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분화되는 미국의 음식잡지

by 류동협 on 2009년 4월 1일

in 표본실의 대중문화

미국 경제가 바닥을 모르게 추락하고 있고, 그에 따라 광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잡지시장도 사정이 안 좋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의 음식잡지만은 조금 예외인 거 같다. 서점의 잡지 판매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주 풍성해졌다. 오히려 잡지의 수도 늘어나고 다양해졌다. 예전에 음식잡지 하면 ‘고메이 매거진’ (Goumet Magazine), ‘본 아페티’ (Bon Appetit), ‘푸드앤와인’ (Food & Wine)이 전부였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음식잡지 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스타 요리사들이 하나 둘 씩 자신의 이름을 건 잡지를 창간했다. 30분 요리의 ‘레이첼 레이’, 남부 조지아주 사바나 출신 구수한 할머니 ‘폴라 딘’, 집에서 식당처럼 분위기를 낸 요리전문인 세마이 홈메이드의 ‘샌드라 리’, 영국의 네이키드 쉐프 ‘제이미 올리버’까지 모두 자신의 잡지로 대중과 만난다. 여기에 미국 최대의 요리케이블 푸드네트워크도 잡지를 최근에 창간했다. 심지어 음식의 강국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잡지도 미국판 잡지를 발간했다. 너무 다양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지만 독자들은 선택의 자유가 늘어나서 행복하다.

아무리 경제위기가 닥치더라도 사치품은 줄여도 음식이 끊지 못하는 법이다. 그리고 외식은 줄이게 되면 집에서 해먹는 음식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요리를 배우려면 잡지만한 매체가 없다. 똑같은 요리에 질린 사람들에게 매달 새로운 요리법을 알려주는 음식잡지는 해방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음식잡지는 경제를 그나마 덜 타는 게 아닐까. 음식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한 몫 했다. 근대 이전에는 귀족이나 즐기던 레스토랑 음식이 이제는 중산층이나 서민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평을 하는 블로그도 늘어나고 있고, 요리법을 올리는 블로그는 연예인이나 다름없다. 음식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늘어나니 자연히 음식잡지가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며칠 전에 서점에서 우연히 치즈잡지도 접하게 되었다. 포도주나 맥주를 다루는 잡지는 자주 봤지만 치즈잡지는 처음이었다. 음식잡지의 전문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요리, 치즈, 프랑스 요리, 특정 요리사의 전문분야 등 세부적 분야를 다룬 음식잡지가 늘어나고 있었다. 한국에서 먹어 본 치즈라곤 빵에 끼워 먹는 슬라이스 체다치즈가 전부였는데 미국에 와서 치즈코너에 무수히 쌓인 치즈를 보면서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치즈문화가 발달한 서구사회에서 치즈잡지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은 무궁무진할 것 같다.

이런 음식잡지 가운데 일부 잡지가 관심을 가지는 화제는 바로 환경문제와 친환경 유기농이다. 특히, 요리사들이 발행하는 잡지를 중심으로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운동을 펼치는 잡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래도 요리사는 음식업 종사자로서 평소에 그런 문제를 평소에 고민하는 정도가 음식산업의 경영인보다는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음식윤리가 자신의 지역이나 나라에 한정되어 있어 약간 아쉽다. 지구의 한편에서는 경제위기로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남는 음식을 처치 못해서 버리고 있다. 기아 문제를 음식잡지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면 어떨까.

다양화되고 전문화되는 미국의 음식잡지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음식잡지가 맛있고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즐기는 것과 더불어 배고픔의 문제도 고민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최근에 발생했던 광우병위험 쇠고기 파동이나 살모넬라균에 오염된 시금치, 땅콩버터 등 음식안전도 무시할 수 없다. 요리법 뿐 아니라 어떻게 음식이 생산되고 관리되는 걸 점점 알 수 없게 된 현대사회에서 음식잡지가 감시기능을 해줄 수 있을까. 음식기업의 광고로 먹고사는 음식잡지에 너무 무리한 부탁이겠지만 윤리적으로 필요한 기능이다. 전문화된 음식잡지가 윤리나 위험에 상관없이 아무거나 먹으라고 권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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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comments… read them below or add one }

1 foog 2009년 4월 1일 at 4:26 am

“음식윤리”하니까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나는군요. 윤리적으로 올바른, 즉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된 농산물로 음식하는 법에 관한 다큐였었는데 재밌는 시도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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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류동협 2009년 4월 1일 at 1:00 pm

어떤 다큐인지 궁금하네요. 공정무역에 관한 사회적 의식이 어느정도 받아들여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지식인 중심이라서 아직까지 한계가 있습니다. 다양한 시도들이 이제는 성과를 봐야할 시기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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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foog 2009년 4월 2일 at 3:54 pm

그게 우연히 본 프로그램이라 잘 기억이 안나네요. 나중에 어떤 프로였는지 알게 되면 알려드리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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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류동협 2009년 4월 3일 at 2:45 am

네,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식량위기, 음식윤리는 최근에 중요한 화제가 되고 있는 영역이라서 관심이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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