을 후배들을 만들어야겠구나 하는 다짐이 생기더군요. 워낙 패배감에 빠져 있다보니 더이상 누군가 존경하고 훌륭한 스승이나 선배들을 기대할 힘이 없어 그런가, 배신이라 비판하고, 분노하기에도 영 기운이 없답니다. 어찌보면 황석영씨는 오래동안 우리의 스승이었던 것 같습니다.
잘 모르지만 역사라는 것은 나선형의 순환 고리처럼 앞서다 다시 후퇴하고 다시 조금 앞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계단식으로 변화,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가는 것 같아요. 조금씩 조금씩 후퇴하다가 다시 갈 수 밖에 없음을 느끼며, 그의 행보에 맞설 수 있는 것은 그의 표현처럼 사안 사안, 문제 문제마다 싸울 수 밖에 없고, 싸워야 하는 그보다 젊고, 그보다 정의로운, 그보다 현재의 고통에 더욱 힘들 수 밖에 없는 그 이후의 좀 더 젊은 세대의 몫이란 생각이 듭니다.
죽는 날까지 존경할 수 있는 선생과 스승, 선배를 찾기보단, 차선으로 변하지만 말았으면 하는 기대를 붙들며, 혹시 그들이 변하더라도 지난 시절 내가 그토록 존경할 수 밖에 없던 자리에서 제몫을 해주었다는 사실을 소중히 기억하며, 남은 몫은 우리를 더 존경하고, 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도록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저 변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라도 지켜내야 하지 않나 싶내요.
너무 자조적인가요, 그냥 댓글이라 생각하고, 개인적인 소감 적어봅니다.

Reply

12 류동협 2009년 5월 20일 at 11:55 am

황석영 선생의 치열했던 과거의 모습은 이제 좋은 추억거리로 생각해야할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저역시 늙어서도 변하지 않고 단단하게 벼텨질 버팀목으로 있어줄 어른 한분을 읽어버린 심정입니다. 생각같아선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그 자리로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줄리님이 느끼신 감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본보기가 될만한 삶은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 연대하며 잘못을 지적하며 치열하게 싸우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쉽지 않겠지만 이런 마음이 모여서 언젠가 물결을 일으키고 파도를 불러올지도 모르죠. 참 먹먹한 하루입니다.

Reply

13 이승환 2009년 5월 19일 at 9:54 pm

이 나라의 유명 문화인들이 과대평가된 건지… 점점 하나하나 마음 속에서 죽이고 있는 느낌입니다 -_-a

Reply

14 류동협 2009년 5월 20일 at 11:57 am

보수세력의 진보인사 포섭이라는 공작이라도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ㅋㅋ
아무튼 이렇게 소영웅주의, 과대망상적 문인들이 늘어나는 건 건강한 현상은 아닐테지요.

Reply

15 프랭키 2009년 5월 21일 at 12:03 pm

박노자 선생 글의 마지막 구절이 와닿으면서도 참 부끄럽더라구요.
어디로 튀던지 그게 작가의 자유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지말아야할 길이 있는데, 거기가 어디라고 가는 것인지..
순진한 건지, 용감한 건지,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건지… 참 모르겠네요.
저처럼 황작가 글을 그다지 애독하던 독자가 아닌 사람도 참 난감하던데,
동협님은 참 황당할 것 같네요.
누구는.. 얼굴에 분 바른 것들을 믿은 게 잘못이라고 합디다만,
저는 머리에 먹물 든 인간들을 믿는 게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차라리 분 바른 인간들이 더 솔직합니다. 적어도 저런식으로 등은 안돌리죠.

Reply

16 류동협 2009년 5월 21일 at 12:16 pm

사실 충격이 좀 크네요. 예전에 정명훈은 몰랐던 그의 모습을 본 거지만, 이건 자신을 후원해준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린 거니까요. 황석영을 두둔하는 김지하에게서 더 황당한 시각을 듣게 되네요. 작가가 우파든 좌파든 작품 속에서 다룰 자유는 있지만 그 시각만은 일관되어야 하죠. 그게 없다면 작가가 평생추구 해 온 작품관이 무의미해지지 않을까요. 등돌린 그 등판이 참 원망스럽네요.

Reply

Leave a Comment

Previous post:

Nex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