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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05

저작권법의 남용

November 30, 2005

저작권법이 마련된 이유는 예술의 창작자에게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을 도와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에서 저작권법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 반대의 효과를 내고 있다. 법은 언제나 현실의 반영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데, 현재의 저작권법은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 MP3라는 신기술을 이용한 음악향유의 문화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기존의 CD로만 만족하라고 소비자들에게 강요하는 꼴이다. 음반산업은 왜 MP3 player만드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왜 하지 않는 걸까? 그건 아무래도 회사보다는 개인이 상대하기 더 쉬워서가 아닐까?

소비자도 엄연히 음반산업의 한 주체로 생각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없다면, 지금처럼 음반산업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작권법도 이제는 소비자의 권리에 대한 항목을 추가해야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 소비자들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이미 소비자들이 기존의 기술에 만족하지 못하고 MP3를 폭넓게 사용하고 현실을 도외시하고, 법적인 잣대로 소비자를 범법자로 만들려 한다. 음반산업의 위기를 신기술과 그를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에게 안일하게 돌리고 있다.

음반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지금처럼 처벌 위주의 방법은 시대착오적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기술의 발전을 막으면서 발전이 된 경우는 없었다. 음반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신기술을 껴안을 수 있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합리적으로 시장 속에서 MP3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길을 찾는게 더 낫지 않을까? 음악 예술의 공유가 무조건 시장에 해가 되는 건 아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기에, 음반을 사서 들을 수 있고, 공연도 보러갈 수 있다. 그런 정보를 완전히 통제하고 시장 안에서만 소비하라고 강요하는 건 마치 현대판 분서갱유가 아닐 수 없다.

예술의 사적인 향유만 허용되는 시대는 얼마나 끔찍한가? 음반을 듣기 위해서 다 사야하고, 미술관이나 도서관은 그 기능을 상실하고, 개인의 서재나 개인의 미술관만 난무하게 될 것이다. 예술에도 빈부의 격차가 생겨서 부유한 사람들이나 즐기는 그런 폐쇄적인 문화만 양산될 것이다. 이런 폐쇄적인 환경에서는 창의적인 작품이 나오기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예술은 대중적 기반을 잃고, 부자들이 빈민들과 자신들을 구별짓는 도구로만 인식될 것이다. 이게 극단적으로 생각해본 저작권 남용이 만들어갈 미래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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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뽕짝, 성인가요

November 23, 2005

논문의 방향을 한국 대중음악으로 완전히 틀어버린 후, 요즘 난 가요를 한번 들어보려고 온라인 음악 사이트를 기웃거린다. 미리 들어보기를 제공하는 핫트랙스로 이것저것 들어보다 궁금한 게 생겼다. 가요의 장르 구분 가운데 다른 것들은 이해가 되는데 성인가요는 왜 그렇게 정하였는지 궁금해졌다. 핫트랙스만의 구분인가 해서, 다른 사이트로 가보았는데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흔히 트로트, 뽕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게 성인가요로 변한건가 보다.

뽕짝은 듣는 어감이 거북하고, 약간의 비하하는 느낌이 있어서 회피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트로트가 성인가요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추정컨대 트로트는 일본에서 들어온 외래장르이냐, 아니면 고유한 전통 장르인지에 대한 논란에서 용어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반일 감정에 따른 비난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 용어가 채용되었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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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도시의 인종주의

November 21, 2005

racism한 흑인 여학생이 익명의 사람이 보낸 증오 메일을 받았다. 흑인에 대한 온갖 인신공격과 심지어 흑인의 피부를 원숭이에 빗대는 모욕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학생은 학생회에 그 메일을 보고하였고, 인종주의에 대처하기 위한 학교위원회가 꾸려졌다. 그와 비슷한 사례로 게이에 대한 비난과 욕설이 담긴 벽보가 캠퍼스 전역에 나붙었다. 얼마전에는 흑인 학생이 한무리의 백인들에 둘러싸여 집단 폭행을 당하여 턱뼈가 부셔지는 중상을 입었다.

인종차별적 범죄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대학 도시는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대도시의 슬럼지구에 일어나는 범죄율에 비하면, 대학 도시의 범죄는 아주 낮은 수준이다. 이 글은 미국의 범죄율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필이면, 비교적 안전한 대학도시에서 인종차별적 범죄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인가? 강력 범죄가 잘 발생하지 않는 대학 도시는 더이상 보안이 보장된 상아탑이 아니다. 혐오성 범죄는 단지 대학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서 형성된 사회적 감수성이 대학 도시에도 퍼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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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의 황우석 보도

November 3, 2005

황우석 연구의 윤리성 문제를 제기한 PD수첩의 보도에 대한 네티즌의 분노와 촛불시위로 인터넷이 들끊는다. 급기야 불매운동까지 불사하겠다는 여론에 밀려서 12개 광고주 모두 광고를 취소하였다. 이쯤 되면 정도를 지나치는 광적인 운동이라고 일컬을 수 있겠다. 이 사건을 통해서 여론에 대한 이성적인 신뢰를 상당 부분 거두게 되었다.

“황우석 애국주의”가 할 수 있는 이번 사건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나는 그 가운데 한국 언론에 책임을 묻고 싶다.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과학계의 스타로 등장한 황우석에 대한 한국 언론의 태도는 열광적이다. 처음에 황우석에 대한 열광은 한국 언론이 그동안 보여준 한국적 사건을 세계적으로 만들려는 욕망이겠거니 생각했다. 뉴욕 타임즈나 CNN을 비록한 미국의 언론이 황우석을 다룬 기사들을 보면서 그게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줄기세포의 업적에 대한 언론의 태도는 보수신문을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거의 획일적이었다. 물론 과학적 업적을 소개하는 것도 언론의 임무이다. 하지만 언론이 그런 역할에만 머무른다면, 연구소를 홍보하는 역할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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